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필을 바라보던 KIA 타이거즈 팬들의 마음이 이 사진과 같을까?

지난 시즌 필을 바라보던 KIA 타이거즈 팬들의 마음이 이 사진과 같을까? ⓒ KIA 타이거즈


2015 시즌 KIA 타선에서 브렛 필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지난해 리그 최약체이던 KIA 타선에서 고군분투하며 상대 투수의 집중 견제를 받았음에도 팬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중요한 타점을 종종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렛 필의 세부 기록을 따지자면 외국인 타자치곤 특출난 편은 아니다.

타자 부문 주요 기록인 타율, 홈런, 타점 순위에서 브렛 필의 위치는, 타율 12위(.325), 홈런 19위(22개), 타점 13위(101점)이며, 적극적인 타격 성향 때문에 출루율(.364)은 규정타석을 채운 50명의 타자 중 딱 중간인 25위에 그쳤다.

덩치(193cm·102kg)만 보면 많은 장타를 칠 것 같지만, 장타율 순위에서도 20위(0.517)로 상위권과는 거리가 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한 OPS 순위 역시 20위(.890)에 그치고 있다. 한때 '필느님'으로 불릴 정도로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모습과는 괴리감이 있는 셈이다.

브렛 필의 이름을 상위권에서 찾을 수 있는 타격 부문 기록으로는 최다안타가 있다. 적극적인 타격 덕분에 리그에서 5번째로 많은 안타(174개, 1위는 188개의 유한준)를 기록했다. 워낙에 인상적인 타점을 많이 올려줘서, 득점권 타율이 리그 최상위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득점권 타율 순위도 규정타석 기준 12위(.336)로 비교적 평범한(?) 편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로 브렛 필의 타격 생산능력을 따져 봐도 뛰어난 점수를 주기 어렵다.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인 WAR(Wins Above Replacement) 순위에서 브렛 필(WAR 2.5)의 이름은 위에서부터 33명의 이름을 읽고 나서야 찾을 수 있다. 수비력보다 공격력이 중요한 1루수 포지션에서 빼어나게 높은 타율을 기록하지도, 장타 생산능력이 압도적이지도, 그렇다고 출루를 많이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BABIP(인플레이타구의 타율) 27위, wOBA(가중출루율) 23위, RC(득점생산) 14위, RC/27(특정 타자가 아웃카운트 27개를 모두 소진한다는 가정하에 기대할 수 있는 득점)21위, wRC(가중 득점생산) 17위 등, 클래식 스탯과 세이버 스탯을 통틀어 따져도 브렛 필이 리그에서 10손가락 안에 드는 기록은 '최다안타' 뿐이다. 시즌 초반 부상 등으로 주춤하며 필과 비슷한 성적을 보이던 롯데 아두치는 시즌 후 OPS(.941), WAR 4.73(13위)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이처럼 한 팀의 4번 타자를 치기에는 2%가 부족한 기록을 남겼음에도 팬들에게 '필느님' 혹은 '광주 필씨'로 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약한 팀 공격력 '필'을 돋보이게 하다

 리그최약체로 평가받는 KIA타선에서 필의 존재감은 무등산과도 같다.

리그최약체로 평가받는 KIA타선에서 필의 존재감은 무등산과도 같다. ⓒ KIA 타이거즈


지난 시즌 KIA의 팀 공격 지표는 대부분 하위권에 위치했다. 팀 타율은 리그 최하위(0. 251)에 그쳤으며(리그 평균 0.280), OPS 역시 10위(0.718)로 9위 LG와도 2푼 차이가 날 정도였다 . 잠실처럼 큰 구장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님에도 팀 홈런은 두산 보다 적은 136개에 그쳤다. KIA팬들은 필과 '건강한' 김주찬, 이범호 정도를 제외하면 쓸만한 타자가 한 명도 없다는 탄식을 시즌 내내 내뱉을 정도였다.

