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수기 광고카피를 보면, “단 10초만 생각해 보라!”는 멘트와 함께 ‘물만 나오는 정수기’와 ‘얼음까지 나오는 정수기’ 중 과연 같은 값이라면 어떤 정수기를 선택하겠느냐고 팬들에게 되묻는 광고가 있다.

 

여러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기왕에 같은 값이라면, 으레 기능이 다양한 것을 사는 게 경제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최상의 선택이 항상 답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스포츠 특히, 기록이 중시되는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적용해보자. 득점왕에 오른 선수를 보유한 팀 입장에서는 ‘기록상’만으로라도 믿고 맡길 든든한 선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탬이 된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100%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팀 동료 파스코와 이야기를 나누는 민렌드(좌)

팀 동료 파스코와 이야기를 나누는 민렌드(좌) ⓒ 서민석

 

행복했던 찰스 민렌드&불운했던 에릭 이버츠

 

당장에 득점왕이라는 개인적은 영광은 물론이고, 팀의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

은 득점왕은 딱 한 명이다. 바로 2003~2004시즌 전주 KCC 소속으로 팀을 정규리그 2위(39승15패)에 올려놓고, 챔프전에서 TG를 4승3패로 따돌리며 챔피언 트로피까지 맛본 민렌드다.

 

특히나 민렌드는 득점왕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2004~2005시즌 KCC를 준우승,  2006~2007 시즌에는 LG를 정규리그 2위로 이끌기도 했다. 물론, 그 와중에 네 시즌 동안 민렌드는 한국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군림했지만 말이다.

 

민렌드가 나름대로 한국에서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나 행복한 시즌을 보냈다면, 불운의 득점왕으로 불릴 선수는 1999~2000시즌과 2001~2002시즌 두 번에 걸쳐 득점왕에 오른 에릭 이버츠가 그 주인공이다. 1999~2000시즌 45경기에서 평균 27.67점-2001~200시즌 54경기에서 28.3점을 기록했고, 묘하게도 두 시즌 모두 부산 KTF의 전신인 광주 골드뱅크와 여수 코리아텐더에서 득점왕에 올랐었다.

 

하지만, 정작 팀 성적은 좋지 못했다. 1999~2000시즌에는 팀이 고작 9위(18승27패)에 그쳤고, 2001~2002시즌 역시 자신은 득점왕에 오른 데 반해 팀은 고작 7위(26승28패)에 그쳤다. 게다가 이버츠는 프로 원년이었던 1997시즌 광주 나산에서 뛴 이후 계속해서 한국 무대에 도전했으나 감독들의 담합으로 지명을 받지 못하는 불운까지 당했다.

 

이후 1999~2000시즌 전체 1순위로 골드뱅크에 지명, 한국 무대에 컴백해 LG와 코리아텐더 등을 거치면서 말끔한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실력 못지않게 코트 밖에서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묘한 것은 외국인 선수들이 득점왕에 오르지 못했던 시즌에 팀은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당장 1997~1998시즌 창단 원년 팀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던 블런트가 1998~1999시즌 득점왕에 오르자 팀은 5위로 떨어졌다.

 

또한, 네이트 존슨 역시 2004~2005시즌 득점왕에 오른 다음 시즌 서울 삼성으로 이적, 팀의 통합 우승을 맛봤다. 단테 존스 역시 KT&G의 전신인 SBS 시절이었던 2004~2005시즌 도중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한국 무대를 밟아 팀을 4강까지 올려놨지만, 정작 자신이 득점왕에 오른 2005~2006시즌 팀은 7위로 6강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과거 SBS와 KT&G에서 뛰었던 단테 존스

과거 SBS와 KT&G에서 뛰었던 단테 존스 ⓒ 서민석

 

득점왕이 PO 진출을 보장하지는 않아

 

프로 원년이었던 1997시즌 득점왕에 오른 칼레이 해리스(21경기 평균 32.39점)를 시작으로 지난 시즌 득점왕에 오른 피트 마이클(52경기 35.12점)까지 올 시즌을 제외한 11시즌 동안 득점왕이 소속한 팀이 6강 PO에 진출한 경우는 총 6번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54.5% 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나 2002~2003시즌 득점왕에 오른 리온 트리밍햄의 경우는 팀이 꼴지(16승38패)라는 오명을 맛보기도 했었다. 물론, 시즌을 앞두고 서장훈이 FA를 선언, 삼성으로 이적한 것이 전력 누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그러나 직전 시즌이었던 2001~2002시즌 정규리그 3위에도 불구하고, 챔프전에서 대구 오리온스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3승4패로 준우승)을 따낸 것을 감안하면, 득점왕이었던 트리밍햄의 존재감만으로 팀을 재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농구는 다른 어느 스포츠보다 개인 능력 못지않게 팀 플레이와 전술이 중시되는 스포츠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득점왕=PO 진출’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도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스포츠의 섭리. 즉, 개개인으로 놓고 보면, 최강자를 모아놨다고 해도 정작 이들이 함께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셈이다.

