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켄즈>의 스틸 이미지. 이들은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기꺼이 긍정한다.

영화 <위켄즈>의 스틸 이미지. 이들은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기꺼이 긍정한다. ⓒ 무브먼트


"경상도 '고딩' 영수는 또래 중 유달리 눈에 들어오던 한 친구가 이유 없이 좋았다. 수줍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던 그 '시골게이'가 이제 평범할 수만은 없는 30대 아저씨가 됐다. 충정로에서 아담한 스파게티집을 운영하는 영수씨는 지금이 '내 게이 인생의 황금기'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합창단 소모임 '지보이스'의 주축 회원인 그는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그 '언니'들이 그렇게 좋다. 그래서 수년 간 만나온 지인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는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은 이렇게 남자를 사랑할 운명으로 태어난 네 남자의 건전하고 긍정적인 삶을 그린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버려도 좋다. 영수씨를 비롯해 소심한 영화감독 준문, "일터에도 동성애를 허하라"는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병권, HIV/에이즈 감염자를 사랑하는 욜 등 네 주인공의 일상은 한국에서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현실과 아픔에 대해 가감 없는 기록이다." (관련 기사: '시골게이'도, 게이감독도 '내 인생의 황금기'  <종로의 기적> 리뷰 중에서)

이 <종로의 기적> 이후 5년, 창단 10주년을 맞은 한국 최초 게이코러스 '지보이스'(G_Voice)의 어제와 오늘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위켄즈>가 22일 개봉했다. <종로의 기적>이 네 게이가 얽힌 일상과 지평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삶과 한국사회 전반의 차별적인 상황을 조망한다면, <위켄즈> 지금은 고인이 된 영수씨가 활동했던 지보이스와 그 멤버들에게 카메라의 시야를 좁혔다. 주제는 같지만, 좀 더 유연하고 친근한 정서가 담뿍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켄즈>는 '뮤지컬 다큐' 혹은 '음악 다큐'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음악과 노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뿐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구조 자체도 지난 2003년 10월 있었던 10주년 기념 공연의 준비 과정과 공연 장면, 그 전후의 일상과 인터뷰로 이뤄져 있다.

'Music is My Life'라는 명제를 실천하는 하는 이들은 전 세계에 참 많다. 그러나 지보이스 멤버들은 성소수자들이다.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그 장면이 담긴 영화가 전국에 개봉되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종로의 기적>이 극장 개봉 이후 IPTV 등 부가판권 배급을 포기해야 했던 이유도 같은 이치다.

그 지보이스의 노래와 사랑, 그리고 삶을 담은 <위켄즈>는 국내 개봉에 앞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 수상을 필두로 전 세계 퀴어영화제에서 고르게 초청받으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용기를 세계인들이 먼저 응원해 준 것이다. 이 '유쾌발랄'하면서 진중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다큐를 이해하기 위해, 조금 길지만 <위켄즈>를 연출한 이동하 감독이 10년 전 직접 작사한 '코러스보이'의 가사를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흔한 일반 게이들의 사랑이야기를 노래에 담은 소통 다큐

 누가 누구의 꿈을 비하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의 꿈을 비하할 수 있을까. ⓒ 무브먼트


"기억나니 십년 전 같이 봤던 슬픈 영화 해피투게더. 저런 영화 만들고 싶다던 너 저런 사랑 하고프다 말 못한 나. 그래도 설렜던 스무살 청춘 울어도 좋았던 젊은 날 우리. 허기진 꿈 등 돌린 골목길에서 고시공부 미안하다 힘든 목소리. 엉킨 전깃줄처럼 복잡하던 우리 꿈. 혹시 너는 보았니. 골목 위에서 빛나던 보름달. 와주겠니 친구야 오늘 공연 십년동안 갇혀 있던 노래. 눈이 부신 조명에 떨리는 맘. 너를 위해 준비한 내 커밍아웃. 이제사 찾아온 게이코러스 못다한 이야기 시작하는 날. 지쳐간 꿈들 피곤한 포장마차. 사표 썼다 힘들었다 야윈 네 어깨. 오래된 기억 속에 푸르렀던 우리 꿈 혹시 너는 보았니 여전히 반짝이던 네 눈동자." - 위켄즈, '코러스보이' 중에서

