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의 입단을 발표하는 포항 스틸러스 구단 공식 홈페이지

설기현의 입단을 발표하는 포항 스틸러스 구단 공식 홈페이지 ⓒ 포항 스틸러스

설기현이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2000년 유럽 무대로 떠난 뒤 10년 만이다.

 

잉글랜드 풀럼의 자리 경쟁에서 밀려나 경기에 출전하는 일이 드물었던 설기현은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실전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결국 K리그 진출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날카로운 측면 돌파와 왼발 크로스, 멋진 골 등 그동안 유럽에서 갈고 닦아온 설기현의 축구를 처음으로 K리그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벨기에, 영국, 사우디, 그리고 한국

 

대학 시절부터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설기현은 지난 2000년 K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벨기에 프로축구 주필러리그의 중위권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하며 유럽 축구에 첫발을 내딛었다.

 

데뷔 첫해부터 앤트워프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설기현은 25경기 동안 12골을 터뜨리는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이듬해 곧바로 벨기에 최고의 명문구단 안더레흐트로 옮겼고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꿈의 무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하며 실력을 키웠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설기현의 활약은 어느새 잉글랜드의 눈길을 끌었고 2부 리그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옮겼다.

 

비록 울버햄튼은 2부 리그에 머물렀지만 2006년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간 레딩이 설기현을 데려갔다. 벨기에와 잉글랜드 2부 리그를 거쳐 마침내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성공한 설기현의 유럽 축구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 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딩과 설기현은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비록 첫해 4골을 터뜨리며 프리미어리그에 연착륙하는 듯했지만 부상과 슬럼프가 겹치면서 갈수록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국 2년 만에 레딩을 떠나 풀럼으로 옮겨갔지만 또 다른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설기현을 풀럼으로 데려온 로리 산체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새롭게 부임한 로이 호지슨 감독의 전술에는 설기현의 역할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로 6개월간 임대되는 우여곡절 끝에 올 시즌 다시 풀럼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설기현은 후보 선수였고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온 남아공월드컵 본선은 설기현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설기현과 포항, 둘 다 '윈-윈' 할까?

 

국가대표팀에서도 박주영, 이근호, 이동국 등 동료 공격수들과 치열한 자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설기현의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다. 월드컵 본선이라는 큰 무대에서 설기현처럼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전 감각이 떨어지면 남아공월드컵 출전도 없다는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의 충고를 전해들은 설기현은 결국 풀럼과 계약을 중도 해지하기에 이르렀고 포항과 손을 잡으며 K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같은 충고를 들은 조원희 역시 최근 프리미어리그 위건 애슬레틱을 떠나 수원 삼성으로 돌아왔다.

 

포항 역시 설기현을 반기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클럽 월드컵에서도 3위에 올랐던 포항은 데닐손, 스테보 등이 연달아 떠났지만 최근 브라질 출신의 모따에 이어 설기현까지 영입하면서 공격력을 강화했다.

 

올해도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길 원하는 포항은 물론이고 관중몰이를 위해 스타 선수가 절실한 K리그로서도 오랫동안 해외 무대에서 활약해온 설기현의 복귀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중동이나 일본으로 진출한 가능성도 있었지만 K리그에서 활약하며 허정무 감독 앞에서 직접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졌다.

 

설기현은 포항과 1년 계약을 맺음으로써 다시 유럽 진출을 노려보겠다는 뜻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면 설기현의 경력으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설기현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홀로 이겨내 왔다. 어린 나이에 벨기에로 떠났고, 한국 선수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진출한 것도 설기현이 처음이다. 이번에도 10년간 누려온 해외파라는 화려한 옷을 벗고 K리그 복귀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서른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 설기현이 과연 남아공월드컵 출전과 포항의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0.01.18 11:39 ⓒ 2010 OhmyNews
설기현 포항 스틸러스 남아공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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