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자존심 K-리그. 그 실력을 유감없이 떨쳤던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도 그랬고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FIFA(국제축구연맹) 남자월드컵,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을 거쳐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르기까지 2010년 축구장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지나고 돌아보면 아쉬웠던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축구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열정과 환희의 순간들은 우리들을 미소 짓게 한다. 2010 축구장에서 느낀 최고의 순간들을 돌아본다.

중국, 정신 차리게 해줘서 고마워!

2010년 한국 축구는 허정무 현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의 평가전(1월 9일, 요하네스버그)부터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박지성, 이청용, 박주영 등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실력 출중한 선수들이 빠진 대표팀이었지만 그렇게 강하게 보이지 않았던 잠비아에게 2-4로 덜미를 잡히고 불안하게 월드컵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이 흐른 뒤 우리 대표팀은 도쿄에서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통해 중국 사람들에게 '공한증'을 더이상 떠벌릴 수 없게 된 것. 2월 10일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맞대결에서 나온 0-3이라는 참담한 결과는 우리 축구팬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이 대회 역시 유럽파를 빼고 치른 이유도 있겠지만 '오장은, 구자철, 김정우, 김두현'이라는 중앙 미드필더 성향의 선수들을 네 명의 미드필더로 내세우는 특이한 전술로 많은 축구팬들의 입방아를 들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중국 대표팀을 이끌고 나온 가오 홍보 감독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월드컵 본선을 120일 정도 남겨놓고 따끔한 예방 주사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흘 뒤 설날 저녁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한일전에서 3-1의 멋진 승리를 거두며 한숨을 돌렸다. 비록 우승 트로피는 중국에게 내주고 2위에 그친 대회였지만 김보경, 구자철 등 어린 미드필더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경기를 펼쳤다는 것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뜻밖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장면도 있었다. 도쿄 국립경기장 관중석에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던 일본 관중들은 1-3의 완패가 결정되는 순간 '오카다 감독, 불합격'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그 길로 오카다 감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면 6월의 남아공에서 그 환희를 느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를 상대로 그렇게 허술함을 드러냈던 일본 대표팀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맞춰 매우 탄탄한 팀으로 거듭난 바 있다. 파라과이와의 16강 토너먼트까지 모두 네 경기를 치르는 동안 일본 대표팀은 필드골을 단 두 개(네덜란드 1골, 덴마크 1골)만 내줬을 뿐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수비벽이 얇게 느껴졌던 한국 월드컵대표팀(4경기 8실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득점 뒤풀이 보다가 '소름' 돋다!

역시 축구장의 한일전은 좀처럼 잊지 못할 기억들을 쏟아내게 한다. 지난 5월 24일 저녁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는 또 한 번의 한일전이 열렸고 2-0의 완승 결과가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우리 축구팬들에게 기쁨으로 다가왔다.

특히, 경기 시작 6분만에 터뜨린 박지성의 선취골 순간은 아마도 오래오래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드필더 하세베부터 간판 수비수 나카자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명이 차례로 달라붙는 것을 뿌리치며 터뜨린 박지성의 오른발 골 순간도 짜릿했지만 관중석을 또렷하게 응시하며 달려가는 박지성의 표정 속에서는 다시 보기 어려운 자신감이 느껴졌다. 축구장 득점 뒤풀이를 보다가 소름 돋기는 처음이었다.

 2010. 6. 12 그리스와의 월드컵 첫 경기 승리 소식을 알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 누리집(FIFA.com) 화면

2010. 6. 12 그리스와의 월드컵 첫 경기 승리 소식을 알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 누리집(FIFA.com) 화면 ⓒ 국제축구연맹


그 덕분에 이어진 6월의 남아공은 더욱 짙은 인상으로 기억된다. 지난 6월 12일 밤 포트 엘리자베스에 있는 넬슨 만델라 베이에서 벌어진 그리스와의 2010 남아공월드컵 첫 경기는 우리 팬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1-0으로 앞서고 있던 52분에 상대의 패스 줄기를 가로채서 공을 몰고 들어간 박지성의 추가골 순간은 그가 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인지를 말해주기에 충분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드리블과 침착한 마무리 동작은 그를 바라보며 축구를 배우고 있는 수많은 꿈나무들에게 여러가지 가르침을 남긴 것이었다.

