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가 고등학생이다. 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방법은 몇 가지나 될까?

가장 원칙적으로는 수능을 잘 보는 것에서부터 논술, 자기소개서를 기초로 한 입학 사정관제, 내신 등의 여러가지 채널이 있다. 모두 다 합치면 수십 개는 족히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아이는 이 중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각 학교마다 복잡해서 입시 설명서를 정독하고, 각종 입시 설명회를 쫓아 다닌다고 답이 나올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혼돈에 빠진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아이에게 맞는 입시 채널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스펙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이른바 '입시 컨설팅'이 등장했다. 그리고 맞춤 입시 전략을 짜주는 것만으로도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이 오가는 교육 사업이 활성화된 현실에서 아이들은 '정보에 어두워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몰라서 대학을 못 가는' 현실을 포착한 한 편의 예능이 등장했다. 11일 첫 방송된 tvN <성적욕망>이 그것이다.

교육에 대한 욕망을 예능화하다

 tvN <성적욕망> 포스터

tvN <성적욕망> 포스터 ⓒ CJ E&M



대놓고 '욕망'을 제목으로 내걸은 이 불온한 예능은 말 그대로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올인하고 싶지만, 도대체 입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한 학부모들의 욕망을 기반으로 한다.

아이를 대학에 잘 보내기 위해 입시 컨설팅 업체를 찾아드는 부모의 불안함을 두고 <성적 욕망>은 굳이 '돈을 들이지 말라'고 유혹한다. 그리고 한국의 최고 입시 강사들을 모아 성적표 컨설팅에서부터, 풍문으로 떠도는 입시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낱낱이 까발리며 입시 전쟁에 갈 곳 몰라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고품격 정보'를 전해주겠다고 자신한다.

'욕망 아줌마'를 자처하는 방송인 박지윤과 변호사이지만 그 어떤 공익보다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욕망을 최우선으로 함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강용석을 MC로 내세운 <성적욕망>은 이 프로그램의 정서를 대변한다. 거기에, '공부'에 있어서는 빠질 수 없다는 방송인 오상진과 고3 1년 동안 '양'에서 '수'까지 입지전적 성적 향상을 성취한 개그맨 장도연이 합류했다.

이들은 첫 사례로 국제고 학생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고려대를 희망하는 학생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준다. 하지만 이 '컨설팅'의 주체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학원 강사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프로그램 초기 화려하게 자칭 타칭으로 설명된 그들의 스펙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강용석의 아들도 들어봤다는 강의를 했다는 사실, '풍문'으로 들었던 입시 비화에서 '억'을 호가한다는 그들의 몸값 등이 나열되며 강사들의 존재는 부각된다.

하지만 '몸값'으로 부각된 이들의 존재는 '강사는 신발을 벗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는 마무리를 통해, 그저 '돈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소신있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상향된 이미지'는 그들의 말 한 마디가, 한 강사의 의견을 넘어 공신력을 얻는 효과를 낳는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공신력을 얻은 그들의 성적표에 대한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TV를 보는 학부모들에겐 그 어떤 학교 선생님보다도 믿을 만한 '정보'가 된다. 하긴 이미 교육이 교육이 아니라 정보전이 된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장땡인 것이다.

학생의 관심사나 미래의 꿈이 '나부랭이'가 되어도 좋은 걸까

 11일 방송된 tvN <성적욕망>의 한 장면

11일 방송된 tvN <성적욕망>의 한 장면 ⓒ CJ E&M


이들이 이 '정보'를 알려주는 방식에서도 한국 교육의 현실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사회 탐구 영역 성적이 시원치 않은 학생에게 강사가 제시한 방법은 사회 탐구 영역을 공부하는 방법이 아니다. 선택 과목에 대한 평가에서도 학생이 잘 하고 좋아하는 과목인가가 아니라, 점수가 나오기 쉬운 과목인가가 관건이다.

이에 더해 강사는 '차라리 제 2외국어를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그것도 본인의 취향이나 미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유리한 아랍어나, 베트남어로. 거기에 덧붙인다. '올해는 아랍어가 유리할 것'이라고.

프로그램에서도 언급됐듯 이들 강사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은 그 해 수능 문제 적중률, 심지어 수능 출제자 예측율이다. 이쯤 되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강사들이 지칭하는 '선생님'이란, 결국 단적으로 '대학 가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건 아닐까 싶다.

<성적욕망>에서 학생의 관심사나, 미래의 꿈은 '나부랭이'가 된다. '문과는 대학 가기 힘들다'는 말에, '그럼 우리 아이들도 이과로 바꿔야 하나'라고 응수하는 강용석의 모습은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함축해 보여준다. <성적욕망>엔 오로지 단 하나, 그저 대학을, 잘 가고 싶다는 욕망만이 존재한다. 대학을 왜, 무엇 때문에, 가야 하는지 따위의 고민은 이제 사치가 되어 버린 걸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성적욕망 박지윤 강용석 대학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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