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느낌표, 연기는 물음표 그룹 애프터스쿨과 그룹 내 유닛 오렌지 캬라멜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이나. 레이나가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다 역을 맡은 레이나는 자신이 소화하는 인물에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나, 연기 톤은 여전히 어색하다. 하지만 노래는 다른 배우들 이상으로 깔끔하게 뽑아낸다.

▲ 노래는 느낌표, 연기는 물음표 그룹 애프터스쿨과 그룹 내 유닛 오렌지 캬라멜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이나. 레이나가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다 역을 맡은 레이나는 자신이 소화하는 인물에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나, 연기 톤은 여전히 어색하다. 하지만 노래는 다른 배우들 이상으로 깔끔하게 뽑아낸다. ⓒ 곽우신


뮤지컬 <사랑해, 톤즈>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단 4일 간의 일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사랑해, 톤즈>는 영화 <울지마, 톤즈>를 뮤지컬화 한 작품이다. 고 이태석 신부의 일화는 다큐멘터리 KBS 스페셜로도 이미 유명하다. <사랑해, 톤즈> 역시 남수단 톤즈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한평생 봉사한 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태석 신부는 잠시 한국으로 휴가를 나왔다가 받은 건강진단에서 말기암 판정을 받고, 수단으로 돌아갈 날을 꼽으며 투병생활을 하다가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났다.

<사랑해, 톤즈>는 '힐링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단 4일이라는 한정된 기간만 관객맞이에 나섰다. 그룹 H.O.T의 전 멤버인 이재원과 애프터스쿨의 레이나가 출연하며 대중적 구색도 어느 정도 갖추었다. 하지만 공연의 내용은, 아무리 호의적으로 봐도 '성공적'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너무 고고했던 뮤지컬 속 이태석, 반감된 감동

 지난 16일, 뮤지컬 <사랑해, 톤즈>에서 고 이태석 신부를 연기한 조봉현 교수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주로 오페라 무대에 올랐던 그는, 바리톤답게 풍부한 성량을 뽐내나 '딕션'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지난 16일, 뮤지컬 <사랑해, 톤즈>에서 고 이태석 신부를 연기한 조봉현 교수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주로 오페라 무대에 올랐던 그는, 바리톤답게 풍부한 성량을 뽐내나 '딕션'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 곽우신


<사랑해, 톤즈>의 감동은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지 못한다. 적당히 흔들기는 하지만 관객의 심장 속까지 파고드는 데 실패했다. 120분 동안 뮤지컬을 보았는데, 91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을 때보다 눈물의 농도가 옅다.

대체 왜일까. 무대장치에 임팩트가 없어서였을까, 음향에 몇몇 배우들의 노래가 파묻혔기 때문일까, 가사 전달력이 약해서 그랬을까, 브라스밴드의 '핸드 싱크'가 어색해서였을까, 객석을 나올 때 귓가에 남는 노래가 없던 게 문제일까?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감동 반감의 가장 주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 속 이태석 신부가 '지나치게 올곧기' 때문이다. 관객과 같은 위치의 '인간'은 없고, 관객보다 높은 위치의 '성직자'로서의 캐릭터만 남았다.

이태석 신부가 몸소 실천한 '사랑'이라는 가치를 폄훼할 이가 누구겠는가. 그의 숭고했던 헌신은 분명 귀감이 될 만한, 각박한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사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뮤지컬 속 이태석 신부는 우리네 평범한 보통 이들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이었고, 그 '다름'은 끝내 깊은 일치와 공감으로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사랑해, 톤즈>에서 이태석은 이미 신앙적으로 '완성'된 인간이었다. 막이 오른 순간부터 막이 내릴 때까지 시종일관 그는 고고한 성인이다. 그는 어떻게 이타적인 마음씨를 갖게 되었는지, 무슨 계기로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영화에서는 이를 주변인의 증언과 회고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려고 했지만, 뮤지컬에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드라마터그를 맡은 주소형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는 뮤지컬 프로그램 북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수단으로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상황은 축소시키고, 신부님으로 인해 톤즈가 변화되는 과정에 보다 집중하였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축소로 인해 상황 설명은 부족해졌는데, 톤즈의 변화를 가시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태석 신부가 완성된 신앙인이다보니 그에게서 인간적인 번뇌나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뮤지컬 속 이태석 신부는 몇 번의 고난을 마주하기는 하지만, 그 고난을 매번 '어렵지 않게' 돌파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신앙심' 덕분이다.

