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슐츠와 장고 프리맨

닥터 슐츠와 장고 프리맨 ⓒ 와인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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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히틀러와 괴벨스를 폭사시킨 쿠엔틴 타란티노는 신작 <장고>에서는 백인 악당들에게 분노의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타란티노는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력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백인 장고는 가고, 흑인 장고가 왔다

<장고>는 1966년에 프랑코 네로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에서 제목과 주인공 이름을 따왔다. 물론 타란티노는 너무나 유명한 캐릭터를 그만의 방식으로 변주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천부적인 총잡이가 흑인 노예 출신이라는 점이다.

때는 1859년,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 영화의 무대는 텍사스, 테네시, 미시시피 즉 미국의 남부이다. 흑인 노예 장고(제이미 폭스 분)는 미시시피 노예시장에서 팔려 어딘가로 끌려간다. 죄수처럼 포승줄에 묶여 있고, 발에는 쇠사슬이 달려 있다. 그가 이렇게 팔려가게 된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장고는 아름다운 흑인 노예 브룸힐다(케리 워싱턴 분)를 사랑하게 되고 둘은 자유를 찾아 도망치다 잡힌다. 화가 난 주인은 둘의 볼에 낙인을 찍고 각각 다른 곳으로 팔아넘긴다.

쇠사슬에 묶인 발을 질질 끌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끌려가던 장고 앞에 닥터 슐츠(크리스토퍼 왈츠 분)라는 괴상한 총잡이가 나타난다. 그는 전직 치과의사이자 현직 현상금 사냥꾼이다. 슐츠는 자신이 잡아야 할 현상수배범의 얼굴을 장고가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구출한다. 이후 둘은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 백인 악당들을 찾아다닌다.

 슐츠의 제안에 따라 현상금 사냥꾼이 된 장고

슐츠의 제안에 따라 현상금 사냥꾼이 된 장고 ⓒ 와인스타인


악당도 잡고, 사랑하는 여자도 찾고

장고가 슐츠를 도와 현상수배범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슐츠가 브룸힐다를 찾아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장고는 브룸힐다와 만나기 전에, 여러 백인 악당들을 찾아내고 슐츠와 함께 그들을 처단하고 현상금을 받는다. 그런데 장고가 백인 악당들에게 분노의 총알을 먹일 때, 관객은 그와 함께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브룸힐다에게 채찍질을 하던 백인 현상수배범을 찾아냈을 때, 장고는 예전에 그 백인 악당이 흑인 노예를 재미로 채찍질하던 것을 기억하고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한다. 이때 통쾌함을 느끼지 못할 관객은 거의 없다. 그리고 KKK단이 슐츠와 장고를 죽이려고 하다가 도리어 다이너마이트 폭탄 세례를 받을 때 그 통쾌함은 절정에 이른다.

이제 슐츠와 장고는 바로 브룸힐다를 노예로 부리고 있는 이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브룸힐다를 산 백인이 악당 중의 악당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다. 대농장주인 그는 흑인노예들을 죽을 때까지 격투시키는, 일명 '만딩고' 노예 조련사이자 도박사다. 그는 격투가 두려워 도망가는 노예를 개가 잡아먹도록 만드는 잔인한 인간이다.

 캘빈 캔디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낸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캘빈 캔디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낸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 와인스타인


만만치 않은 악당, 그리고 복수혈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가장 빛나는 대목은 바로 캘빈 캔디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만찬과 거래다. 브룸힐다를 구해내기 위해 슐츠와 장고는 만딩고를 사려는 백인 갑부와 흑인 조련사로 가장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피 비린내나는 총격전이 벌어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예상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장고는 브룸힐다와 재회하고, 둘은 자유인이 되어 길을 떠난다. 캘빈 캔디의 농장에서 흑인들은 해방되고, 백인들은 죄다 죽음을 면치 못한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2시간 40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타란티노의 잘 짜여진 각본과 시청각적으로 풍성한 연출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세 명장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충직한 '겉만 흑인' 스티븐을 맡은 사무엘 잭슨의 연기는 명불허전

충직한 '겉만 흑인' 스티븐을 맡은 사무엘 잭슨의 연기는 명불허전 ⓒ 와인스타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명장면 셋

첫째, 캘빈 캔디가 장고에게 성을 묻는 장면. 장고가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슐츠는 장고의 성이 프리맨이라고 한다. 장고 프리맨(Django Freeman). 이는 중의적인 표현이자 일종의 예시이다. 장고를 장고 프리맨이라고 말하는 순간 장고는 자유인이 된 것이고, 결국 장고는 다른 흑인 노예들마저 해방시킨다.

둘째, 슐츠가 캘빈 캔디의 악수를 거절하는 장면. 이 장면은 거래가 끝난 후, '악수를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라는 아주 사소한 문제를 첨예한 대립항으로 설정한다. 캘빈 캔디는 계약은 악수 후에야 공식적으로 성립된다는 남부의 전통을 들먹이고, 슐츠는 자신은 남부 사람이 아니라 독일인이니 그 전통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슐츠는 악수가 아니라 죽음을 택함으로써 그 자신의 윤리를 증명한다. 그 윤리는 '악당과 어쩔 수 없이 거래는 할지언정 악수는 하지 않는다'이다.

셋째, 캘빈 캔디 농장의 집사인 흑인 노예 스티븐이 저녁 만찬에 등장하는 장면. 타란티노는 스티븐이라는 백인에게는 우스꽝스러우면서 흑인에게는 무서운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써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 노예도 있음을 보여준다. 스티븐은 캘빈 캔디의 '입속의 혀'처럼 구는데 진짜 캘빈 캔디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캘빈 캔디의 썰렁한 농담에도 폭소를 터뜨린다. 그렇게 헐렁해 보이는 '겉만 흑인' 스티븐이 장고와 브룸힐다 사이를 간파하고 주인에게 일러바칠 때는 소름이 끼친다.

같은 시기에 나온 스필버그의 <링컨>이 노예제 폐지를 위해 고뇌하는 백인 대통령을 그렸다면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노예제의 피해자였던 흑인 총잡이를 묘사한다.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원제는 <Django: Unchained>, 우리말로 하면 <장고: 해방된 자>이다. 타란티노는 '분노'나 '추적'보다는 '해방'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장고: 분노의 추적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이미 폭스 크리스토퍼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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