 

결국, 득점왕이든 제 아무리 걸출한 외국인 선수든 똘똘한 포인트가드와 슈터 그리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식스맨들과 한 팀을 이루지 못하면 그 능력 역시 빛을 발하기 힘들다. 이는 역대 시즌 득점왕들을 보유한 팀의 성적만 놓고봐도 훤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오리온스에서 삼성 이적후 우승을 맛본 네이트 존슨

오리온스에서 삼성 이적후 우승을 맛본 네이트 존슨 ⓒ 서민석

 

‘신-구 득점왕’이 합류한 전자랜드의 운명은?

 

이렇듯 득점왕을 배출한 팀이 팀 성적에 있어서는 별다른 재미를 못 봤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자연스레 올 시즌 전자랜드의 성적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우선 올 시즌 독보적인 득점 능력(평균 26.7득점)을 앞세워 2위 오다티 블랭슨(평균 24.4득점)을 제치고 득점왕 등극이 유력한 테런스 섀넌의 경우, 역대 득점왕들에 비해 외곽포가 다소 약하고 골밑 득점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지만, 골밑에서의 기술이나 득점 해결능력이 워낙 탁월한 터라 뛰어난 포인트가드와 해결사 부재에 시달리는 전자랜드에 딱 알맞은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묘하게도 시즌 도중 카멜로 리와 유니폼을 바꿔입은 리온 트리밍햄 역시 38세(1971년생)의 고령이지만, 지난 2002~2003시즌 득점왕에 오른 경험이 있다. 물론, 팀이 꼴찌로 내려 앉으면서 그 가치는 상대적으로 빛을 발했지만, 그래도 나이를 무색케하는 득점 본능은 섀넌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득점 루트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신-구 득점왕’을 모두 보유한 전자랜드에게 이제 남은 하나의 과제는 역시 세 시즌만의 6강 PO 등극. 8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만약 두 외국인 선수가 지금과 같은 활약만 계속해주고, SK의 거센 추격만 뿌리친다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꿈이 될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자신의 능력만 과시하고, 팀 플레이에는 소흘하다면, 다른 득점왕들이 그랬듯 다시 한 번 팀의 아픔을 지켜봐야 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역대 KBL 득점왕>
1997시즌)칼레이 해리스(원주 나래,21경기 평균 32.39점)
1997~1998시즌)래리 데이비스(안양 SBS,37경기 평균 30.65점)
1998~1999시즌)버나드 블런트(창원 LG,45경기 평균 29.93점)
1999~2000시즌)에릭 이버츠(광주 골드뱅크,45경기 평균 27.67점)
2000~2001시즌)데니스 에드워즈(안양 SBS,45경기 평균33.42점)
2001~2002시즌)에릭 이버츠(여수 코리아텐더,54경기 평균 28.3점)
2002~2003시즌)리온 트리밍햄(서울 SK,50경기 평균 27.36점
2003~2004시즌)찰스 민렌드(전주 KCC,54경기 평균 27.15점)
2004~2005시즌)네이트 존슨(대구 오리온스,44경기 평균 28.68점)
2005~2006시즌)단테 존스(안양 KT&G,54경기 평균 29.2점)
2006~2007시즌)피트 마이클(대구 오리온스,52경기 평균 35.12점)

2008.03.04 13:3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역대 KBL 득점왕>
1997시즌)칼레이 해리스(원주 나래,21경기 평균 32.39점)
1997~1998시즌)래리 데이비스(안양 SBS,37경기 평균 30.65점)
1998~1999시즌)버나드 블런트(창원 LG,45경기 평균 29.93점)
1999~2000시즌)에릭 이버츠(광주 골드뱅크,45경기 평균 27.67점)
2000~2001시즌)데니스 에드워즈(안양 SBS,45경기 평균33.42점)
2001~2002시즌)에릭 이버츠(여수 코리아텐더,54경기 평균 28.3점)
2002~2003시즌)리온 트리밍햄(서울 SK,50경기 평균 27.36점
2003~2004시즌)찰스 민렌드(전주 KCC,54경기 평균 27.15점)
2004~2005시즌)네이트 존슨(대구 오리온스,44경기 평균 28.68점)
2005~2006시즌)단테 존스(안양 KT&G,54경기 평균 29.2점)
2006~2007시즌)피트 마이클(대구 오리온스,52경기 평균 35.12점)
득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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