나, 다니엘 블레이크 / 감독 켄 로치 / 2016년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이 영화가 정녕 '자립'에 대한 영화일까. ⓒ 영화사 진진


안녕하세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님. 전경련과 함께 재계를 이끈다는 경총의 회장님께서 영화를, 그것도 지금 상영관도 몇 개 없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오전 9시에 찾아가서 관람하셨다니 영화 담당 기자로서 우선 반가운 마음에 글을 씁니다.

보신대로 이 영화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 노인이 젊은 미혼모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영화입니다. 시청각을 자극하는 짜릿한 장치들은 없지만 적절한 유머와 함께 세계 영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지요.

감사하게도 전 이 영화를 지난 5월 칸 영화제 현지에서 직접 봤습니다. 바쁜 취재 일정상 꼭 봐야 할 영화를 추렸고 운 좋게 해당 영화의 기자 시사를 볼 수 있었지요.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은퇴작이 될지도 모르는 데다, 그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꾸준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담아왔기에 존경의 마음 또한 갖고 있던 터였습니다.

역시 보신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블레이크는 질병 수당도 생계 수당도 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케이티 역시 자신의 사소한 실수로 생계보조금을 거절당하는 상황에 빠집니다. 박 회장님도 아마 이 부분에서 애잔함 내지는 연민을 느끼셨을 겁니다. 그래서 "흥행성이 떨어지는 영화여서"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언제 종영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상영 중이니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 보면 좋겠다"는 선의가 담긴 제안을 하신 거겠지요.

 <문화일보>에 실린 박병원 경총회장의 시론 '영화 <다니엘 블레이크>의 진짜 메시지'

<문화일보>에 실린 박병원 경총 회장의 시론 '영화 <다니엘 블레이크>의 진짜 메시지' ⓒ 문화일보


해가 잘못됐다

다만 제가 심히 우려하는 부분은 회장님께서 영화를 해석하는 태도와 그 내용입니다. 영화 감상은 주관의 영역이라 당연히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그 누가 뭐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만 노무현 정부 때 재경부 차관도 지내셨고, 이명박 정부 땐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하시는 등 공직에 계셨으니 그 발언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생각했기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엔 미르 재단을 언급하시며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 굴러가는 것 같다"고 폭로하신 용기 있는 분이기도 하시지 않습니까.

박 회장님은 "이 영화를 보고 영국의 복지 시스템이나 담당 공무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삶을 공공(公共)의 손에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고,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비용을 세금으로 내고 사는 것이 정상이고 원칙이며, 그것이야말로 '국가나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문장 호응 문제는 넘어가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메시지니까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영국 복지 시스템의 문제를 일부 지적하는 영화라는 건 동의를 하셨고, 그 다음 말이 걸리네요. "자신의 삶을 공공의 손에 의존하는 게 위험하다"고 설파하신 부분 말입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강한 반대 의사가 느껴지는데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블레이크가 과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상태였나요? 몹쓸 질병을 앓고 있던 차에 엉성한 시스템 때문에 제대로 질병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실업수당을 받고자 하니 질병 때문에 구직활동 자체가 안 되고요. 흔히 진퇴양난이라고 하죠? 이미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아전인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지제도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결국 그 반대논리를 지지하는 식으로 영화를 이용하시다니요. 여든한살의 노장 켄 로치 감독이 그 글을 번역해 읽었다면? 상상하기 싫네요. 한국의 내로라하는 공직자 출신의 경제인 발언이니 어쩌면 그냥 웃고 넘길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잘못 봤다는 것에는 적잖이 실망할 겁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지지받는 이유는 시스템에 대한 지적과 함께 그 연약한 인간이 또다른 약자를 보듬고 진심으로 대한다는 대목에 있습니다. 전 회장님이 이 부분에서 적잖이 감동을 받았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아전인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는 성공했을까.

노장 켄 로치의 역작인 이 작품이 고발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 영화사 진진


그럼 박 회장님이 말한 그 영국의 복지제도를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기치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찌감치 영국은 복지정책을 추구해왔습니다. 유럽 내에서도 빠른 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당 논리와 신자유주의의 강한 영향으로 민간영역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빠르게 정책을 수정해왔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영국은 박 회장님께서 지지하시는 '제한적 복지'를 성실하게 수행한 나라 아닌가요?

혹시나 해서 제 영국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서른여섯 저와 동갑내기로 한국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너희 나라 복지정책이 그렇게 변해오지 않았냐"라고 물으니 단번에 "그렇다"고 답하며 다음과 같은 설명이 따라왔습니다.

"(지금의) 영국 복지 정책은 끔찍해. 보수당이 긴축 정책을 내세우며 국가 부채를 줄이고 있는데 특히 복지 정책 예산을 엄청 줄이고 있지. 새로 제정된 법이 참 끔찍해. 영국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불공평 하다고 느끼게 하고 있어. 정부는 국민들에게 자기들이 원하지 않는 직업에 매달리게 하고, 정해진 근로 시간도 없이 일을 시작하도록 했어. 그만큼 고용주와 사용자의 권한을 강화한 거야. 많은 사람들이 고용불안에 떨고 있지.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월급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상황이야."

지금의 영국이야 말로 박 회장님의 논리를 철저히 수행한 나라 아닌가요. '공공의 손에 삶을 맡기지도 않게 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게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진리였고, 대세였다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왔다 한들 칸 영화제에서 그렇게 환호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복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디언> 지는 "1990년대부터 분 거센 민영화 바람으로 지금은 노인 요양 시설 중 4분의 3이 민간 영리 요양 시설이 됐는데 비영리 시설보다 못할 뿐 아니라 많은 요양 보호사가 파트타임에 시달리고, 그 피해가 결국 이용자들에게 돌아간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토록 현 정부와 재계가 주장하는 일자리는 늘어났지만 그걸 이용하는 또 다른 국민, 사회적 약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구조가 된 겁니다. 영화는 그 지점을 매우 세련되게 고발하면서 우리의 감성을 환기하고 있는 것이고요.

전 적어도 이 작은 규모의 영화를 '일부러' 찾아간 박 회장님의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다만, 회장님이 쓴 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진짜 메시지'에 왜 많은 사람들이 혹평을 하는지 확인해 보시고, 영화를 다시 한번 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전경련 경총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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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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