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암흑기는 올해도 끝나지 않았다.

한화는 지난 1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4로 패하며 실낱같던 탈꼴찌의 희망조차 사라졌다.

올 시즌 49승 2무 75패로 승률 0.395를 기록한 한화는 앞으로 남은 2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최하위 9위 자리가 확정됐다. 이번 시즌에도 프로야구 순위표의 마지막 자리를 지키게 됐다.

이로써 한화는 8개 구단 체제였던 2012년 8위를 시작으로 최근 3년 연속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대 리그였던 프로야구가 1989년 단일 리그로 바뀐 후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무른 것은 역대 두 번째 불명예 기록이다. 첫 번째 3년 연속 최하위 기록은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간 꼴찌였던 롯데가 가지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화의 성적표는 더 우울하다. 한화는 2009년과 2010년에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1년 6위로 잠시 탈꼴찌에 성공한 것을 빼면 최근 6년간 무려 5차례나 최하위를 지켰다.

빙그레 이글스로 출발한 한화는 삼성 라이온즈나 KIA 타이거즈처럼 화려한 우승 전통을 자랑하는 팀은 아니다. 하지만 창단 첫해였던 1986년을 빼고 2009년 이전까지 한 번도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한 팀이었다.

한화는 지난 시즌 '야구 명가'의 재건을 외치며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다. 하지만 김 감독을 뒷받침할 별다른 전력 보강은 없었다. 오히려 선발 에이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다시 최하위에 머물렀다. 지난 2013년 시즌은 신생구단 NC 다이노스가 1군으로 진입하며 프로야구가 9개 구단 체제로 바뀐 첫 해다. 그리고 한화는 프로야구 사상 첫 9위라는 기록을 남겼다.

자존심이 상한 한화는 올 시즌 작심한 듯 자유계약(FA) 시장에서 화끈하게 지갑을 열었다. 무려 137억 원을 들여 정근우(70억 원), 이용규(67억 원)를 영입했고 간판타자 김태균에게도 15억 원의 연봉을 안겨주며 어깨를 두드렸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펠릭스 피에와 앤드류 앨버스를 영입하며 외국인 선수 선발에도 공을 들였다. 이번 시즌, 한화는 당장 4강에 진입하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탈꼴찌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31일 오후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넥센과 한화의 경기에서 8대9로 이긴 한화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14.7.31

지난 7월 31일 오후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9-8로 이긴 한화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상승세를 탄 한화는 8월 한 달 '반짝'했지만 다시 주저 앉으며 탈꼴찌에 실패했다. ⓒ 연합뉴스


'승부사' 김응용도 어쩔 수 없는 총체적 난국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한화는 지난 6월 15일 단독 9위로 떨어진 이후 한 번도 최하위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8월 한때 '반짝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손에 쥔 최종 성적표는 허무하게도 다시 9위였다. 프로 2년 차의 '막내 구단' NC가 3위를 확보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한화는 더욱 초라해졌다.

한화의 이번 시즌을 정리하면 투·타 모두에서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거액을 들여 새롭게 꾸민 타선은 타율만 보면 나쁘지 않다.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는 김태균을 비롯해 피에, 송광민, 김경언이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테이블세터 정근우와 이용규도 2할 후반의 타율로 크게 실망스러운 활약은 아니다.

하지만 타선 전체의 득점권 타율이 부진했다. 팀 득점 역시 614점으로 최하위다. 가장 많은 807득점을 올린 넥센 히어로즈와 200점 가까이 차이가 난다. 또한 김태균과 피에가 나란히 17홈런을 기록하고 있을 뿐 20홈런 이상을 때려낸 타자가 한 명도 없다. 한화에는 상대를 압도하는 거포가 없는 상태다.

마운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케일럽 클레이가 3승 4패 평균자책점 8.33라는 실망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석 달 만에 방출됐고, 라이언 타투스코를 새로 영입했지만 기대했던 반전은 없었다. 앨버스는 계속 함께하고 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하며 재계약이 어려울 전망이다.

외국인 투수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한화의 국내파 투수들 역시 아무도 10승을 올리지 못했다. 선발이 아니라 주로 구원투수로 활약했던 윤규진과 안영명이 팀 내 가장 많은 7승을 거뒀다. 이 부분만 봐도 한화 마운드의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나마 이태양이라는 새로운 유망주를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장종훈, 이정훈, 이강돈 등으로 이어지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리그를 호령했고 한용덕, 송진우, 정민철 등 명투수가 쏟아졌던 1990년대의 한화를 기억하는 야구팬이라면 화려했던 옛 시절이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다.

"안 풀리네" 29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NC의 경기. 김응용 한화 이글스 감독이 경기가 잘 안 풀리자 더그아웃에 앉아서 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 "안 풀리네" 지난 5월 29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NC의 경기. 김응용 한화 이글스 감독이 경기가 잘 안 풀리자 더그아웃에 앉아서 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의 신화를 이끌고, 1500승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그였지만, 결국 한화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 연합뉴스


옛 시절이 그리운 한화 '응답하라 90년대'

한화의 암흑기는 단순히 투타의 동반 부진으로만 설명하기 힘들다. 국내 최고의 2루수 정근우가 와도 고질적인 내야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선수들의 포지션을 이리저리 바꿔보며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결과는 9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107개의 실책이다.

또한 유망주 육성과 외부 전력 영입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얇아질 대로 얇아진 선수층은 몇몇 스타 선수들의 영입으로도 전혀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 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은 높아졌다. 김응용 감독 개인의 지도력이나 특정 선수의 기량에만 기대는 야구로는 더 이상 단기적인 효과도 낼 수 없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김응용 감독은 일찌감치 퇴진 의사를 밝혔다. 한화는 내년부터 새로운 사령탑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2015년부터는 KT 위즈가 1군에 합류하면서 10개 구단 체제로 바뀌게 된다. 한화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한화에게도 희망은 있다. 한화의 선수층 자체는 얇지만 타 구단이 탐낼 만한 기량의 선수들도 있다. 류현진을 메이저리그로 보내면서 지갑도 두툼해졌고, 모기업의 야구단 지원 의지도 강하다. 선수단 전체가 경기력 수준을 높이고 자신감을 되찾는다면 언제든지 꼴찌에서 탈출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무엇보다 한화 이글스의 뒤에는 지겨운 연패에도 불구하고 염주나 목탁까지 들며 간절한 바람으로 응원해주는 '보살' 팬들이 있다.

886899. 최근 6년간 한화의 암흑기를 보여주는 순위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10개 구단 체제가 된다. 가을야구는커녕 탈꼴찌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진 팬들에게 내년에도 '10'위라는 실망을 안겨주지 않으려면 완전히 달라진 팀이 되어 돌아와야 한다. 한화는 과연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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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프로야구 김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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