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한 장면. 아들 케이타를 바라보는 아버지 료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한 장면. 아들 케이타를 바라보는 아버지 료타 ⓒ 티브로드폭스코리아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고 자신과는 다르게 승부욕이 강하지 않은 아들 케이타의 모습이 아쉽지만, 잘 나가는 중견기업의 간부 료타의 가정은 단란하다. 여유로운 환경 속에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아이가 새로운 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료타 부부는 아이를 출산한 병원으로부터 황당한 연락을 받게 된다. 출생 당시 병원에서 실수로 자녀가 바뀌었다는 것.

어떻게 아이가 바뀌게 됐는지 차츰 구체적인 이유가 드러나지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료타는 혼란스럽다. 병원 측은 사죄와 함께 "일반적으로 다들 아이를 바꾸게 된다"고 권유한다. 그러나 6년 간 키워온 기른 정이 있기에 선뜻 내키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두 아이를 다 맡아 기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뒤바뀐 아이가 자라온 가정은 부유층인 자신과는 다르게 변두리에 사는 서민이라는 점도 은근히 못마땅하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내 뜻대로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 쪽 가정과도 협의가 필요하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가정은 평온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고뇌와 성찰 일깨우는 성장영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한 장면. 친자의 사진을 확인하고 있는 료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한 장면. 친자의 사진을 확인하고 있는 료타 ⓒ 티브로드폭스코리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병원에서 바뀐 아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간혹 드라마 등의 소재로도 활용되는 부분도 있지만 영화의 방향은 다르다. 지금 기르고 있는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벌어지는 갈등과 고뇌 속에서 성찰을 일깨워주는 성장영화다.

극적인 긴장이 고조될 법한데, 영화는 의외로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내면적인 고민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속으로 고뇌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표출되기는 한다. 그래도 비교적 잔잔하게 진행되는 영화는 아이가 뒤바뀐 것을 알게 된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과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아버지의 존재와 아이를 기른다는 것에 대해서도.

부유한 환경에 독립적이고 자립심을 강조하며 케이타를 키운 료타와는 다르게 류세이를 키워 온 유다이는 전기 수리를 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두 가정의 차이는 아이를 대하는 시각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급차와 작은 승합차, 호텔처럼 깔끔한 집과 동생들과 함께 사는 허름한 집. 고장 난 장난감을 새로 사 주는 아버지와 고쳐주는 아버지 등등. 뒤바뀐 두 아이가 자라온 환경이 다른 탓에 뒤늦게 원위치로 돌려진다 해도 이미 지나온 6년의 시간의 무게감이 만만치 않게 작용할 게 뻔하다. 그렇다고 양쪽 모두 친자가 따로 있음이 확인된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려는 것은 어느 부모건 마찬가지겠지만 방식의 차이는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비록 회사 일에 바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나 료타는 독립심을 키우는 것에 방점을 뒀기에 지금껏 케이타를 키운 방식이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류세이가 자란 집안 분위기가 비교되며 료타의 방식에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비록 가난한 환경이지만 류세이를 키워 온 유다이의 가정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방식은 살갑고 친근하다. 형제 없이 홀로 자란 케이타와 달리 류세이는 두 명의 동생들이 있는 것도 가볍게 볼 수 없는 부분이다.

가족은 핏줄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한 장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한 장면 ⓒ 티브로드폭스코리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도 아쉬움과 허전함은 남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결정을 내린 후 애써 꿋꿋한 모습을 보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이나 부모 모두 힘들고 착잡한 나날일 수밖에 없다. 류세이가 료타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왜요?"라고 의문을 다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서 료타에게 길잡이가 되는 것은 뒤늦게 돌아보는 자신의 가정사다. 지나 온 시간을 다시금 생각해 보고, 주변을 통해 듣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가족의 의미와 아버지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한 단계 성숙해지는데 단순히 료타만이 아닌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료타가 아이의 시선을 의식하고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며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 훈훈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런 공감대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예컨대 '용돈을 많이 주는 아버지'와 '아이 옆에서 함께 놀아주는 아버지' 중에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춰주는 아버지의 자세가 중요함을 또 강조한다. 그리고 가족이 꼭 혈연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같은 핏줄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전해준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폭넓게 생각할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보니 고요한 바다처럼 진행되던 영화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큰 파도처럼 꽤나 묵직하게 다가온다. 어릴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게 하고, 자식을 키우고 있는 지금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셈이다.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것이 뭔지 고민하며 만들어"

 지난 12월 19일 개봉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터

지난 12월 19일 개봉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터 ⓒ 티브로드폭스코리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으로 201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다. 이후 산세바스찬 영화제와 밴쿠버 영화제 등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촬영과 영화제 참석 등으로 어린 딸과 함께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아 힘들었다"면서 "나를 낯선 사람처럼 대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가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등의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는 최근 한국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자리에서 "이전에는 누군가의 자녀라는 입장만 갖고 있었다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으며 자연스레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이 같은 시선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고요하게 흐르는 영화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흥행세는 요란할 정도다. 1만 관객이면 흥행 성공이라는 독립예술영화 시장에서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는 5일 현재 6만 관객을 가볍게 넘어 7만을 향해 가고 있다.  다들 누군가의 자식이자 부모로서 영화가 와 닿는 면이 크다는 게, 흥행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일본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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