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대세로 떠오른 존박의 고민. 14일 방송된 <방송의 적> 중 한 장면.

14일 방송된 <방송의 적> 중 한 장면. ⓒ CJ E&M


지난주 tvN <꽃보다 할배>에서 박근형은 수십 년 동안 연기 생활을 해온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근엄하고 위압적인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형들과 여행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풀어져서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 드러났다"면서 "다음에 연기할 때, 사람들이 내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놓지 않은 박근형의 고뇌는 진중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의 이미지를 부숴가며 스스럼없이 속내를 보여줘야 환영받는 시절이다. 물론 꼭 망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MBC <일밤-진짜 사나이>의 출연진은 고된 훈련에서도 변치 않는 순수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고, <일밤-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나 노래 이미지와 달리 자상한 면모로 주목받고 있으니까.

Mnet <방송의 적>은 '대중이 연예인에게 바라는 진솔한 속내'라는 갈증의 지점에 존재한다. <방송의 적>은 음악적으로 좀 있어 보이는 뮤지션인 이적과 존박을 각각 여자밖에 모르는 철면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보로 만들어버린 '리얼리티 쇼'이다. <방송의 적>은 이적과 존박의 기존 이미지를 뒤틀어 보인다. 분명 쇼이지만 이 모습이 너무도 그럴듯한 나머지 이적은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존박은 '예능 대세'로 거듭났다.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결국 만들어진 세트를 탈출했던 것처럼 <방송의 적>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이적의 '일장야몽'이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시청자는 여전히 <방송의 적> 속 이적과 존박을 '리얼'로 소비하고자 한다.

<방송의 적> 마지막 회에서 존박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신곡 순위는 자꾸 떨어지는데, 예능 섭외는 물밀 듯이 들어온다"고. 존박은 MBC <무한도전> 예능 기대주 특집에 나와 한껏 웃음을 선사하는가 하면 지지부진하던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조차 화제의 중심에 오르게 했다.

시쳇말로 잘 될 때는 그저 숨만 쉬어도 반응하는 것처럼 존박이 나와서 눈만 멀뚱멀뚱하니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채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청자가 데굴데굴 구를 상황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에서 존박이 등장하는 장면의 상당 부분이 그렇다. 함께 <슈퍼스타K2>에 출연해 1등을 거머쥔 허각이 노래만 발표하면 음원차트 1위를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미국 유학파 출신 엄친아였던 존박이 '바보' '덜덜이' '냉면 덕후' 캐릭터로 예능을 누빌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방송의 적> 마지막 회에서 유희열은 '감성 변태' 캐릭터로 등장해 리얼리티 쇼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줄 모르면서도 채찍을 즐겨 이용하며, 존박의 무릎에 걸터앉는 등 '감성 변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물론 그간 <방송의 적>에서 이적이 보여준 '속물'의 경지는 레전드급이다. 하지만 유희열과 이적이 아무리 푼수를 떤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음악적 세계의 공고함을 인정받았으니까.

하지만 존박은 아직 미지수다. 단박에 예능 기대주가 되어 버린 그가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길이 과연 음악적 영역의 고유성을 훼손하거나 폄하하지는 않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놀이처럼 시작한 <방송의 적>은 '예능 블루칩' 존박을 낳고 종영되었다. 이러다 혹시 <방송의 적>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진짜 <존박쇼>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방송의 적 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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