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수면 아래에 잠복시킨 채 지난해 개막 기자회견 당시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 갈등을 수면 아래에 잠복시킨 채 지난해 개막 기자회견 당시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 부산영화제


"영화인들이 꼿꼿이 서서 죽으면 죽었지 굽히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최근 이슈로 떠오른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한 한 영화제작자의 반응이다.

25일 오후로 예정된 부산국제영화제 총회를 앞두고 영화계가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19일 서병수 부산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직 사퇴를 발표하며 이용관 집행위원장 재위촉 불가를 밝혔지만, 영화계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한마디로 "어림없는 소리"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을 역임한 한 관계자는 서 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를 "물귀신 작전"으로 평가했다. 전 세계 영화계가 이용관 집행위원장 지키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부담을 느낀 서병수 시장이 이를 압박하기 위한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다.

복수의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부산시는 기자회견 하루 전날 부산영화제 측에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기자회견 배석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사퇴하면서 서로 악수를 나누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측은 이를 거부했다. 부산시가 독립성 보장을 위한 구체적이고 명문화된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서 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에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어떻게든 사퇴시키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응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병수 사퇴 회견-이용관 배석' 그림 만들려던 부산시

서병수 부산시장 "BIFF 조직위원장 사퇴합니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18일 부산시청 브리핑룸에서 부산국제영화제(BIFF)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 시장은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에 넘길 계획이다.

▲ 서병수 부산시장 "BIFF 조직위원장 사퇴합니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18일 부산시청 브리핑룸에서 부산국제영화제(BIFF)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 시장은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에 넘길 계획이다. ⓒ 연합뉴스


영화계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재위촉이 부산영화제의 독립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되고 있다. 정치적 압박에 절대 굴복할 수 없다는 자세다. 전 세계 영화인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이 걸렸다고 보고 있다.

최근 부산시장과 면담에 참여했던 한 영화단체 대표는 "접점이 없다"면서 "절충이 어렵기 때문에 각자의 길을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시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밀어내겠다는 뜻을 바꾸지 않는 한 영화계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서병수 시장은 사퇴 회견 다음날인 20일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 등과 오찬을 하며 의견조율을 시도했으나 특별한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해 부산시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고발하며 단독으로 집행위원장 수행이 가능한지를 물었을 때도 단호히 거부한 바 있다.

정관개정을 둘러싼 동상이몽

부산영화제 측은 영화계의 뜻에 따라 정관개정을 통해 독립성 방안을 반드시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가 올해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로 강조했다. 여기에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연임도 포함돼 있다. 법과 절차에 따라 처리해가겠다는 것이다.

서병수 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에 따라 25일 총회에서 정관 개정은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하는데, 이를 대하는 부산시와 영화제 측의 온도차는 상당히 큰 모습이다. 부산시는 자문위원 선임 등을 할 수 있는 집행위원장의 권한을 손보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영화제 측은 "정관에 있는 집행위원장 권한 규정 등은 부산시가 만들어 놓은 것인데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니 고치려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앞으로 민간이 맡게 될 조직위원장에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추대하자는 의견이 영화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오동진 "누구도 부산 땅 밟지 않겠다는 의지 표해야"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이 있는 해운대 영화의 전당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이 있는 해운대 영화의 전당 ⓒ 부산영화제


총회일이 다가오면서 영화인들의 공개적인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 수위가 매우 세다.

이송희일 감독은 "부산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의기투합해서 이뤄놓은 빛나는 자산이자 한국영화의 힘을 상징하는 축제"라며 "이런 문화 자산의 파괴하려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위해 고대 문화 유적을 파괴했던 IS의 비열한 짓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마리끌레르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있는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즉생 생즉사. 집행부든 사무국이든 모두 동반 사퇴하고 영화제 문을 닫아야 한다. 이제 부산에서는 어떠한 영화제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선보여야 한다. 영화제 일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부산 땅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그는 "지지성명 운동도 강을 건넜다. 이제 이런저런 전술 따위는 없다. 전략적 목표를 향해 일도 매진할 뿐이다. 모두가 같은 마음일거라 생각한다"고 적었다.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영화평론가협회장을 지낸 민병록 교수는 "영화인들이 뭉쳐 권력 앞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정상적으로 될 때까지는 거부할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며 "싸워야 하고, 깨지면 안 간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연임이 안 될 경우 앞으로 부산영화제에 내 영화가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25일 오후 2시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총회가 부산영화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영화제 이용관 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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