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 포스터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 포스터 ⓒ 지금이 아니면 안돼,인디플러그


2003년 127억의 제작비를 들인 <원더풀 데이즈>의 야심 찬 도전이 실패를 겪은 후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은 한동안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2004년에 <망치>, 2006년에 <아치와 씨팍>이 나오긴 했으나 명맥을 유지하는 선에 그치던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2011년에 새로운 소재와 빼어난 완성도를 겸비한 <소중한 날의 꿈><돼지의 왕><마당을 나온 암탉>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이후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은 <파닥파닥><사이비> 같은 순수 창작 애니메이션과 TV 애니메이션을 극장가로 옮긴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볼츠와 블립> 등으로 보폭을 넓혀갔다.

그러나 한국에서 극장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여전히 도전으로 여겨질 정도로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의 영화가 우리 곁으로 불현듯 날아왔다.

얼룩소로 변한 남자?...장형윤 감독의 독특함 녹아 있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의 한 장면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의 한 장면 ⓒ 지금이 아니면 안돼,인디플러그


어느 날 갑자기 얼룩소로 변해버린 경천(유아인 목소리)과 멀린(이돈용 목소리)의 마법으로 인공위성에서 소녀로 변한 우리별 일호(정유미 목소리)가 만난다는 설정은 판타지와 현실 세계를 씨줄과 날줄 삼아 엮었던 장형윤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낯선 상황이 아니다. 그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도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서 슬픔에 잠긴 일호에게 이순신 장군이 위로를 건네는 장면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들이민다.

인공위성 우리별 '일호'에서 소녀로 변한 '일호'는 인간의 모습을 지녔으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존재다. 그녀에겐 <오즈의 마법사>에서 인간의 심장을 가지고 싶어 한 '양철 나무꾼'의 정서가 묻어 있다. 마음을 잃고 사람에서 얼룩소로 변한 경천은 흡사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들의 동물들, 이를테면 스스로 인간이길 거부하고 돼지로 변한 <붉은 돼지>나 탐욕이 인간을 돼지로 만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케 한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장형윤 전작들의 다양한 요소가 녹아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을 준다. 황당한 상상력은 기본이고, 무협물의 색채에선 <무림일검의 사생활>이 떠오르고, 동물이 천연덕스럽게 등장하는 모습에선 <내 친구 고라니><아빠가 필요해>가 느껴진다. 그만의 독특한 코미디와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양념처럼 뿌려졌다.

88만 원 세대 등 꿈 잃어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노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의 한 장면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의 한 장면 ⓒ 지금이 아니면 안돼,인디플러그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현실을 반영하는 자세다. 현실의 풍경은 바로 시선에 들어온다. 반지하, 월세, 옥탑방 등의 현실은 영화에서 있는 그대로의 경치로 등장한다.

현실을 우화적으로 다루는 방식도 흥미롭다. 영화는 마음을 잃었을 때에 동물이 된다고 설정한다. 뮤지션을 꿈꾼 경천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한다. 그 순간 그는 얼룩소로 변한다. 꿈을 포기하고, 희망을 상실한 경천은 이른바 '88만 원 세대'라 불리는 청춘의 자화상이다.

얼룩소가 된 경천은 간을 노리는 사냥꾼과 소각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사냥꾼은 경천 같은 세대에게 빨대를 꼽아 흡혈하는 자들이다. 영화는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소각자를 도시의 불안이 만든 괴물이라 설명한다. 이것은 사회 시스템, 기득권 세력, 미래에 대한 두려움, 무기력 등 다양한 층위로 풀이가 가능하다.

두려움에 떠는 경천에게 북쪽마녀(황석정 목소리)는 소각자에게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자기를 따라 숲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소각자에게 용기 있게 대항하는 것은 저항을 의미한다. 반면에 숲으로 가겠다는 결정은 더는 꿈을 좇지 말고,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안락함에 안주하라는 뜻이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의 한 장면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영화의 한 장면 ⓒ 지금이 아니면 안돼,인디플러그


우리별 일호를 발사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자국의 인공위성을 소유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별 일호는 대한민국이 가진 미래를 향한 꿈이다. 영화에서 일호도 희망의 등불을 상징한다. 또한, 인공위성의 역할처럼 잃어버린 청춘에 길을 알려주는 좌표로 작용한다. 경천은 일호를 만나면서 희망을 되찾고,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된다. 경천은 일호에게 사랑을 느끼며 꿈을 다시 꾸게 되고, 일호는 경천을 통해 사람의 감정, 즉 사랑을 배운다.

장형윤 감독은 자신의 전작인 단편 영화 <편지>에서 누군가에게 완벽한 진심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문을 품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있다는 건 매 순간 고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일호는 경천을 통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경천이 일호에게 진심이 닿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피아노를 치는 순간 날아오를 때에 장형윤 감독이 <편지>에서 가진 의문은 마침내 해답을 찾는다.

마법 같은 그 순간에 "외롭게 고립된 우리는 하나가 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이것은 감독이 88만 원 세대를 포함한 꿈을 잃어가는 모든 자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노래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장형윤 유아인 정유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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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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