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사의 꽃, '공항패션'을 하고 싶은데, 공항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패션을 모릅니다. 꼭 오뜨쿠뛰르와 쁘레따뽀르떼의 런웨이 위에서만 패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경악하게 만드는 '앗' 아이템이지만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패션, 종종 그 해 S/S·F/W 컬렉션의 트렌드는 벗어나지만 웃음을 주는 패션, 이를 '공황패션'이라 부르기로 합니다.-편집자 주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거지의 품격'에서 꽃거지 역할을 맡은 개그맨 허경환

▲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거지의 품격'에서 꽃거지 역할을 맡은 개그맨 허경환 ⓒ KBS


그는 구걸하지 않는다. 호기심을 팔 뿐이다. 사지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왜 거지가 됐을까? 구구절절한 사연이 궁금해서 죽겠을 무렵에 그가 넌지시 빈손을 내민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당신은 어느새 지갑을 열고 있다.

재작년, 중국의 이른바 '꽃거지'가 화제가 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영화배우 금성무를 닮은 잘생긴 외모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인의 행색을 한 남자의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그의 사진을 본 일부 누리꾼들은 "옷이 지저분하고 머리카락이 심하게 엉켰지만, 얼핏 보면 일부러 스타일을 만든 것 같다"고 평했다.

KBS <개그콘서트> '거지의 품격' 속 허경환은 중국 '꽃거지'의 패션을 디테일하게 패러디했다. 거지패션이 종종 스타들의 빈티지룩에 영감을 주곤 했지만, 이건 그냥 '빈티'지.

 중국에서 영화배우 금성무를 닮은 외모로 화제가 된 일명 '꽃거지'(왼쪽)와 이 패션을 패러디한 '거지의 품격'의 허경환

중국에서 영화배우 금성무를 닮은 외모로 화제가 된 일명 '꽃거지'(왼쪽)와 이 패션을 패러디한 '거지의 품격'의 허경환 ⓒ 중국온라인게시판, KBS


스트리트 패션은 절대 단벌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시사철을 날 수 있도록 탈의가 가능한 여러 장의 옷을 겹쳐 입으면 추위와 더위에 대비할 수 있다. 레이어드의 멋은 덤이다. 현란한 춤사위에도 쉽사리 배가 꺼지지 않게 허리춤을 동여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체크 와이셔츠와 루즈핏 베스트, 짙은 그레이 색상의 야상점퍼 모두 의류수거함 제품. 가격 미정.

'신체발부 수지부모' 정신이 깃든 헤어 스타일링은 좀 더 수고스럽다. 수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머리카락이 서로 꼬인 자연산 레게 펌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 숙성 기간이 오래돼, 점성이 높을수록 스타일링이 수월하다. 멋스러운 브리지로 보이는 것은 새똥의 흔적.

하이라이트는 야상점퍼 안에 감춰진 조악한 꽃 장식이다.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의 가당찮은 OST 'Dear(디어)'에 맞춰 춤을 출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향기 대신 암내를 품고 있을 것만 같다.

 <개그콘서트> '거지의 품격'

<개그콘서트> '거지의 품격' ⓒ KBS


무엇보다 꽃거지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자존감이다. 비록 빌어먹더라도, 시럽을 타지 않은 아메리카노와 풍부하게 토핑을 얹은 요거트 등 까다로운 입맛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의자가 있는데도 굳이 찬 바닥에 널브러져 앉는 모습은 시크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개그계에 거지 캐릭터는 많았지만, 꽃거지처럼 당당한 걸인은 없었다.

꽃거지 패션의 완성은 얼굴. 처음 허경환의 잘생긴 외모와 근육질 몸매는 개그의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이번 콘셉트에서는 반전의 미학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김준현이나 유민상이었다면 돈을 지불할 만큼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꽃거지보다는 꽃돼지가 잘 어울릴 수도.

동전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액 '500원'에서는 품격이 느껴진다. 궁금하면 500원, 별로 안 궁금하면 200원으로 에누리도 된다. 카드 가능, 10원 짜리는 받지 않는다. 결제하지 않으면 당신 마음에 노숙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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