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 '문학의 밤' 특집의 출연자들

라디오스타 '문학의 밤' 특집의 출연자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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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는 '문학의 밤' 특집이었다. 어설프지만 그 안에서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졌다.

출연자는 김애경·조민기·장현성·김보성이었다. 이들은 각각 수필, 사진, 시나리오, 시를 쓰는 작가로서 출연했다. <라디오스타>가 그 어떤 토크쇼보다 뛰어난 점은 바로 이런 예상외의 조합, 그리고 그 조합에서 발행하는 통일성에 있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장현성이 출연섭외에 흔쾌히 응했다가 다른 출연자를 알고 나서 출연을 망설였다는 대목을 눈여겨보자. 처음엔 서먹한 사이지만 '문학의 밤'이라는 주제 아래서 장현성은 출연을 망설이게 했던 옆자리의 김보성과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어우러졌다. 이것이 바로 <라디오스타>의 힘이다. 같이 묶어서 생각하기 힘들었던 게스트들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말하면서 웃음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김애경과 조민기의 예술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웃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네 명의 게스트가 자신의 창작활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기에는 새겨들을 만한 지점이 반드시 있다.

김애경은 젊은 시절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시고도 떫고도 더러운 사랑>이라는 책을 썼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왜 '더러운'이 포함된 것일까. 그는 '완벽한 이기주의자'에게 빠져셔 모든 것을 다 바쳤으나 끝내 인간적으로 배신당했다고 한다. 속에 쌓인 한을 책을 써서 풀어낸 것이다.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에서라면 상당히 우울했을 이야기가 <라디오스타>에서 웃음으로 승화됐다. 짓궂은 MC들은 김애경의 책 목차가 상당히 '야하다'고 지적한 뒤, 실제 내용도 그러냐고 물었다. 이때 김애경의 대답이 걸작이다. "당연히 들어 있다. 그런 것들을 빼버리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대답에 동의 안 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민기는 사진을 잘 찍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프리카에 가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노인을 찍었을 때, 사진에 관해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웬만한 사진작가들이 품고 있는 문제의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고통에 처한 사람을 찍고 나서 잘 나온 사진 때문에 '뭔가 한 건 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자신에 대해 조민기는 소스라치게 놀란 모양이다. 사진작가들은 그럴 때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사진 찍는 일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조민기는 그 경험에서 사진 찍는 마음을 고쳐 잡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민기가 단순히 취미로 사진을 찍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장현성-김보성, 진지함이 선사하는 웃음

장현성은 시나리오 두 편을 썼다. <로망스>와 <오직 그대만>. 두 편 다 흥행에 성공하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말하기는 했지만, 장현성은 한국영화계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원래의 시나리오와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제작 과정 중의 여러 간섭이 본래의 의도를 망쳐놓는 것을 가리킨다. "10년을 쓰고, 1년을 영화화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소지섭이 출연하기로 한 뒤에 1주일 만에 투자를 다 받았다"는 대목에선 반대로 스타에게 선택받지 않으면 사장되는 수많은 시나리오를 떠오르게 한다. 시종일관 장현성은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진지한 것이 또 재미있는 것일 수 있음을 김보성과의 대조를 통해 보여주었다.

의리의 사나이 김보성은 그의 주특기인 시짓기를 이날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물론 그의 시는 대부분 시가 아니라 산문이며 '의리의 사나이' 예찬론으로 끝난다. 하지만 어떠랴. 그가 시를 읊을 때 보여주는 진지한 태도는 그 자체로 웃음을 선사했다. 이날 그는 월북시인 설정식의 외손자임을 밝혀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보성의 외가는 모두 시인의 피가 흐르고, 친가는 모두 무인의 피가 흐른다는데 그는 친가의 피를 확실히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

 '80년대'를 주제로 한 장현성과 김보성의 즉흥시 대결 후 조민기의 반응

'80년대'를 주제로 한 장현성과 김보성의 즉흥시 대결 후 조민기의 반응 ⓒ MBC


이날 김보성이 선사한 웃음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즉흥시였다. 장현성과 대결이 붙어서 더 웃겼다. 특히 80년대 주제로 한 즉흥시 대결은 포복절도할 대목이다.

장현성은 "거리는 맵고 / 친구들의 미소는 / 태양처럼 찬란하다 / 쓸쓸한 오후 / 네게 가고 싶지만 /눈이 매워 갈 수 없구나"라고 먼저 시를 지었다.

이에 김보성은 이렇게 응수했다. "차디찬 매운 바람이 부는 / 어느 산기슭에 쓰러져 있는 / 너희들은....." 김보성은 여기서 포기하고는 "즉흥시에 약하다"고 고백했다. 조민기의 지적대로 김보성은 이날 장현성이 한 말에서 몇 가지 단어를 가져와서 말을 잇곤 했는데 그것이 두 출연자를 대비시켜 더 큰 웃음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예상을 깨는 출연자의 섭외와 MC들의 짓궂은 진행을 원동력으로 <라디오스타>는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라디오스타>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더 재밌는, 럭비공을 갖고 하는 예능계의 '수퍼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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