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의 한 장면. 이 영화가 주목받는 또다른 이유는 한국 영화사상 보기 드물게 평범한 여성들의 연대적 협력을 다뤘다는 점이다. 이런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상이 내년에는 더욱 깊고 넓어지길 바래본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이 영화가 주목받는 또다른 이유는 한국 영화사상 보기 드물게 평범한 여성들의 연대적 협력을 다뤘다는 점이다. 이런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상이 내년에는 더욱 깊고 넓어지길 바래본다. ⓒ 명필름


<접속> <건축학개론> 등의 작품으로 작품성과 상업성의 조화를 잘 이룬다는 명성을 이어온 명필름이 올해 주목한 건 국내의 불안한 고용현실이다. <카트>는 대형할인마트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노동여건이 지나치게 악화된 것에 대응해 직원들이 함께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이 영화는 우선 생각보다 재밌다. 대형할인마트에서 여성 직원들을 해고하는 사건을 중점적으로 문제시한, 게다가 아예 노조의 파업을 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카트>에 대해 대중은 '재미없을 것 같다' '보기 싫다' '불편할 것 같다' 등의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카트>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예술성이다. 우선 영화가 시작하면 마트 직원들의 오전 조회 장면에 이어 주인공들이 일하는 대형할인마트가 나오는데, 세트로 만들었는데도 깔끔하고 흠잡을 데가 없다. 실제 마트에서 촬영한 것보다 리얼하진 않지만, 바로 그점이 <카트>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예술성은 창의성과 아름다움을 동반할 필요가 있다. 대형할인마트 세트를 만든 <카트> 제작진의 창의성은 그 세트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의 몸 연기로 구현된 아름다움을 만나게 된다. 특히 갑작스런 해고 이후 자신들의 빈자리를 메꾸려는 대체 인력들을 등장인물들이 밀어내는 장면은 국내 고용현실의 현주소를 너무나도 극명히 보여주기에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다.

<카트> 속 등장인물들은 개개인의 성격을 강조받기보단 공동의 목적과 스토리에 부합하기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두 등장인물이 인상적이다. 혜미(문정희 분)와 선희(염정아 분)가 그들이다. <카트>의 두번째 장점은 그 두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호연이다.

특히 염정아는 비교적 진부한 선희라는 캐릭터로 최소한 두 번의 감동을 안겨준다. 일단 아들인 태영(도경수 분)에게 실직 사실을 알리지 못한채 싱크대 앞에서 흐느끼는 장면은 염정아가 뛰어난 배우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법하다. 또, 선희가 태영의 여자친구를 만나 "할머니가 너한테 많이 의지하시겠다"라 말할 대의 선희 표정을 보면 염정아라는 배우에게서 지금껏 경험했던 감동의 절정을 느낄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 특히 젊은이들에게 의미있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영화 <카트>의 한 장면. ⓒ 명필름


부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명필름이 제작한 <카트>. 이 영화의 작품성 또는 완성도는 정직하다. 두 번째 장편 영화를 만든 부 감독으로서는 명필름이란 좋은 제작사를 만나 어려운 과제와도 같은 이 영화를 잘 완성시켰다. 부 감독의 각색 능력도 빛을 발했다.

이 영화를 보면 군데군데 캐릭터성의 비논리성이 포착된다. 쉽고 단순한 스토리와 이야기 전개는 아쉬움도 준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양해 가능한 작은 아쉬움들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10대와 20대들이 봐야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30대 이상의 세대들은 빠르게 기성세대화 되어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카트>에서처럼은 아니지만 고용 불안이나 부당한 근로 여건, 석연치 않은 해고 등은 이 나라에서 직장을 다녀본 이들이라면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카트>에서처럼 비정규직인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런 고용계 현실이 요즘만 그런가? 아니다. 수십년 전부터 그래 왔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국내 고용계를 바꿀 걱정보다 일자리의 보유 여부에 대한 걱정이 큰 사람들이 다수인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현실은 미래에도 지속될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카트>의 제작진이 영화 결말에서 서로 대립했던 혜미와 선희를 공동체화 시킨 것에는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있어도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강요는 없다. 이 영화의 결말에서 희망을 발견하는건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만드는 데에 더 일조할 수 있는 이들은 도경수 때문에 <카트>를 보러가 '영화 개슬프다'는 짧은 감상을 남기는 어린 엑소 팬들이 될수도 있다. 기성 세대에 편입되면,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적응하려 한다. 추후 기성세대가 될 젊은 그들이 그래도 절망적이지 않은 <카트>를 보며 뭐라도 깨닫는 게 의미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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