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저녁 명동에서 열린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후원의 밤

11월 30일 저녁 명동에서 열린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후원의 밤 ⓒ 성하훈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의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동원 감독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의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동원 감독 ⓒ 성하훈


"독립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영화관이 20~25개 정도가 되는데 왜 또 만들려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공적인 문화정책이 흔들릴 때 느끼던 허망함을 생각하면 우리의 근거지는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월 30일 저녁 명동에서 열린 '민간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후원의 밤' 행사에서 <워낭소리> 제작자 고영재 프로듀서는 민간 독립영화관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독립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은 "영화관을 뺐긴 2010년에 영화는 못 찍어도 영화관은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며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전용관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간독립영화관 설립 추진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안정숙 전 영진위원장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극장이지 만들어 지는 것이다"며 민간 주도 독립영화관 건립의 의미를 강조했다.

영화계는 지금 '독립운동' 중

 2007년 개관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영진위의 부당한 공모 정책으로 2009년 12월 간판을 내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2007년 개관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영진위의 부당한 공모 정책으로 2009년 12월 간판을 내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 인디스페이스


요즘 영화계는 '독립운동'이 한창이다. 그 핵심은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설립이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간의 노력이 모아져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30일 행사는 영화계의 독립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이 모여 지금까지의 경과를 공유하며 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을 비롯,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씨네2000 이춘연 대표,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 임순례 감독, 김경형 감독, 배우 류현경 등 국내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독립영화 진영만이 아닌 영화계 인사들이 함께 뜻을 모아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을 직접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영화 정책 덕분이다. 씨네2000 이춘연 대표의 말대로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몇 억 주면서 해야 할 일"을 영화인들이 직접 나서 힘들게 모금까지 하면서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간의 비상식적으로 이뤄진 부당한 처사가 바탕이 됐다.

군사독재시절 혹독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발전해 왔던 독립영화는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기반이 확보됐고, 도약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숙원과도 같았던 독립영화전용관(인디스페이스)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여건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른바 '영화계 좌파 적출'에만 혈안이 된 영화관련 정책은 독립영화 진영에 대해 예전 군사독재시절에 버금가는 탄압을 전개했다. 영화인들의 노력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마련됐던 소중한 공간들은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이후 사실상 강탈당했다.

분노한 영화인들은 거세게 저항했고 결국 영화정책기구의 수장이 2번이나 교체됐다. 논란이 됐던 전용관 정책도 개선됐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됐다. 더 이상 정부지원에 의존하면 안 되겠다는 것이고, 독립적인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부 비판적인 작품의 상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면서, 표현의 자유 위축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다. 이런 인식이 민간독립영화관 설립 추진으로 모아진 것이다.  독립영화 초창기 독재정권의 검열과 표현 자유 제약에 맞서 신변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독립운동의 형태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상영 공간을 직접 마련하겠다는 제2 의 '독립운동'을 선언한 셈이다.

"영화 수익 거두고 있는 CJ나 롯데의 무관심은 불편한 진실"

 지난 6월 열린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

지난 6월 열린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 ⓒ 인디스페이스


지난 6월 발기인 모임을 갖고 추진되기 시작한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설립추진모임(이하 추진모임)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김동원 감독, 안정숙 전 영진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아 올해 안 개관을 목표로 모금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처음 계획은 12월 1일 신촌 쪽의 극장을 임대해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진행과정에서 난관이 생겨 다소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금이 모아지고 있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개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추진모임 측은 밝혔다.

추진위원인 고영재 인디플러스 대표는 이날 경과보고를 통해 "예술영화전용관을 추진 중인 다른 문화 단체들과 함께 2개관을 임대해 전용관으로 활용하고 독립영화 홍보와 관객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확보할 예정이었으나, 예술영화전용관을 추진하고 있는 쪽이 우리만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부득이 12월 1일 개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극장 1개관을 임대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지만 긴 안목으로 만들어가야 해서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는 개관하기 위해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으며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추진모임 측은 임대 보증금을 포함해 연간 운영비를 4억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현재 1억이 넘는 금액이 모금됐다고 밝혔다. 임권택 박광수 감독을 비롯해 배우 안성기 강수연 송강호 장동건 등과 제작자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부산 전주 등 국내 영화제들이 후원회원으로 참여해 민간독립영화관 설립에 힘을 보태고 있다.

영화인들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트위터 등을 통해 십시일반 동참하고 하지만 아직 목표 모금액에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춘연 씨네2000 대표는 "사실 독립영화인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거대 투자배급사로 영화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나 롯데엔터테인먼트 등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인데, 이들이 공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주위에 좋은 일에 동참하라는 식의 권유보다는 좀 더 당당하게 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배우 류현경 "좋은 영화들이 상영관 없어 관객 못 만나는 일 없어야"

 1만 관객을 돌파한 <돼지의 왕>은 관객들의 호평 속에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늘지않고 있다

1만 관객을 돌파한 <돼지의 왕>은 관객들의 호평 속에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늘지않고 있다 ⓒ KT&G 상상마당


영화인들이 민간독립영화전용관 개관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최근 우수 독립영화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음에도 마땅한 개봉관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도 작용하고 있다.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인기 있는 작품들조차 20여개 안팎 상영관에 머물며 선택의 폭을 제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중 최단 기간 독립영화 흥행 기준인 1만 명을 돌파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의 경우 관객들이 늘고 호평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관이 늘기는커녕 간신히 20개관을 유지하며 이어가고 있다. 독립영화 흥행기록을 쓰고 있지만 손익분기점인 5만 관객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거대 자본의 투자배급사가 상영관을 독점한 상태에서 영화산업발전의 기초인 독립영화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늘리지 않으면 고사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설립으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한미FTA가 통과되면서 국내 제작 환경이 먹구름이 낀 상황도 영화인들의 위기감을 고취시키고 있다.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공세에 한국 영화에 대한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가뜩이나 열악한 독립영화의 설 땅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인데,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독립영화전용관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더욱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독립영화전용관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는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와 배우 류현경

민간독립영화전용관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는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와 배우 류현경 ⓒ 성하훈


민간독립영화관의 홍보대사 역할을 자임한 배우 류현경 씨는 "관객의 입장에서 좋은 영화를 계속 볼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며 "상영관이 부족해 일찍 내려지는 영화들이 있다는 것은 영화를 보기 원하는 관객들에게도 서운한 일이기에 민간독립영화관 설립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초기 독립영화전용관의 토대를 닦았던 원승환 전 인디스페이스 소장은 영진위의 전용관 정책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진위가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를 직영하면서 6억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예산을 영진위가 쓰는 게 나은지 아니면 독립영화관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게 나은지 효율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원 전 소장은 민간독립영화관의 입지와 관련해 "서울에 위치해야 하기에 임대료 부담이 크지만 최대한 싼 곳을 찾고 있다"면서 "임대료 부담이 적어야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적합한 장소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들이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독립영화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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