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의 눈물

'인민 루니' 정대세의 눈물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16일 새벽, 44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의 선수 정대세가 세계최강 브라질의 대결에 앞서서 북한의 국가를 듣다가 굵은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란 단어가 부담스럽기는 오랜만이다. 감독의 말처럼 '북한'이란 호칭 대신 '북조선'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것도 아님 'North Korea'를 써야 하는 건 아닌지. 어쨌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길어서 읽기도 힘드니, '우리'의 관점에서 북한이라고 하기로 하자. 저들도 우리를 '남조선'이라 부를 테니까)

정대세는 인터뷰에서 새벽에 흘린 눈물에 대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 드디어 나오게 됐고 세계 최강 팀과 맞붙게 됐기 때문에 좋아서 그랬다."

맞다. 그것이 가감 없는 정대세의 생각이고 감정일 것이다. 그는 인터뷰 때마다 북한의 월드컵 진출에 대해 감격해 했고, 만약에 가능하다면 세계 최강과 맞붙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다.

월드컵 조 편성이 끝나고 브라질, 포르투갈과 같은 조가 되었음을 확인한 뒤 세계적인 선수와 대화하기 위해 포르투갈어를 중점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는 정대세. 어느새 유창해진 그의 포르투갈어 실력은 그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울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20대 젊은이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 무대.

그러나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검색어 '정대세 국적'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정대세

▲ 검색어 '정대세 국적'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정대세 ⓒ 이희동


자이니치(在日)의 눈물

많은 이들이 정대세의 눈물에 관심을 보인 건 결코 정대세의 개인적인 꿈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바로 북한 선수, 그것도 자이니치(在日) 출신의 북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지니고 있었지만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면서 가지게 된 정체성으로 인해 조국으로서 '조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조선'의 대표로서 월드컵에 서게 된 열혈 청년 정대세.

16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자이니치(在日) 2세 이국수 축구 해설위원은 칼럼 "이국수의 눈"을 통해 정대세의 눈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정대세가 북한 국가 제창 때 감회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은 재일(자이니치)인들의 생각을 대변한 것... 나도 재일인의 한 명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렇다. 정대세의 눈물은 그만의 눈물이 아니다. 혹여 정대세 자신은 스스로의 꿈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하더라도, 그 꿈은 결코 그 혼자 꾸었던 꿈이 아니며, 자이니치(在日)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일본사회의 핍박을 받아오며 그려왔던 꿈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사라진 자이니치의 조국 조선.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그 땅에 들어선 두 개의 정부. 냉전의 극단에서 자신들을 유일하게 지원했던 북한을 조국으로서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무국적의 이방인으로서 온갖 홀대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이니치. 그들에게 조국 '북조선'의 이름으로 당당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정대세가 어찌 꿈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많은 네티즌들이 정대세의 국적을 운운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비록 사회주의의 몰락, 북한 경제의 붕괴와 함께 일본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많은 자이니치들이 남한의 국적을 취득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단지 필요에 의한 것일 뿐, 그들의 정체성이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정대세의 말마따나 자이니치는 남한사람도, 북조선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그들 자신일 뿐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이 모든 정치적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이 마의 계절. 새벽녘 브라운관에 비친 어느 열혈청년의 눈물이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를 상기시켰다는 사실 하나를 위로삼아 본다.

참고로 자이니치(在日)의 현실을 쉽고 빨리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영화 <GO>, <우리학교>, <박치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정대세 자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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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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