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빨개지는 얼굴. 옷은 전부 다 우중충하고 낡았다. 집 장만 자금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집 없이 학교 교무실에서 살고 있다. 러시아어를 가르치다 영어 선생이 된 이후 매일 새벽마다 학원에서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 사이에서 무시당하는 것을 넘어 아예 존재감조차 없다.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만, 하필 그 사람은 결혼했고 중학생 딸이 있다. 그 사람이 마음이 두는 사람은 있지만, 상대는 자신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러시아어 선생님. 그것도 외모가 뛰어나 모든 남자선생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사람.

아무리 봐도 뭔가 미숙해 보이는 그녀, '양미숙(공효진 분)'. <미쓰 홍당무>는 바로 그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면 볼수록 그녀의 이야기가 내 얘기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뭔가 미숙해 보이는 그녀, 양미숙!

아무리 봐도 뭔가 미숙해 보이는 그녀, 양미숙! ⓒ 모호필름

내가 사는 지역에는 유독 병원이 많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나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병원 건물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분야도 다양하다. 피부과·산부인과·치과·위 전문내과·이비인후과 등등. 그 중에 가장 자주 보이는 분야는 성형외과다. 내가 본 간판만 해도 네 군데.

나도 성형 열풍이 무섭도록 활개를 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여성이기에, 그 간판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특히 1년 넘게 백조 생활을 하면서 취업성형과 관련된 메일을 받을 때면 마음이 복잡하다.

취업에 외모는 큰 상관이 없다고 믿었지만, 토익점수도 그럭저럭 올리고, 취업에 필요하다 싶은 자격증도 따고, 자기소개서도 열심히 쓰는데 서류심사에서 나뭇잎 떨어지듯 계속 떨어지는 나를 보며 '정말 얼굴을 뜯어고쳐야 하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이쁜 것들을 묻어버리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홍승우의 <비빔툰>에 보면 이런 내용의 만화가 있다. 정보통이 '이런 쓸데없는 능력은 필요 없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가슴에서 돌덩이처럼 보이는 능력을 꺼내어 던져버린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그 돌이 깨지면서 안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온다.

"세상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아.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

영화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동료 선생의 딸 '서종희(서우 분)'에게 잊지 말라는 듯 이야기하는 양미숙의 대사. 이 대사를 보며 가슴이 무거워진 것은 나뿐일까. 교과서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배워 왔지만, 실제 맞닥뜨리는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살면서 깨달아가고 있는 나만 이 대사를 들으며 멍한 느낌을 받았을까.

"왜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못하죠?"

얼굴이 예뻐야 한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 어느새 1등의 가치만을 강조하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지지 않은 채 묻혀 버린다. 단지 그 외형이 돌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듬어지지 않고, 필요없다는 사회의 통념 때문에.

양미숙의 외침처럼 2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 그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며 스스로가 가진 장점을 생각하기보다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마치 내가 내 외모를 보며 부족함을 느꼈던 것처럼.

아름다운 희망 고문, 그녀는 아름답다

 양미숙(공효진 분)과 그녀가 좋아하는 동료 선생의 딸 서종희(서우 분).

양미숙(공효진 분)과 그녀가 좋아하는 동료 선생의 딸 서종희(서우 분). ⓒ 모호필름


그나마 이 영화를 보면서 위안이 되었던 것은, 둘 다 왕따의 위치였던 양미숙과 서종희가 서로가 가진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것,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무시되는 교사와 전교 왕따라는 겉껍질 속에 가려진 내면을 서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사회에서는 이들을 2등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 사이에서는 2등이 아니었다.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는데 휴지가 날아오고 신문지가 내팽겨쳐진다. 밀가루도 어딘가에서 날아온다. 팀 이름처럼 '찐따와 찐따 애인'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그들 스스로는 만족한다. 자신들에게 날아온 쓰레기들도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 내 속에 있는 작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수많은 입사지원서 속에서, 도서관에서, 집에서,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날 좀 알아달라고 외치고 있는 다이아몬드의 가치 말이다. 물론 그 가치가 언제 어디서 빛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의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런 일말의 희망이라도 내게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

2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2등의 길을 걷는 양미숙. 그녀는 아름답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던,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낸 그녀는 정말 아름답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과거와 상관없이, 지금의 그녀는 정말 아름답다. 이런 그녀에게 한없는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YES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쓰 홍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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