더구나 이 골은 2002년(vs 포르투갈, 1-0 결승골)과 2006년(vs 프랑스, 1-1 동점골)에 이어 월드컵에서만 세 대회 연속으로 터뜨린 것이어서 그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에 대표팀 은퇴 여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들리고 있지만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의 큰 활약까지 포함하면 박지성의 축구 인생에서 2010년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게 하는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다시 대표팀을 이끌고 2011년 새해 벽두의 기쁜 소식(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지소연과 여민지라는 아름다운 이름들

6월의 남아공이 진정한 월드컵이라지만 축구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 월드컵 말고도 또 다른 월드컵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아름다운 이름들이 있다. 아마도 박지성 이상으로 2010년 한국 축구를 빛낸 이름들을 꼽으라면 당연히 지소연과 여민지를 내세워야 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공으로 그 이후 한국 축구의 마당은 몰라볼 정도로 넓어졌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남자 축구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여자축구는 상대적으로 쓸쓸한 그라운드로 남아 있었다. 그런 면에서 2010년은 여자축구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린 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축구 소녀들 덕분에 올 여름은 더운 줄도 몰랐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지도 몰랐다.

지난 7월 14일 밤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D그룹 첫 경기(한국 4-0 스위스)는 그저 시작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지소연이라는 이름을 세계 축구계에 제대로 알리기 시작한 바로 그 경기였다.

경기 시작 후 63분이 흐르고 있었다. 3-0으로 느긋하게 앞서가고 있었지만 지소연은 여전히 배고픈 표정이었다. 단짝 골잡이 정혜인이 만들어준 벌칙구역 밖 직접 프리킥 기회가 마침 찾아왔고 지소연의 오른발 감아차기가 빛났다. 그 이전까지 여자축구를 그저 무시하기만 했던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발목의 힘과 유연함이 얼마나 필요한 킥 기술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불붙은 여자축구의 불꽃은 8월의 첫 날 빌레펠트에서 벌어진 콜롬비아와의 3, 4위전에서 제대로 타올랐다. 49분에 권은솜의 기막힌 찔러주기를 받은 지소연의 침착한 마무리 동작은 '지메시'라는 별명을 더욱 어울리게 만든 것이었다.

한국 축구 역사상 FIFA 주관의 각급 국가대표 대항전에서 처음으로 3위에 오른 일도 실로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녀들보다 세 살 아래의 더 어린 소녀들이 이룬 위업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도 국제축구연맹 누리집(FIFA.com) 17세이하 여자월드컵 페이지에는 자랑스러운 우리 소녀들의 사진이 내걸려 있다.

아직도 국제축구연맹 누리집(FIFA.com) 17세이하 여자월드컵 페이지에는 자랑스러운 우리 소녀들의 사진이 내걸려 있다. ⓒ 국제축구연맹


어떤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축구 변방국들이 결승전에서 맞붙었기 때문에 이 대회의 가치를 깎아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본선 대회가 분명했다.

비록 이 대회가 2008년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점점 어려지고 있는 여자축구 선수들의 적령기를 생각한다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세 이하 남자월드컵이 세계 축구계의 유망주를 탄생시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들이 이룬 영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세 살 위 언니들에 이어 최덕주 감독이 이끌었던 17세 이하 우리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4강에 올랐다. 거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결과라 여겼지만 9월 22일 새벽에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유럽의 강팀 에스파냐를 상대로 2-1 역전 드라마를 만든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한 간판 골잡이 여민지는 결승전에 골이 터지지 않았으면서도 당당히 득점왕(8득점 3도움)에 오르는 황금빛 활약을 펼쳤다. 일본과의 결승전 승부차기 드라마도 잊을 수 없지만 17일 새벽에 벌어진 나이지리아와의 8강 맞대결에서 보기 드문 명승부 끝에 6-5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경기는 두고두고 축구팬들의 추억을 자극할 것이다.

'전반전 2-3 / 후반전 2-1 / 연장전 2-1'이라는 결과만 놓고 봐도 다시 만들어내기 어려운 드라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혼자 네 골을 몰아넣은 여민지는 사실상 득점왕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여민지는 이 대회를 통해 세 개의 트로피(우승, 득점왕, 최우수선수)를 혼자서 들어올리는 전무후무한 주인공이 되었다.

