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 CJ E&M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자고 일어나면 600만 명, 다시 또 자고 일어나면 900만 명이다. 지난 7월 30일에 개봉해 연일 흥행 신기록을 깨고 있는 영화 <명량> 이야기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이번 주말을 기해 천만 관객 돌파도 가능할 기세다. 지금까지 국내 박스오피스 사상 최단 시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개봉 21일 만)이었다. (참고 : '변호인', 숫자와 마케팅에 얽힌 뒷이야기) 그 기록을 <명량>이 절반 가까이 단축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제목처럼 <명량>은 분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다. 영웅을 넘어 성웅으로 추앙받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위인 중 위인이다. 그를 소재로 한 작품이 꽤 나왔을 법하지만 따지고 보면 또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영화 <성웅 이순신>(1962)이 이순신의 일대기를 그려냈고, 그 뒤로 같은 제목의 영화 1편(1971년도 작)과 <난중일기>(1977)라는 작품이 등장했을 뿐이다. 드라마로도 10년 전 김명민이 주연을 맡았던 <불멸의 이순신>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명량>이 보인 것은 영웅 이순신이 아니었다

이순신의 3대 해전으로 불리는 한산도 대첩, 명량 대첩, 노량 해전은 각기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거나와 그 자체가 워낙 극적이고, 우리 민족의 비극과 맞닿아 있기에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 또한 많을 법하다. 동시에 반대로 생각해 보면 섣불리 다루기 쉽지 않은 게 또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다. 워낙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사건이기에 인물 자체에 함몰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이순신에 대한 작품들 중 <불멸의 이순신>을 제외하고는 대중들의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등장한 <명량>이 거세게 흥행하고 있다는 건 그것의 작품성 내지 완성도 등을 떠나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확인 받고 싶어 하는 공통의 무언가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무언가는 이순신의 단편적인 영웅적 면모가 아닌 난관을 이기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였다.

<명량>에 등장하는 이순신은 흔히 우리 관념 속에 있는 명쾌함과 용맹함으로 무장한 전쟁 영웅이 아니다. 굶주림과 적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 받는 군사들을 보며 고뇌하는 수장의 모습이고, 조정 대신과 임금의 견제로 인한 고초로 몸과 마음이 병약해진 인간의 모습이었다.

물론 영화 중후반 이후 61분가량의 격정적인 해전 장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명량>은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복기한 전투신을 관객에게 보이기 위해 해전 장면을 능가하는 67분이라는 시간을 이순신의 심리 묘사와 주변 상황을 정리하는 데에 할애했다. 이순신 역을 맡은 최민식 역시 자신의 특성과 기질로 캐릭터를 휘어잡지 않고, 철저히 인물을 겸손하게 담아내려했다. (참고 : "이순신은 대체 왜 싸웠을까...미치도록 궁금했다")

현실 속 영웅은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 CJ E&M


<명량>에서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전투 신을 돌아보자. <난중일기> 등에 근거한대로 이순신이 당시 임금인 선조에게 올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그 유명한 장계가 등장한다. 또한 두려움에 떠는 군사들을 향해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며 일갈하는 모습 또한 묘사된다.

이 지점에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영화에서도 언급됐지만 이순신이 조국과 동료 대신들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이유 말이다. 바로 충의다. 임금과 상관을 향한 게 아닌 백성을 향한 충의였다. 동시에 일방적 충의가 아니었다. 백성들 역시 이순신에 적극 화답했다.

스치듯 묘사되지만 <명량>에 등장하는 백성들의 고군분투는 이순신이 전쟁에서 승리를 얻게 된 결정적 역할이 됐다. 화약을 실은 왜선이 이순신의 대장선에 접근할 때 목 놓아 외치며 위기를 알린 게 바로 벙어리 정씨 여인(이정현 분)이었고, 왜군의 주요 동태를 파악하며 보고한 이가 또한 탐망꾼 임준영(진구 분)이었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울돌목 조류에 휩쓸린 대장선을 끌어낸 이들이 바로 백성들의 어선이었다.

판옥선에 올라타 창과 칼을 든 스님들, 전쟁에 자원해 노를 잡은 이들 역시 일반 백성들이다. 극 중 코믹한 캐릭터로 등장했지만, 배우 김태훈이 맡은 김중걸이 왜적들의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가 판옥선의 노를 저으며 힘들다고 투덜대는 모습도 기억할만하다. 김한민 감독이 의도한 걸로 보이진 않지만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이 같은 보통 사람들임을 상징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김중걸은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로 당시 전쟁 통에 피신을 다니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기도 했고, 그들 틈에서 얻은 정보를 이순신에게 전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130여 척의 왜선을 홀로 맞선 이순신의 용맹함은 물론 쾌감을 줄만하다. 두려움에 떠는 군사들이 각성하는 모습 또한 감동이 있다. 다만 이들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필부들의 결정적 역할 덕이었다. 진짜 영웅은 왜선을 몰아내고 갑판 아래에서 자랑하듯 허풍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영화 말미에 이순신이 고백하듯 내뱉는 말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들 이회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이순신은 "천행이었다"라고 답한다. 그 천행이 곧 '백성의 각성'이었다.

<명량> 이후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2014년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변호인>

2014년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변호인> ⓒ NEW


분명 <명량>은 영화적 약점도 크다. 이순신을 제외한 여러 캐릭터들이 소모적으로 쓰였고, 이야기의 유기성보다는 편집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로 힘을 얻은 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지금 환호를 받는 이유는 실존 인물과 역사 앞에서 겸손한 묘사법을 택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명량>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됐고, 동시에 영화 속에서 자신이 속한 이 사회의 부정함을 읽어낼 수도 있게 됐다. 그 예로 많은 이들이 <명량>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찾기 힘든 올바른 리더십의 전형으로 읽고 있음을 든다. 또 다른 여담이지만 <선조실록>에 따르면 왜란 후 선조 임금이 논공행상을 위해 녹훈도감을 설치했지만, 정작 큰 공을 인정받은 이는 이순신을 비롯한 참전자들이 아닌 명나라 군사의 지원을 요청하고 왕의 피신을 도운 무리들이었다. 자기 사람 챙기기는 지금의 누구만큼 철저했던 임금이었던 셈이다. <명량>을 통해 충분히 당시 위정자들에 대해 비판할 여지가 있다.

또 다른 면에서 사실 <명량>은 그 미덕만큼 함정 또한 크다. 실존 인물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를 두고 그 안에서 리더십 고찰과 보통 사람들의 힘을 읽어 내지만 상영관의 불이 켜지고 극장을 빠져나오면 그뿐이다. <명량> 역시 대기업 자본의 투자로 양질의 작품이 됐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시장 만능주의 영화산업을 비판하는 이는 드물다.

위 말에 세상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영화는 영화로 끝내자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을 기억해도 같은 비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기 욕심 채우기가 아닌 시민과 백성을 향해 삶을 던졌던 두 인물에 약 이천만 명의 관객이 호응했지만 이 사회는 과연 옳게 바뀌었는가.

그냥 흘리기에는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변호인>과 곧 돌파할 <명량>의 존재감이 아쉽다.  물론 그간 오락성만을 추구했던 천만 관객 영화가 있었고, 삐뚤어진 애국주의에 호소한 <디워>같은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명량> 마저 단순한 오락영화로 남고 기억된다면, 성웅 이순신의 위대함 역시 빛바랠 것이다.

명량 군도 최민식 이순신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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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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