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다 보내고 월요일 아내랑 영화 한 편을 봤다. 그 동안 애지중지했던 휴대폰이 말썽을 일으켜 장기고객 보상판매를 한다기에 갔던 참이다. 동행한 아내가 불쑥 영화 한 편을 보자고 부추겼다. 그렇잖아도 팍팍하게 산 탓에 그 좋아하던 영화감상 자체를 잊은 지 오래였다. 점심도 굶은 채 상영관에 가서 볼 만한 영화를 골라봤다. 추석 대목을 노린 수작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내는 그 많은 상영작 중에서 한참이나 철 지난 영화 '국가대표'를 보기로 원했다. 그러나 상영과 종영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엔 '내 사랑 내 곁에'를 보기로 했다(필자는 마산 시내에서 한참을 벗어난 시골에 살고 있다).

영화는 사법고시 준비하고 있는 종우(김명민 분)가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데,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던 날로부터 시작된다. 장례식장에서 종우는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란 장례지도자 지수(하지원 분)와 운명처럼 재회한다. 자신의 병을 남 이야기 하듯 얘기하는 종우에게 지수는 "사람은 누구나 죽어, 순서가 따로 없어서 그렇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곧장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 종우와 지수가 만나 사랑하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글쎄(?)하는 의구심으로 요즘 사랑이 공감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상처가 오히려 둘을 가깝게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오히려 사랑의 감도는 짠했다.

종우는 날이 갈수록 숟가락 하나 손에 쥐는 것도 힘겨운 처지가 된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변하게 한다. 늘 곁을 지켜주는 지수가 있어 루게릭병과 싸우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정우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투병 의지가 눈물겹다. 그 동안 데면데면하게 알고 지냈던 '루게릭병'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로 와 닿았다. 일단 발병하면 근본적인 치유는 불가능하고 단지 그 진행 속도를 늦출 뿐이라는 의사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은연중에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이라는 게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지지가 않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환자의 가족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었다. 환자 본인의 고통은 더 말할 수가 없겠지만 옆에 지켜보는 가족들 또한 얼마나 힘든 나날일까?

죽음을 앞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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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의 헌신적인 보살핌-그녀도 종우 못지않게 불행하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강신일 분)는 다리 한쪽이 없다. 자기 자신은 이혼을 당했다. 다만 지수의 직업이 문제였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갖고 시신을 다루는 일을 하니까. 속에서 지수가 시체를 만진다고 전남편이 싫어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에도 종우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가고, 병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투병의지를 불태우던 종우도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지켜보는 게 점점 더 두려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언어장애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이별을 예정하고 만난 사람들이다. 종우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는데도 지수는 큰맘 먹고 죽을 때까지 오빠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루게릭병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지자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나 짧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1년 뒤 결혼식을 올린다. 신혼 보금자리는 바로 병원이다. 이즈음에서 관객들은 두 사람의 의지 굳은 사랑에 동감하게 된다. 그저 그런 순애보가 아니라 순정한 사랑으로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종우와 지수의 사랑, 아픔, 상처, 미안함 등은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을 조용히 잘 표현한 영화 같다.

"나 몸이 굳어가다 결국은 꼼작 없이 죽는 병이래, 그래도 내 곁에 있어줄래?"
  "지수야, 나한테도 정말 기적이 일어날까?"

이제는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정우가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그밖에도 이들의 사랑을 더한 파스텔조로 그려주는 바탕이 전신마비나 식물인간 상태의 중환자들이 모인 6인실 병동이다. 비슷한 아픔을 지닌 병동 식구들과 서로 격려하고 위로 받으며 지내는 사이 회복세를 보이는 환자도, 수술의 희망을 찾게 된 환자도 하나 둘 생겨난다. 병실에는 종우와 지수 외에도 교통사고로, 빙상사고로, 또 식물인간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같은 병실에 있다. 병실 안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고통, 기대감 등이 주인공들의 표정에서 베어 나온다. 옥연할머니의 절망으로 인해 무너지는 가족들의 실망감, 또 다시 기다림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가족들, 이들의 사연을 보면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된다. 더불어 환자들의 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게도 된다. 

서로 다른 사연 가지고 있는 집중치료실 환자 6명과 가족들

그렇지만 종우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고 뇌기능도 저하된다. 종국에 이르러 종우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 떼어놓기 위한 말버릇이다. 이는 2007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서도 극적으로 병이 완쾌된 영수(황정민)가 은희(임수정)를 떼어버리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수는 무척 번민하고 갈등하게 한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 지수의 눈물이 관객으로 하여금 애달게 한다.

모든 사랑에는 이유가 있다. 부모의 내리사랑도, 이성간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상대방의 어떤 부분이 자신의 어떤 부분을 채워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원하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안타깝게도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들게 된 종우를 붙잡고, 지수가 제발 조금이라도 더 있어달라고 눈물로 애원하며 흔들어대는 지수의 처절한 흐느낌이었다.

결국 지수의 사랑은 그녀의 예전 사랑들은 그녀를 버렸지만, 종우는 그녀를 버리기는커녕 그녀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었고, 그녀는 종우를 버릴 수 있으면 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지수는 처음 그들이 운명처럼 장례식장에서 만났을 때 종우에게 "내가 있고 싶을 때까지 있을 것"이고, 종우의 악다구니를 다 듣고 나서는 "이제 내가 떠나고 싶어 떠나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 안에서 살아나는 것. 종우를 버리고 떠나는 것은 자기의 예전 남자들이 자기를 버린 그 상처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 남편이 찾아왔을 때에도 지수는 종우를 생각하게 된다. 그녀의 밝은 미소 뒤에 꽁꽁 들어찬 상실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풀이되는 '보내는 여자'의 운명을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마지막 엔딩까지 담담하고 잔잔하게 풀어나간 깔끔한 영화

그래서 영화 말미에 "내 사랑 내 곁에, 힘겨운 날에 너마저 없다면 비틀대는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라는 노랫말은 마치 지수가 노래하는 것 같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는 지난한 우리네 인생이 담긴 영화이다. 특히 배우 김명민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의 표정연기와 눈빛들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고, 하지원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영화인지 다큐인지 분간이 안될 만큼 철저히 루게릭 환자의 모습으로 '종우'가 있었다. 이 영화 속에는 아픈 '종우'의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여인 '지수'를 참 군더더기 없이 예쁘게 그리고 있다.

더구나 6인실 병동의 환자와 보호자의 연기도 너무 좋았다. 누구나 죽음을 직면하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도 처절한 삶 앞에 진지해지는 자신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때문에 연인이나 부부들 한 번쯤 꼭 이 영화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서로 사랑 하는 법을 알게 하는 영화인 것 같다. 다시 보아도 '종우'와 '지수'의 이야기를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한동안 일어나 나올 수 없을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장애인정보지 <한빛소리> 10월호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 내 곁에 김명민 하지원 루게릭병 박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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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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