5월 12일을 K-리그 기념일로!

남자 국가대표팀이 뛴 월드컵, 여자 축구의 아름다운 향기를 느끼게 했던 두 번의 월드컵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K-리그에 대한 관심이 덜했던 것 같았지만 그 속은 어느 때보다 알차게 영글기 시작한 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1부리그↔2부리그 승강제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는 등 한국 프로축구의 미래가 본격적으로 설계되기 시작했고 지난 5일 제주 유나이티드를 물리치고 챔피언에 오른 FC 서울의 경우 연간 50만명 이상의 관중들(54만6397명)이 경기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10 시즌의 K-리그 구단들 중 모두 여섯 구단(FC 서울 2만8758명/ 수원 블루윙즈 2만5052명/ 전북 모터스 1만3053명/ 전남 드래곤즈 1만1643명/ 경남 FC 1만1403명/ 포항 스틸러스 1만575명)이  한 경기 평균 관중 1만 명 이상을 기록하는 흥행 우수 구단의 영광을 누렸다.

이렇게 많은 팬들의 꾸준한 관심은 K-리그의 경기력으로 입증되고 있다. 2009년 포항 스틸러스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9 FIFA 클럽 월드컵 3위의 위업에 이어 2010년에도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성남 천마 FC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0 FIFA 클럽 월드컵 4위의 영광을 이어나갔다.

사실 K-리그 클럽의 아시아 2연패 결과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 믿음은 이미 지난 5월 12일부터 확인될 수밖에 없었다. 동쪽과 서쪽으로 폭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 대륙의 특성상 AFC 챔피언스리그는 8강 토너먼트가 벌어지기 전까지 동아시아 클럽과 서아시아 클럽 사이의 맞대결을 피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16강 토너먼트가 모두 끝나는 5월 12일의 결과가 나왔을 때 동아시아에 배정된 네 장의 8강 티켓은 모두 K-리그(성남 천마, 포항 스틸러스, 전북 모터스, 수원 블루윙즈)의 것이었다. 오죽하면 아시아축구연맹 누리집 첫 화면에 'K-리그 天下'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 '라돈치치, 몰리나, 사사 오그네노브스키'라는 걸출한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 성남의 기세는 유럽의 빅 클럽 못지 않았다. 왼발과 이마로 골을 터뜨리는 능력이 탁월한 라돈치치와 노련한 미드필더 전광진이 경고 누적 징계로 빠진 상태에서도 11월 13일 밤에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또 하나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는 사실은 이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단짝 골잡이의 전성 시대가 올 것인가?

이처럼 나라 안팎으로 K-리그에 대한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2010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두 명의 새로운 골잡이가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유병수와 전남 드래곤즈의 지동원이 그 주인공. 마침 두 선수는 51년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국가대표팀에 들어가 12월 30일 저녁에 열린 시리아와의 평가전 후반전에 나란히 들어가 귀중한 결승골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 기대감이 더욱 크다.

 2010. 4. 18 K-리그 득점왕 유병수가 포항과의 안방 경기에서 이마로 자신의 네번째 골을 터뜨리는 순간.

2010. 4. 18 K-리그 득점왕 유병수가 포항과의 안방 경기에서 이마로 자신의 네번째 골을 터뜨리는 순간. ⓒ 심재철


두 선수의 인연도 보통이 아닌 듯하다. 나란히 신인왕 경쟁에서 아쉽게 쓴 잔을 들며 동료를 축하해줬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에 유병수가 김영후(강원 FC)와의 신인왕 경쟁을 벌인 바 있고 2010년에는 지동원이 윤빛가람(경남 FC)에게 밀려났다.

2010년 K-리그 그라운드에서 먼저 이름을 떨친 것은 단연 유병수다. 시즌 초반 2년차 불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했지만 4월 18일 낮 안방에서 벌어진 정규리그 8라운드(인천 4-0 포항)에서 무려 네 골을 몰아넣는 무서운 결정력을 자랑하며 득정왕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었다.

