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공과 제구력.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생각하는 '좋은 투수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 틀을 완전히 깨뜨린 투수가 등장하면서 야구계가 술렁거렸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까지 단 2승만을 남겨놓고 있는 두산 유희관의 이야기다.

유희관은 지난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와의 정규시즌 7차전에 선발 등판해 5.2이닝 동안 1실점을 기록, 시즌 8승째를 챙겼다. 퀄리티스타트까지 아웃카운트 한 개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마운드를 떠났지만 이날도 역시 에이스다운 피칭으로 팀을 이끌었다.

2013년 5월 초 대체 선발로 등판하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유희관은 이젠 두산 선발진의 없어선 안 될 핵심 요원으로 자리 잡았다. 장원준과 함께 좌완 듀오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그가 리그 최고의 좌완 선발로 꼽힐 만큼 잘 나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불펜피칭하는 유희관 지난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와 두산의 정규시즌 7차전이 시작되기 전 두산 선발 유희관이 몸을 풀고 있다. 위 사진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 사용되었으며, 무단 사용 및 배포를 금합니다.

▲ 불펜피칭하는 유희관 지난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와 두산의 정규시즌 7차전이 시작되기 전 두산 선발 유희관이 몸을 풀고 있다. 위 사진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 사용되었으며, 무단 사용 및 배포를 금합니다. ⓒ 한호성


'선발 체질' 유희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유희관은 9일 경기까지 올시즌 총 12번 마운드에 올라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소화하며 3실점 이하로 기록하는 것)를 무려 세 차례나 기록했다. 해커(NC)와 공동 7위로 소사(LG)나 레일리(롯데) 등에 비해 등판 횟수가 많게는 두 번 정도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의미있는 수치다.

총 80이닝을 소화해 토종 투수들 가운데선 양현종(KIA) 다음으로 많다. 양현종이 유희관보다 한 경기 더 등판했기 때문에 유희관이 앞으로도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지난해에 이어 '토종 투수 최다 이닝 소화'라는 명예를 얻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양현종이나 김광현(SK) 등 리그를 내로라하는 최고 좌완 에이스 반열에 합류한 증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의 경우 1.21로 리그 평균인 1.3 초중반대보다 낮다. 설령 주자를 내보낸다고 하더라도 득점권 피안타율은 2할3푼에 그쳐 위기상황에서의 대처능력도 돋보인다.

사실 지난해만 보더라도 올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해 5월 3일 LG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이후 깔끔한 피칭을 통해 거둔 승리가 몇 차례 없었고 5월부터 7월까진 월간 피안타율이 전부 3할을 넘었다. 8월부터 안정감을 찾아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했지만 유희관에겐 시련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8월 초 기자는 이용철 KBS N 해설위원에게 "유희관의 보직 변경을 전환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 위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딱 한마디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그 친구(유희관)는 딱 선발 체질이다."

결론적으로 선발 체질인 유희관은 올해 한층 더 깊이있는 투구로 무장했다. 12번의 등판에서 5회 이전에 내려간 적은 전무하고 4월 7일 잠실 넥센전과 6월 9일 잠실(원정) LG전을 제외한 열 경기에선 모두 6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이 위원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직접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야기 나누는 유희관과 양의지 지난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와 두산의 정규시즌 7차전이 시작되기 전 두산 선발 유희관과 포수 양의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위 사진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 사용되었으며, 무단 사용 및 배포를 금합니다.

▲ 이야기 나누는 유희관과 양의지 지난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와 두산의 정규시즌 7차전이 시작되기 전 두산 선발 유희관과 포수 양의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위 사진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 사용되었으며, 무단 사용 및 배포를 금합니다. ⓒ 한호성


꿈의 무대를 향한 욕심,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

팀에서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친 덕분에 팀 대표로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올스타전 팬투표 드림 올스타 선발투수 부분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까진 김광현에 밀려 2위를 차지하고 있어 팬투표를 통해 선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팬투표에서 뽑히지 못한다고 축제의 장에 함께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감독추천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언제든지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또 주위를 재밌게 만드는 그의 유머러스한 매력은 올스타전에 딱 맞는다.

유희관은 지난 9일 LG전에서 시즌 8승째를 거둔 후 "올스타전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포스트시즌 무대도 밟아보았고 나름대로 소중한 경험을 많이 쌓았는데 유독 올스타전만 나가지 못한 그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3년간 6월에도 이렇게 가장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나름 꿈의 무대를 향한 욕심을 낼 만한 이유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구속은 느려도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구속이 느린 대신 릴리스포인트, 다시 말해 투구동작에서 공을 놓는 위치가 다른 투수들보다 앞쪽에 위치해 있어 공끝이 위력적이다. 타자들 입장에선 알고도 손을 댈 수 없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지난해까지 가장 큰 단점으로 꼽혔던 체력도 충분히 보강하면서 6월 들어서도 안정감 있는 투구는 여전하다. 2014시즌 총 177.1이닝을 소화했는데 벌써 80이닝에 도달한 것도 체력 관리가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8승 중 6승을 잠실에서 기록하며 '잠실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진 유희관은 두 자릿수 승수를 넘어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털어내려고 한다. 뚜렷한 목표 없이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하겠다는 '잠실 황태자'의 힘찬 발걸음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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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BO리그 두산베어스 유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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