저 '코러스보이' 속 가사는 <위켄즈>의 내용과 구성, 주제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노래로 커밍아웃하고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 지보이스에서 활동하던 "사랑에 설레고 현실에 아파하던 청년" 이동하 감독이 십년 전 만든 자전적인 가사가 그대로 다큐멘터리 속 화면으로 옮겨 왔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우선, 성소수자라들이야말로 당당하게 사랑할 보편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해받고 차별받는 서러움과 억압을 가장 크게 느끼는 존재들일 것이다. <위켄즈> 역시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일반 흔한 게이들의 사랑이야기, 이런 것들을 좀 우리 노래에 담고 싶다"는 한 멤버의 인터뷰처럼 '그들도 우리처럼'이야말로 성소수자들의 사랑을 이해하는 기본 전제요, 비성소수자들이 <위켄즈>에서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더, 지보이스를 통해 만나게 된 커플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동하 감독은 연애 중인 멤버들의 다채로운 사랑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멤버들의 첫 만남의 설렘도, 동거 커플의 하룻밤 다툼도, 현재형의 찐한 연애도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는 흔한 듯 특별한 사랑들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 지보이스의 노래가 채워지고, 내밀한 일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는 정말, 종로3가 포장마차 골목에서 뮤지컬마냥 멤버들이 시치미 뚝 떼고 자신들의 인생을 노래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한 의욕만으로 시작했던 '문외한'들이 귀엽고 깜찍하게, 그리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공연을 펼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안겨 준다. 이 '노래'와 '사랑', '소통'이야말로 <위켄즈>를 반짝이게 하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정체일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돼"라는 지보이스의 끝나지 않을 노래

 영화 <위켄즈>의 공식 포스터. 그들의 노래가 오래오래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영화 <위켄즈>의 공식 포스터. 그들의 노래가 오래오래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 무브먼트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은 더 얘기해야 되는 것 같고, 더 노래 불러야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 멤버의 말마따나, 10주년 공연이 후 지보이스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노래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보이스'들의 삶과 노래들은 그 자체로 '한국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으로 자연스레 귀결된다.

대신 <위켄즈>는 조금 색깔을 달리한다. 절박할 수 있는 내밀한 고백을 고통스럽게 혹은 처연하게 기록할 마음이 없다. 그 속내를 끄집어내기보다 웃고 떠들고 싸우고 노래하는 그 일상의 결들을 포착하는 것만으로 이 소수자들의 심정이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한 담담함이야말로 그 어떤 주의나 주장보다 관객들에게 '지보이스'들의 결심과 자세를 공감하게 만드는 영화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래서 후반부, 지보이스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수 년에 걸쳐 '콩그레츄레이션'이란 지보이스의 노래로 연대하고, 진도 팽목항 문화제에서 노래할 때,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노래로 연대를 실천하고 이에 화답하는 이들의 무대는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당위 차원의 연대가 아닌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연대기에 더 새롭고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감동.

더욱이 이러한 편집은 지보이스의 앞으로 10년도 분명 그렇게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라는 다짐과도 같아 보인다. 2014년 12월 서울시청에서 벌인 '무지개 점거농성'에서 지보이스가 노래를 통해 즐겁게 연대하는 장면 역시 같은 감흥을 전달한다.  

물론 힘겨운 순간도 놓치진 않는다. 김조광수-이승환 부부의 동성결혼식 장면이 대표적이다. 하필 지보이스가 무대에 섰을 때, 어느 기독교인이 무대 뒤쪽으로 난입해 똥물을 투척한 사건 말이다.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 중 하나인 결혼식에까지 오물을 투척하는 보수기독교인들의 공격을 감내하며 동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성소수자들의 참담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순간에도 지보이스 멤버들은 서로를 다독이고, 카메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공격성은 지난 2014년부터 계속된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개신교 단체들의 방해와 공격으로 옮겨 갔다. 노래와 연대, 일상과 운동이 분리될 수 없는 지보이스 멤버들의 일상을 <위켄즈>는 한국사회의 성소수자 차별의 대표적인 순간들과 포개놓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켄즈>는 "이제 다시 시작하면 돼"라는 '코러스보이'의 마지막 가사처럼 짐짓 친근한 얼굴로 차별과 불평등의 한국사회에서 다시, 같이 노래하자고 말한다. 그래서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라는 이 가사는 현 시국에서 사회변혁을 요구하며 촛불을 드는 우리의 심정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될 것이다. 지보이스도, 우리 모두도. 다 같이 함께.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 우리가 숨차게 외쳤던 세상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 작은 용기 하나 둘 모여 당당한 화음되어 세상에.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아직 미완성인데.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 내 모습 그대로 세상 누구보다 멋진 사랑하는 걸.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 우리가 잡았던 손을 놓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어. 그럼 어때 친구야 내 노래를 들어봐. 고작해야 십년이 지났어. 이제 다시 시작하면 돼." - 위켄즈, '코러스보이' 중에서

위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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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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