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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관 개봉 영화. 그것도 하루 1회, 많으면 2회 상영한다. 하지만 어떻게 관객들은 알았는지 2주 동안 천 명이 넘는 관객이 서울의 유일한 상영관을 다녀갔다. 관객점유율도 제법 높다. 같이 개봉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 '가시, 은실이, 태어나서 미안해' 중 유일하게 연장 상영된 영화. <회오리 바람><파수꾼>과 마찬가지로 <밀월도 가는 길> 역시 곧 세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난 그것을 확신한다.

양정호의 데뷔작 <밀월도 가는 길>은 작품 자체가 매끈하다. 문득,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장편을 만든 경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해 의심할 정도로. 그것은 촬영이나, 연기, 편집의 힘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영화 속 이야기, 플래시 백을 통한 현재와 과거의 연결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 소설의 재현 등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 전개가 흠잡을 때 없는 데서 기인한다.

모두가 바라지는 않는 이상향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생산품을 매년 가져오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작품을 보며 그들의 장편영화제작 프로젝트가 독립영화 만들기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치열하게 경쟁해서 장편을 뚝딱 만들어내지만,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신념이 더욱 맘에 든다. <밀월도 가는 길>은 감독이 의도한 이야기를 결단력 있게 내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문제 장소는 '웜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정은 인천 로케이션 장소가 낯선 공간처럼 보인다. 그 공간에서 또 다른 낯선 공간인 섬에 '웜홀'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동조'뿐이다. 그것도 그가 기정과 나눈 대화와 사소했던 사건들 때문에 믿어 보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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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를 제외한 친구들은 기정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의 행동이나 말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도 기정의 말을 귀 기울여 본 적 없는 종혁 일행은 기정과 함께 다니는 동조마저 살벌하게 대한다. 그리고 곧 그들에게 가학적인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종혁 일행에게 동조가 생각하는 '웜홀'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믿는 행위와 다름없을 것이다.

누구든, 낯선 존재는 부정해 버린다. 마치 그것을 소설에서나 있을법한 일들로 치부해 버린다. 그것은 동조 역시 마찬가지다. 종혁 일행에게 폭력을 당하고 나서 동조는 기정과 멀어지려 한다. 여린 기정은 그 일로 인해 세상과 단절해 간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마치 출판사 대표처럼 그것이 소설이라면 흥미롭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단정을 짓는다. '웜홀'이라는 존재는 마치 '기정'처럼 실은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지만 보이지 않는 이상향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향이라는 것을 모두가 바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주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을 믿는 순간

영화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지는 독백은 의미심장하다. '우주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을 믿는 순간~' 어떻게 될까? 어린 동조가 이해하지 못한 이상한 일들을 어른이 된 동조는 이제 이해해 보려고 한다. 기정과의 추억들을 소설로 써서 상을 받게 된 동조가 어렸을 적 그들의 공간인 '인천'에서 겪게 되는 짧은 하루는 어른 동조가 기정을 이해하는 여정이다. 

동조 역시 기정의 이야기들을 그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 가둬두려고 했지만 무심코, 떠오르는 기정과의 일들은 그의 심장과 머리를 혼란스럽게 괴롭힌다. 그러므로 동조가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출판사 사장들을 만나야 하는)을 포기하고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을 믿어 보려는 '이상'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동조가 상금을 전부 기정의 집에 두는 것은 표면적인 '이해'의 한 부분이다. 기정의 집은 이미 비어 있지만, 동조는 기정이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정이 그렇게 애타게 가자고 했던 비밀의 문을 직접 열고, '웜홀'의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는 우물을 바라보는 행위는 이면적인 '이해'가 아닐까? 기정의 떨어뜨린 싸구려 선글라스를 써본 후 동조가 느꼈을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것. 동조는 아마 기정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믿지 않았을 뿐. 그것이 정말로 사실임이 드러나는 순간. (폐창고에서 종혁 일행이 동조에게 기정을 폭행하라고 부추기는 장면에서 기정은 동조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들인다.) 동조는 기정을 부정한다.

순간, 그가 좋아했던 여자친구 '유진'이라는 존재도 소멸한다. 동조 역시 기정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들은 동조를 어지럽게 만든다. 종혁 일행의 행동은 세상이 그들을 바라보는 '우주의 이상한 일들' 일 수밖에 없다. 창고에서 무수히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을 쌓고, 독특한 소설을 쓰고, 통기타 치며 노래를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부각했던 '천재'는 단지 그의 '정체성'으로 인해서 세상에 유린당하고 스스로 소멸해 버린다.

그러므로 기정은 어른이 되어도 동조의 앞에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린다. 그가 이야기했던 '웜홀'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매력적인 내러티브로 <밀월도 가는 길>은 2012년 상반기,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모든 배우가 뛰어나지만 어린 동조 역할의 김창환을 기억하고 싶다. 그는 <회오리바람>의 서준영이나, <파수꾼>의 이제훈처럼 훌륭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묘한 얼굴에서 확산하는 감정의 가짓수가 만만치 않다. 영화 처음 부분 '동조' 역할에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음성을 발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기류에 불과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즈음에서 왜 그가 '동조'가 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확실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진정 연기로서 승부를 거는 진짜 배우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난 이 영화가 딱 한 달 만이라도 더 상영되길 바란다. 말 그대로 연장 상영 촉구다. CGV 대학로에서 25일까지, CGV 인천에서 28일까지 상영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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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도 가는 길 김창환 신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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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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