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들어있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사형집행으로 숨진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국제엠네스티 발표에 따르면 52국에서 8864건의 사형선고로 최소한 2390명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가별로는 중국(1718명)이 가장 많았고, 이란(346명), 사우디아라비아(102명), 미국(37) 순이었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59개국이며, 이중 실제로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25개국입니다.

우리나라 사형수는 현재 58명입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 을 집행한 것을 마지막으로 12년 동안 사형집행은 없었습니다. 사형수 출신 대통령에 이어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형 집행을 하지 않음으로써 2007년 12월 30일부터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사실상의 '사형 폐지 국가'가 됐습니다. 반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사형 제도. 한쪽에서는 사법살인 또는 국가적 살인으로 규정하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범죄예방 효과와 사회방어 차원에서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 사건 같이 극단의 악행에 극단의 형벌로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극악한 살인범도 지켜야 할 생명인가라는 두 가치관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사형제 존폐 문제는 사실 어려운 질문임이 분명합니다. 

물 수(水)자에 갈 거(去)자를 조합한 문자 '법(法)'은 물 흐르듯이 순리와 상식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달리말해 법의 잣대도 시대에 따라, 사회적 성숙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터. 프랑스대혁명 당시 민권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되짚으며 영화 <집행자>를 들춰 봅니다.

<집행자>는 사형제를 다룬 대표적 영화들인 <데드맨 워킹>이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과는 달리 직접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시선에서 사형제를 다룹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사형제를 둘러싼 두 입장, 즉 폐지냐 존속이냐에 법의 이름으로 '허가받은 살인자'인 교도관들의 고뇌와 갈등을 통해 사형제 존폐를 되묻는 이중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집니다.

사형집행으로 황폐화되어가는 교도관들의 이야기 <집행자>

 사형집행인의 고통과 인권을 교도관의 시선으로 그리며 우리 사회에 사형제 존폐 문제를 제기하는  <집행자>의 포스터 장면

사형집행인의 고통과 인권을 교도관의 시선으로 그리며 우리 사회에 사형제 존폐 문제를 제기하는 <집행자>의 포스터 장면 ⓒ 영화사활동사진

국내 영화로는 처음으로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한 <집행자>는 세 명의 교도관이 축을 이루며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초짜 교도관 재경(윤계상)이 교도소에 첫 출근한 날 재소자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릅니다. 그런 그를 구해주는 이는 "짐승은 강한 놈에게 덤비지 않는 법"이라며 야수처럼 재소자를 다루는 선임 교도관 종호(조재현)입니다.

법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종호의 건너편에 고참 교도관 김교위(박인환)가 있습니다. 사형수 성환(김재건)과 정겹게 장기를 두며 마치 오랜 친구처럼 우정을 나누는 김교위는 종호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재경의 눈에 비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쇄살인범 장용두(조성하)가 교도소로 이감되면서 12년 동안 전무했던 사형집행이 시시각각 이들 세 사람에게 각기 다른 색깔로 다가서기 시작합니다.

교도소 안에서의 사형집행과 달리 밖에서도 심상치 않은 '살인'이 예고됩니다. 재경의 여자 친구 은주(차수연)가 임신을 하고, 은주는 재경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 달라고 채근합니다. 사형집행인으로 뽑힌 재경이 갈팡질팡하며 고민하는 동안 은주는 혼자서 낙태를 하고 둘은 헤어집니다.

이렇게 <집행자>는 연쇄살인범의 사형집행에 맞닥뜨린 교도관들의 고통과 함께 재경과 은주를 통해 '낙태'라는 사회 문제도 동시에 제기합니다. 물론 영화 전체의 흐름이 사형제와 집행인의 고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교도관 중 유일하게 장용두의 형 집행을 자원한 종호조차 "낙태도 살인 아니냐"고 말함으로써 살인의 또 다른 무늬를 들춰냅니다.

그렇다고 <집행자>가 <데드맨 워킹>처럼 사형제를 정면으로 다루느냐면 그렇진 않습니다.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던 세 사람이 사형제도를 통해 어떻게 황폐화되어 가는지를 감성적으로 접근합니다. 은주의 낙태로 인해 중복된 살인의 충격으로 허덕이는 재경과 정글의 법칙으로 재소자를 다루던 종호가 끝내 미쳐 병원으로 실려 가고 사형수 성환을 자신의 손으로 집행한 뒤 교도소를 떠나는 김교위를 통해 사형제도의 후폭풍과 함께 집행인들의 '방치된 인권'을 간접적으로 고발합니다.

'유전무살 무전유살'...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다

 사형집행인으로 낙점되고, 자원하고, 차출된 세 교도관은 형 집행 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너지며 집행자의 방치된 인권을 고발한다.

사형집행인으로 낙점되고, 자원하고, 차출된 세 교도관은 형 집행 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너지며 집행자의 방치된 인권을 고발한다. ⓒ 영화사활동사진


반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데드맨 워킹>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형문제를 보게 합니다. 사형을 통해서라도 죽은 자식들의 한을 풀려는 가족들의 절망과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과연 올바른지를 대등하게 배치하고 관객들에게 그 판단을 맡깁니다.
  