처음 톤즈에 가겠다고 했을 때, 그의 친모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며 말린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아프리카행을 결행한다. 로다가 사망했을 때, 잠시 꿈에서 흔들리지만 역시나 믿음으로 극복한다. 이 신앙심과 믿음은, 일반적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도 훨씬 굳건한 '무언가'이다.

종교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작품 속 인물이 신앙적으로 완전한 건 아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와 유다는 바로 이 점을 공략해서 성공한 작품이다. 하다못해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도, 불완전하게나마 최일도 목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노력했다.

인간적 캐릭터의 인간적 질문을 회피하는 신앙

비신앙인의 질문 간호사 김자영을 연기한 권명현 배우.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뮤지컬 <사랑해, 톤즈>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에 나섰다. 시종일관 '개그' 캐릭터로서 충실하게 극에서 활약하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과 고민조차 쉽게 휘발되는 것은 크게 아쉽니다.

▲ 비신앙인의 질문 간호사 김자영을 연기한 권명현 배우.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뮤지컬 <사랑해, 톤즈>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에 나섰다. 시종일관 '개그' 캐릭터로서 충실하게 극에서 활약하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과 고민조차 쉽게 휘발되는 것은 크게 아쉽다. ⓒ 곽우신


<사랑해, 톤즈>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로다의 죽음도, 이태석 신부의 죽음도 아니다. 2막에서 김영자 간호사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종교도 없고, 깊은 신앙도 없이 그저 '봉사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톤즈에 왔던 간호사다. 하지만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방황하고, 끝내 포기하고 놓아버리려고 한다. 김영자 간호사가 표징하는 인물이 바로 우리네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선한 의지는 가지고 있지만, 이를 끝까지 관철하기에는 부족한 우리.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김영자 간호사의 질문에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질문은 별다른 해답이 내려지지 않은 채 얼렁뚱땅 넘어가 버린다. 그냥 이태석 신부가 책임지면 된다는 식이다. 피자와 콜라, 아이스크림 따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말이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라만차의 돈 키호테처럼 불가능한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없다. 하지만 알돈자처럼 되는 건 가능하다. 돈 키호테가 불어넣은 영감이, 그가 일깨워 준 꿈이, 흔들리고 방황하고 깨질지언정 끝까지 달릴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렇게 평범했던 알돈자는 둘시네아가 되고, 돈 키호테의 죽음 뒤에도 그의 유지를 이어받을 수 있게 된다. <맨 오브 라만차>에 울컥하는 포인트는 바로 여기이다.

김영자 간호사 캐릭터가 진중하고 딱딱한 극의 '연성화'를 맡다보니, 시종일관 코믹한 톤으로 극에 등장한다. 그런 그녀에게 갑작스레 인간적 고뇌를 선사하는 게 튀어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영자 캐릭터의 '코믹함'에 일관성이 생겼을지언정, 정작 그녀가 풀어야 할 난제는 미제로 남는다. 결국 우리는 이태석이 될 수 없다는 막연한 거리감만 재확인할 뿐이다.

마더 테레사가 가톨릭만의 성인이 아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주교 신자에게만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성자'로 추앙하는 이들이 실천한 것은 특정 종교나 교파의 가치가 아니다. 인류 보편애의 관점에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을 해냈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에 관계없이 이들을 존경한다. 동시에, 이들이 저 멀리에 있어서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흔들리고 번뇌하는 '인간'일 때 마음의 움직임은 배가된다.

