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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가 노출 논란과 더불어 말이 많다. 전국의 극장을 돌며 여주인공을 위시한 제작진이 무대 인사를 하고, 하루가 다르게 여주인공의 노출 관련 인터뷰도 이어지고 있다. 근 며칠간은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인터뷰를 구관조처럼 읊어대느라 여주인공이 얼마나 지쳐있을까 싶다만, 그저 방긋 웃는 사진들 일색이니 그저 다행이다 싶어진다.

간결하게 다시 태어난 영화 <은교>에서 여주인공 은교는 보다 비중이 강해졌다. 은교가 원작과 달리 보다 진지한 성찰로 문학을 이해하는 캐릭터로 탈바꿈 한 것도 차이점이다. 그 결과로 그녀를 차지하려는 스승과 제자 간의 대립구도가 보다 극명해졌다. 감독은 이를 함축하는 은유적 매개체로서 제자가 끓인 매생이국 그리고 은교가 끓인 미역국을 영화 안에 배치해 놓았다.

 영화 <은교>의 한 장면

영화 <은교>의 한 장면 ⓒ 정지우 필름


서지우의 매생이국에 담긴 것은 짠만 뿐이 아니었다

먼저, 초반에 등장한 매생이국. 원작에는 없는 이 음식은 지향점이 다른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스승이 대필해 준 대중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치자 제자에게로 세간의 관심이 이어져서, 때로 그는 전화 인터뷰에도 응하느라 음식 준비를 뒷전으로 하는 수가 생긴다. 이윽고 졸아서 짠맛뿐인 매생이국을 그대로 상에 올리는 것도 제자의 면면을 보여준다.

이에 자신의 감수성처럼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매생이국을 갈망했던 스승은 부아가 치민다. '너에게 이렇듯 아름다운 음식을 어찌 맡기겠냐' 싶게 수저를 딱 놓아버린다. 간단하긴 해도 단시간에 끓이되 불 조절을 잘해야 하는 이 섬세한 음식. 제자는 그것조차 못 만든다. 그처럼 간단한 글재주도 없다. 하나의 '별'이 가진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 까지 10년이나 걸렸다. 없는 재능에도 '포기'란 걸 모르면서 성실성조차도 없다.

이런 제자에게 스승이 할 수 있는 건 체념과 면박뿐이다. '데뷔도 못하고 머슴 노릇이나 하는 놈! 니놈 불쌍해서 세경 대신에 대필해줬다!' 이에 질세라 제자도 만만찮게 대든다. '고상한 영혼에 먹칠 할 까봐 자신 이름으론 못 내는 야설! 그걸 나한 테 써 줬잖소!'

 이적요는 은교를 사랑하게 되는데......

ⓒ 정지우 필름


은교의 미역국에 담긴 특별함, "어때요? 내 미역국은"

그런 냉랭함 속에 끼어든 은교는 그저 시인 할아버지가 그저 좋다. 엄마한테 따귀 맞고 찾아든 곳도 시인 할아버지 집이다. 그렇게 들들 볶아대는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안나수이 공주거울은 죽어라고 손에서 안 놓는다. 엄마와 은교 역시 대립과 애증의 관계다. 그러기에 은교는 서지우와 이적요의 관계를 잘 안다. 그래, 이것 드시고 화 풀어요 하듯이 미역국을 끓여 내놓기도 하면서.

원작과 영화 모두에서 은교가 만든 미역국은 소박하게 역량 껏 차려낸 음식이다. 마치 저작권을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은교가 '내 미역국, 내 사라다(샐러드)'라고 지칭하는 이 음식은 그녀의 자부심과 순수미를 보임과 동시에, 평생을 글 도적질로 채워온 제자를 역설적으로 비춰준다. 게다가 그 이전에도 은교는 냉장고에서 뒹굴던 재료로 근사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스승의 환심을 샀었다. 더 말해 무엇 하리. 노인은 기뻐서 입이 '허'하고 벌어질 판이지.

도둑질도 하다보면 는다고 했던가? 죄책감이 없어진 제자가 스승의 단편을 훔쳐서 상까지 타지만 늙은이는 수상식에도 참여해준다. 혹여나 제자의 글 도둑질이 드러날 까봐 자신의 초고도 불태워버린다. '어디 작품만 내 자식인가? 못난 제자도 내 자식인 것을. 결결이 곱고 아름다운 매생이국과는 거리가 먼 놈이건만 품어주어야 할 내 새끼지. 허나 순수한 미역국을 거짓으로 물들이는 너 같은 놈, 세상 평화를 위해서라도 나랑 같이 가야 것네.'

아비 마음 아는 자식 없다고, 자동차 고장에서 위험을 감지한 제자는 꾀를 부려 스승의 차로 바꿔 타고 나선다. 결국은 그 차조차도 황천길로 가는 줄은 몰랐던가. 스승과 제자 간의 애증 관계는 아비와 자식 간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졌다. 또한 아비에게 사랑받으려는 자식들 간의 쟁탈전이기도 했다. '너무 짜죠 매생이국', '어때요 내 미역국'하면서.

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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