아울러 <데드맨 워킹>에서는 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사형제가 법의 가장 큰 승리인 '속죄'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사형집행 직전에 사형수 매튜 폰슬럿(숀 펜)이 참회를 하나 "이 세상에 살인은 다 나쁘다. 내가 한 살인이나, 이렇게 사형하는 것 모두 다 나쁘다"라는 그의 단발마에서처럼, 사형제도는 사형수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그 순간에 죽인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형제도에도 예외 없이 '유전무살 무전유살'이 적용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주범은 변호사를 고용해 사형을 면하는 반면 가난한 폰슬럿은 종범임에도 돈이 없어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해 사형 당합니다. 실제로 부유층 가운데 사형을 당한 판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반면 <집행자>에서 사형수 장용두는 사형집행 직전 마지막 유언에서도 세상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광기어린 독설로 퍼부어댑니다. 심지어 자신을 면회 온 희생자 가족에게까지 저주를 쏟아냅니다. 죽어 마땅한 인물로 그려지나 그 이면에는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속전속결로 치러진 사형집행이 장용두가 속죄할 기회와 여지를 빼앗아 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집행자>에서 장용두나 성환이 변호사를 고용했는지 여부는 보이지 않습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국선변호사의 의례적인 변론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대신 어수선한 정국을 무마시키기 위한 여론반전용으로 사형제를 12년 만에 부활하고, 그 희생타로 장용두가 낙점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진정한 법의 정신은 화해와 관용의 씨앗 위에서 꽃 피운다

 사형수 성환은 모범수로 교도관 김교위와 우정을 쌓아가지만 사형집행일을 맞아 김교위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명을 거둬줄 것을 부탁한다.

사형수 성환은 모범수로 교도관 김교위와 우정을 쌓아가지만 사형집행일을 맞아 김교위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명을 거둬줄 것을 부탁한다. ⓒ 영화사활동사진


한국 사회에서 사형제 폐지 운동은 정치범과 양심수 같이 '정적'들에게 가해지는 무고한 살인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1975년 4월8일 소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선고된 지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수병 등 8명에 대한 소명운동이 벌어지면서 사형제 폐지운동은 점화됐습니다. 그에 앞서 1959년 7월 31일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재심청구를 했으나 하루 만에 기각당하고 그 다음날 사형당한 죽산 조봉암 역시 대표적인 사법살인으로 꼽힙니다.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사법부가 자초한 '암흑의 날'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사형제 폐지운동은 1989년 국제엠네스티를 중심으로 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결성되어 천주교 등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2007년 10월10일 '사형수'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가 되었음을 국제사회에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사형제 폐지운동은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실제 모델인 조성애 수녀 등 천주교를 중심으로 일반 사형수에게 눈길을 돌립니다. '사형수들의 대모'로 불리는 조성애 수녀는 지난 2007년 <데드맨 워킹>의 실제 모델인 헬렌 프리진 수녀가 방한했을 때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사형제를 대신할 수 있다"며 "다음 정권이 걱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형제 폐지 반대론자인 이명박 대통령 정부에서 사회여론 무마용으로 사형제가 언제든지 부활할 가능성이 있음을 조심스레 언급한 셈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언제 고개를 치켜들지 모를 공안정국에 편승해 다시금 불붙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형제 부활과 관련해 <집행자>는 두 가지 함축된 장면으로 응답합니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옛 동료를 찾은 김교위에게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어. 다시는 자네를 보고 싶지 않네"라는 전직 집행자의 일그러진 모습과 밧줄에 매달린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장용두의 몸뚱이를 끌어당기며 '확인 집행'을 하다 피칠갑이 된 종호가 그날 밤 전신에 베인 '살인의 냄새'를 때수건으로 지우고 또 지우다 피멍이 드는 섬뜩한 장면은 사형제 폐지의 당위성을 가늠케 해주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는 살인 피해자 가족 모임을 꾸려 오고 있습니다. 팔순 노모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 아들 등 세 명의 가족을 유영철에게 잃은 고정원씨는 이 모임에서 "아직도 아비규환 같은 그때가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유영철을 죽인다고 내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죽음이 하나 늘어나는 것일 뿐"이라며, 정부에 사형제 폐지 탄원서를 올리고 유영철을 양자로 거둬들였습니다.

사형수 유영철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고정원씨의 이 말은 사형제를 포함한 어떠한 법도 혼자 걷지 못한다는 것을 웅변해 줍니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정의를 위해 개개인들이 얼마나 '관용의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진정한 법의 정신은 꽃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풀려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므이시낀 공작의 입을 빌려 형장에 끌려가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생상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머리를 도마 위에 얹고서, 그 다음에 올 것을 분명히 의식하며,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최후의 사분의 일초까지도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런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지금도 세상에서 가끔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목이 잘린 다음에도 약 일 초 동안은 자기 목이 떨어져나간 것을 의식하고 있을는지 모른다고 말이지요. 얼마나 해괴한 생각입니까. 만일 그것이 오 초 동안이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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