<사랑해, 톤즈> 속 이태석 신부는 마치 마더 테레사보다도, 프란치스코 교황보다도 흔들림 없는 신앙인 같았다. 그는 사랑과 존경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다가설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도, 닮을 수도 없다.

사장시키기 아까운 의외의 장점, 그래서 더 아쉽다

가수에서 배우로 H.O.T의 전 멤버였던 이재원,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뮤지컬 <사랑해, 톤즈> 커튼콜 인사를 하고 있다. 크게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어 산티노 역을 잘 소화했다. 그러나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지는 못해 배우로서 숙제를 남겼다.

▲ 가수에서 배우로 H.O.T의 전 멤버였던 이재원,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뮤지컬 <사랑해, 톤즈> 커튼콜 인사를 하고 있다. 크게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어 산티노 역을 잘 소화했다. 그러나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지는 못해 배우로서 숙제를 남겼다. ⓒ 곽우신


<사랑해, 톤즈>는 그냥 묻어버리기에 아까운 작품이다. 배우 이재원은, 모르고 갔다면 이재원인 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다. 크게 특징이 있다거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극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본인의 역할을 부드럽게 소화한다. 연기가 다소 어색하지만 레이나의 맑고 깔끔한 노래는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실제로 눈물을 보이며 인물에 집중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사랑해, 톤즈>의 최대 장점은 남수단 톤즈의 사람들을 단순히 시혜적 대상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베풀 때, 상대를 '도움이 필요한' 수동적 대상으로 한정짓는 오류에 빠진다. 물론 동정심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동정심만으로는 상대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해외지원 프로그램이나, 후원의 모임 등을 가보라. 상대가 가장 불행한, 가장 불쌍한 장면을 의도적으로 극화하여 그 한순간이 그들의 인생의, 문화의, 사회의 전부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 과정에서 종종, 이들은 자립하거나 자존할 수 없는 미개하고 불우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상대의 불행한 현실을 고발하고 드러내는 데도 분명 의의가 있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눈높이의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해, 톤즈>는 이 같은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 톤즈의 어려움을 다큐멘터리 장면을 삽입하면서 현실감 있게 전달하면서도, 그들을 그저 가난에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이들로 묘사하지 않는다. 문제는 문제대로 지적하면서, 그들의 희망, 사랑, 삶을 긍정적으로 기술한다. 이는 <사랑해, 톤즈>만의 특장점 중 하나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만든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그 메시지가 전달됐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단순히 이태석 신부의 행적과 그가 추구했던 가치를 알리는 데 목표가 있다면, 뮤지컬 <사랑해, 톤즈>를 보는 대신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면 충분하다. 이를 '뮤지컬'로 굳이 만들었다면 자세한 상황 설명에 치중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보다 묵직한 울림을 줘야 한다.

<사랑해, 톤즈>는 자꾸 '교훈적' 작품이 되려고 의식하다보니 오히려 감동에 불협화음만 생겼다. 우리는 위인전 속 위인이 영웅적 면모를 보일 때보다, 인간적 면모를 보일 때 더 감동한다. 우리는 그 위인이 평범한 인간으로서 겪는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교훈을 얻는다.

고 이태석 신부를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객석을 빠져나올 때의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부디, 다음 공연 때는 천주교인만의 작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웃고 울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뮤지컬 속 대사처럼, 고 이태석 신부가 매료되어 퍼뜨렸던 "향기"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뮤지컬 <사랑해, 톤즈> 포스터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관객과 만났던 뮤지컬 <사랑해, 톤즈>의 포스터.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 뮤지컬 <사랑해, 톤즈> 포스터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관객과 만났던 뮤지컬 <사랑해, 톤즈>의 포스터.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 극단 러브아트



뮤지컬 사랑해 톤즈 울지마 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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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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