필의 기록은 한 팀의 4번 타자로 보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성적이지만, 팀 내 타자들 중 가장 많은 143경기에 출장했고, 팀 내 타율 1위(0.327의 김주찬은 규정타석 외), 이범호 다음으로 가장 많은 22홈런, 101타점으로 팀 내 가장 많은 타점이자 유일하게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WAR 순위에서도 이범호(3.68), 김주찬(2.51)과 필(2.50)을 제외하면 2.0이 넘어가는 타자가 없다. 지난 시즌 유격수 자리를 양분했던 강한울(-2.04), 박찬호(-1.24)가 마이너스값의 WAR을 기록하는 등 타격 기록을 남긴 33명의 타자 중 무려 23명이 마이너스 WAR을 기록했다. 이런 KIA타선에서 필의 존재감은 빛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필이 스탯 이상의 활약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은 극적인 순간마다 인상적인 타격을 보여준 덕분이다.

지난 해 3월 29일 LG와의 경기에서 6대5로 뒤지던 9회 무사 1루에 타석에 들어서서 끝내기 역전 투런 포를 날린 것을 시작으로, 4월 2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6대2로 뒤지던 9회 무사 만루에서 동점 그랜드 슬램, 6월 9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3대1로 뒤지던 4회 1사 만루 상황에서 역전 그랜드 슬램을 치는 등 팬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박히는 명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이 외에도 두산과의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 4년 만에 위닝시리즈를 기록한 삼성과의 경기에서 결승타와 쐐기 홈런을 날리는 활약을 한 것도 필이 팬들에게 기쁨을 준 대표적인 장면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지표 중 승리확률 기여도를 측정하는 WPA-Winning Probability Added-에서는 5.61로 리그 6위를 기록했다.)

브렛 필, 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국인 타자?

 팬들의 필에 대한 애정은, 한국 문화에 대한 그의 친화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사진: KIA 타이거즈)

팬들의 필에 대한 애정은, 한국 문화에 대한 그의 친화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사진: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브렛 필이 기록 이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또 다른 이유는 '타이거즈의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끝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뛴 외국인 타자는 총 15명이다.

'무등구장의 장외를 넘겨야 홈런인가'라는 발언(실제로는 당시 2중 펜스로 되어 있던 광주구장의 펜스를 보고 앞의 펜스를 넘겨야 하는지 뒤의 펜스를 넘겨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한다)으로 유명한 최초의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숀 헤어(타율 .206, 0홈런)를 시작으로 포조(타율 .213 / OPS .508), 스캇(.163 / .537), 서브넥(.224 / .601), 발데스(.218 / .571), 뉴선(.209 / .743), 미첼(.227 / .698) 등 수 많은 실패 사례가 존재한다. 그나마 좋은 활약을 보인 선수로는 샌더스(.247 / .983), 산토스(.310 / .875), 타바레스(.299 / .730, 41도루), 브릭스(.283 / .857)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에는 좋은 활약을 했지만, 2001년에 성적 부진으로 퇴출된 타바레스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2시즌 연속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그런데 브렛 필은 타바레스의 기록을 넘어서 3시즌째 계약에도 성공했다.

한화의 데이비스, 롯데의 호세, 두산의 우즈, 현대의 브룸바, 그리고 2014~2015시즌 NC의 테임즈, 삼성 나바로까지, 다른 팀에서 역대급 외국인 선수를 뽑는 동안 타이거즈의 실적은 형편없었다. 브렛 필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나온 성공작인 셈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타자의 성적 치고는 조금은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브렛 필에 대한 현장과 KIA 팬들의 여론은 우호적이다.

그러나 팀 타선의 부진, 팀 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라는 이유만으로 브렛 필에게 마냥 우호적인 시선을 보낼 수만은 없다.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 포지션으로 지난 2시즌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어야 필은 KBO리그에서 4번째 시즌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구축한 리그 정상급 선발마운드의 강점을 살려 가을 잔치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필, 김주찬, 나지완, 이범호 같은 핵심타자들이 KIA 타선의 무기력함을 타파하는 것이 절실한 2016시즌이다.

브렛 필(상세기록 보기) 개막시리즈 성적: 8타수 4안타 2타점 OPS 1.125

[기록출처: 프로야구기록실 KBReport.com (케이비리포트), 스탯티즈, KBO기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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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프로야구 통계미디어 KBReport.com (케이비리포트)에도 송고했습니다. (글: 신희진 칼럼니스트 /편집 및 자료 제공: 프로야구 통계기록실 KBRepor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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