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신' 공식 포스터

▲ '직장의 신' 공식 포스터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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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시작된 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는 재벌 2세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요즘 직장 내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2007년 일본드라마 <만능사원 오오마에-파견의 품격>이다.

오랜만에 TV 드라마에 얼굴을 드러낸 김혜수와 오지호, 정유미 등의 연기는 무리 없이 극에 녹아들었다. 이른바 '직딩'들의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낼 드라마치곤 코믹함도 만만치 않다. 정규직과 계약직, 그 불꽃 튀기는 신경전도 볼만하다.

비정규직·정규직 사원들 이야기…소재의 차별화

요즘 우리 드라마에는 '돈'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돈에 얽힌 살인, 치정, 복수 등 사건들은 날이 갈수록 세밀하고 극적으로 연출되는 경향이 있다. 자극이 자극을 부르는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현실과의 괴리감이 워낙 큰 탓에 시청자들은 대개 드라마 속 상황에 '공감'하기보다는 꼬이는 스토리에 '흥미'를 느끼며 보게 된다.

가족 중심의 드라마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등장인물간의 얽히고설킨 관계의 복잡다단함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여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지만, 때로는 피곤함을 느끼게도 한다. 드라마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기는커녕,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상황을 '재현'해내는 데 그치는 탓이다.

그런 가운데 시작된 <직장의 신>은 표면적으로 일단 '돈'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고, 등장인물들이 조금 건조한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 이유에선지 한국 드라마들의 큰 특징인 '찐득한' 느낌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비정규직 사원 미스김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비정규직 사원 미스김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 KBS


<직장의 신>은 직장 내 비정규직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입해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정규직으로의 취업이 어려워 한시적 계약직에 몸담아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아주 반가운(?) 드라마가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인 비정규직 사원 미스김(김혜수 분)의 상상초월의 활약,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정규직 사원 장규직(오지호 분)의 분투 등이 극의 중심을 이끌어 가며, 직장 내의 업무에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곁가지를 이루고 있다.

미스김은 누구도 가까이 하기 힘든 냉랭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의 과거에 답이 있는 듯하다. 그의 단단해 보이는 외피 속,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연이 얼마나 개연성 있게 펼쳐지냐에 따라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회사나 동료를 위해서도, 그렇다고 상사를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출퇴근 시간과 업무 분담 등에 있어 철저히 회사가 정한 규칙만 지켜 일하는지라 주변의 눈총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일에 완벽하게 대처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다.

'내일 보자'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는 정규직 사원 장규직은 우리의 직장문화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직장이 '돈을 버는 행위'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 그러나 그에게 동료란 자신과 같은 '정규직'에 한해서다.

사실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적 환경을 보면 미스김은 매우 인정머리 없고 애사심 따위는 없는 냉혈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에 반해 장규직은 회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 인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해관계나 처한 상황에 따라 태도가 쉽게 변하는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문화의 총아다. 그의 충성심과 능력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모토가 적용되는 곳에서만 통한다.

'미스김'이라는 판타지,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이유

<직장의 신>은 현재 비정규직들에게 위안을, 정규직들에게는 이해심을 넓힐 수 있게 하는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까. 우리의 직장에는 속 시원하게 정규직들을 '물 먹일' '미스김'도 없고, 역지사지를 바라기에는 우리의 서열문화가 너무 뿌리 깊으니 말이다.

이르면 유치원 시절부터 서열문화를 배우고 자라나는 우리에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생각하는 사고는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는 동네와 아파트 평수, 출신 대학이 어디냐에 따라 철저히 경계를 그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

그래서 <직장의 신>은 대놓고 '돈'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보다 오히려 더욱 두려운 주제를 가졌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라면, 하루하루 살얼음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담아낸다면, 불편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차라리 몇 백억을 가운데 두고 싸움을 일삼는 이야기가 더 맘 편하게 볼 수 있는 주제일 수도 있다.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정규직 사원 장규직(오지호 분)이 계약직 정주리(정유미 분)와 이야기하고 있다.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정규직 사원 장규직(오지호 분)이 계약직 정주리(정유미 분)와 이야기하고 있다. ⓒ KBS


'못된' 정규직 장규직은 결국 비정규직 미스김의 공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일부의 '못난이'들을 응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으로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된다면 말이다.

드라마 속 사원들 간의 화해와 용서는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 그들 사이에서 '존중'과 '사랑'이 싹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도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지엽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채용하는 불합리함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해결책을 찾는 것은 요원하다. 문제는 '시스템'이지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마침 지난 8일, <직장의 신>과 같은 월화드라마로 MBC <구가의 서>와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양 사극의 극중 인물들이 입만 열면 '신분'을 내세우며 상대를 윽박지르는 사이, <직장의 신>의 주인공들은 그것의 '극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가치는 입증해 낸 셈이 아닐까.

고용 신분을 떠나 사람 대 사람이 갈등과 대결을 거쳐 이해하고 화해해 나간다는 스토리로도 현재로선 충분하다. 이 정도로 현실을 그려내 주고 있는 드라마도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극중 영웅인 미스김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어도, 장규직이 보여주는 '찌질함'이 아무리 어이없어도, <직장의 신>이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KBS 직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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