유병수는 10월 9일 대전 시티즌과의 안방 경기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다른 골잡이들이 자신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시즌 내내 한 번의 영광을 누리기도 힘든 일을 두 차례나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두 발과 이마는 빛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빼어난 실력의 가운데 미드필더가 눈에 띄지 않는 소속팀의 특성을 감안하면 28경기 22골(경기당 0.79골, K-리그 역대 최고 기록)이라는 결과는 더욱 놀라운 일이다.

유병수에 비할 것은 못 되지만 그래도 정규리그에서 7골 3도움의 준수한 기록을 남긴 지동원은 늦가을에 많은 축구팬들을 감동시킨 주인공이었다. 그 그라운드는 11월에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개최국 중국을 3-0으로 가볍게 따돌리며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가면서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팀이 아쉽게도 아랍에미리트와의 준결승전에서 미끄러졌을 때 적잖은 축구팬들은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랬지만 이란과 맞붙은 동메달 결정전의 자존심 대결은 2010년 우리가 본 축구 경기 중에서 손으로 꼽을 만한 명승부의 하나였다. 딱 하루밖에 쉬지 못하고 이틀만에 다시 경기장에서 나서야 하는 우리 선수들의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더구나 이란 선수들의 힘 있는 경기 운영에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는 말려들어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1-3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4-3으로 뒤집는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 중심에 박주영과 지동원이라는 비교적 잘 어울리는 단짝 골잡이가 있었다. 박주영의 실력이야 축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이제 19살밖에 안 된 지동원의 탁월한 공격 감각은 보는 이들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달아나는 이란에게 펠레 스코어까지 따라붙은 우리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격을 시도했고 결국 지동원이 이마로 두 골을 터뜨리는 활약 끝에 믿기 어려운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서정진의 오른쪽 띄워주기에 맞추어 상대 수비수들이 파 놓은 오프사이드 함정을 무너뜨리며 솟구친 동점골(87분)과 소속팀 동료 윤석영이 왼쪽에서 감아 올린 띄워주기를 향해 뛰어오른 대역전 결승골(89분) 순간은 지난 5월 사이타마에서 박지성이 보여주었던 득점 뒤풀이에 못지 않게 전율을 느끼게 해 준 것이었다.

 2010. 2. 27 K-리그 1라운드에서 인천 수비수들(오른쪽부터 임중용, 장원석, 전재호)을 앞에 두고 공을 몰고 있는 전남 FW 지동원.

2010. 2. 27 K-리그 1라운드에서 인천 수비수들(오른쪽부터 임중용, 장원석, 전재호)을 앞에 두고 공을 몰고 있는 전남 FW 지동원. ⓒ 심재철


사실 지동원의 가능성은 이미 고등학교(광양제철고) 시절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다. 축구장을 폭넓게 바라볼 줄 아는 그의 놀라운 눈이 많은 축구팬들에게 각인된 경기는 2009년 11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생고와 맞붙은 2009 전국 고등 축구리그 왕중왕전 마지막 결승전에서 그는 혼자서 2골 1도움의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낸 것. 연장전 11분만에 아우 이종호에게 찔러준 역전 결승골의 수준 높은 도움 장면은 먼저 자신이 넣은 두 골 이상의 가치를 자랑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TV 중계 화면으로만 보던 그를 2010 K-리그 첫 경기(2월 27일)가 열린 인천월드컵경기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비록 전남이 인천에게 0-1로 패한 경기였지만 위 사진처럼 상대 수비수들을 몰고 다니는 그의 공격적 수준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주영이라는 걸출한 골잡이가 부상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이번 아시안컵(2011. 1. 7~  카타르)에서 한국 대표팀의 공격력을 걱정하고 있지만 K-리그에서 착실하게 그 실력을 검증받은 두 골잡이가 있기에 또 다른 희망을 내비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유병수와 지동원에게는 이번 기회가 하늘이 내린 것일 수도 있다. 손흥민이라는 또 다른 새내기도 있지 않은가? '이동국-김은중'에 이어 단짝 골잡이의 계보를 다시 한 번 이어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겨냥하여 박주영을 사이에 두고 지동원과 유병수, 손흥민의 줄다리기가 아름답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감독들의 행복한 고민이 눈에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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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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