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7월 마지막 경기에서 한화를 꺾고 4연패 수렁에서 탈출했다.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마이클 보우덴의 7이닝 3실점 호투와 타선 폭발에 힘입어 한화에 10-4로 완승했다. 보우덴은 2연승을 달리며 개인 12승 고지에 올랐고, 두산은 60승 고지를 선점했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은 5회 초에 나왔다. 한화가 0-6으로 끌려가던 5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윌린 로사리오의 타석 때 김성근 한화 감독이 돌연 보우덴의 투구를 문제 삼고 나섰다.

김 감독은 보우덴이 서 있는 마운드를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한참을 항의했다. 강광회 주심은 보우덴의 공을 건네받아 직접 확인했다. 보우덴이 유니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손에 이물질을 묻혀서 공을 던지는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갑작스러웠던 김성근 감독의 항의

 두산 선발투수 보우덴이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리그 삼성과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2016.7.20

두산 선발투수 보우덴이 지난 7월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리그 삼성과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KBO의 공식 야구규약에 따르면 투수는 분비물(침,땀)이나 흙, 송진 등 각종 이물질을 고의로 묻혀서 공을 변색시키거나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 공에 묻은 이물질의 점성으로 인해 투구시 공의 각도나 구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 용어로는 스핏볼(Spitball)이라고도 한다. 명백한 부정행위이므로 만일 적발될 경우 심판은 공을 회수하고 해당 선수는 바로 퇴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심판은 직접 공의 상태를 받아 점검한 결과 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김 감독의 항의로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공교롭게도 보우덴은 김 감독의 항의 이후 로사리오를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다음 이닝인 6회에는 연이어 적시타를 내주며 3실점을 허용하기도 했다. 보우덴이 김 감독의 항의를 심리적으로 의식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방적이던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김 감독의 항의가 과연 정당했는냐다. 묘하게도 김성근 감독은 이틀 전 두산과의 경기에서도 9회 상대 마무리투수였던 이현승의 투구동작을 문제 삼은 바 있다. 당시에도 김 감독의 항의 자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현승은 김 감독의 어필 이후 제구력이 흔들리며 동점을 허용했다. 한화는 연장 끝에 두산을 제압했고 이튿날까지 위닝시리즈를 이어갔다. 김성근식 '상대 투수 흔들기'가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물론 판정이나 상대 플레이에 의혹의 여지가 있다면 앞장서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도 없이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 제기는 곤란하다. 이는 명백한 비매너이자 상대팀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에도 수많은 투수 흔들기를 시도했던 '전력'이 있다. 윤석민, 봉중근, 정재복, 맷 랜들, 라이언 피어밴드 등 수많은 상대팀 투수들의 투구 동작과 습관에 끊임없이 딴지를 걸었다. 투구폼과 준비 동작에서부터 로진백 과다 사용까지 이유도 다양했다. 이중 대부분은 해당 투수들이 이전부터 반복해온 동작이거나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물론 김 감독의 항의는 거의 받아들여 지지 않았지만, 당시 경기 흐름을 끊거나 상대 투수들의 평정심을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경기에서도, 매내에서도 진 한화

 3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SK의 경기. 김성근 한화 감독이 SK가 3대 2로 역전한 5회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한화 김성근 감독. ⓒ 연합뉴스


국내 야구판은 좁다. 단일리그제에서 선발투수는 한 시즌동안 같은 팀과 몇 번이나 마주쳐야 한다. 문제가 될 만한 동작이나 습관이 있다면 언제까지 감출 수 없다. 이현승은 프로 10년차가 넘은 투수다. 올 시즌 KBO에 입성한 보우덴도 이미 두산 유니폼을 입고 20경기나 출전했지만 그동안 다른 팀들과의 경기에서 투구동작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당연히 한화 경기에도 여러 번 출전했다. 이 투수들을 이날 처음 본 것도 아닌 김 감독의 항의가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지금은 2016년이다. 방송중계 기술이나 전력분석이 떨어지던 80~90년대라면 몰라도, 오늘날은 디지털의 수혜를 등에 업은 수많은 눈과 귀가 지켜보는 시대다. 아마추어 팬들조차 다양한 경기 자료를 확보하여 과거에 놓쳤던 사건사고나 작은 오류까지 재조명해 낼 정도다. 차라리 고의 볼넷 같은 승부조작이나 빈볼이라면 모를까, 스핏볼 같은 부정투구는 요즘 시대에는 훨씬 더 감추기 어려운 일이다. 재미있게도 김성근 감독은 자기 팀이 경기를 이겼을 경우에는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날 한화는 경기도 지고 매너도 진 셈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보우덴과 두산 측은 김 감독의 의혹 제기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의 자극이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야구'로 대답한 것이 프로다웠다.

공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만큼이나 나쁜 것이 경기 외적으로 장난을 쳐서 상대팀을 흔들려는 꼼수다. 보우덴의 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상대 투수의 명예를 훼손한 김성근 감독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날 경기를 방해한 '이물질'은 결과적으로 보우덴의 공이 아니라 바로 김성근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고의성이 다분한 감독의 시간 지연이나 무분별한 부정 항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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