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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 광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든 무등산 꼭대기가 보였다. 여름엔 구름을 잔뜩 머금은 채로, 겨울엔 만년설처럼 두툼한 흰 모자를 쓴 채 우람한 자태를 뽐냈다. 광주에서 무등산은 바다의 등대, 하늘의 북극성 같은 나침반이자 상징적 존재였다.  

그런데, 광주시민의 기상이 발원된 곳, 무등산 보기가 최근 들어 쉽지 않다. 우후죽순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는 육중한 콘크리트 바벨탑에 가려져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의 스카이라인은 무등산을 제치고 하늘과 바로 맞닿아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인구가 시나브로 줄고 있다는 데도 대단지 아파트가 도시 곳곳에서 새로 지어지고 있다. 낡은 아파트가 고층의 새 아파트로 탈바꿈하고, 비탈진 달동네 등 오래된 주택가 역시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된다. 이러다 도시 전체가 죄다 콘크리트로 덮이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광주 역사 오롯이 품고 있는 곳에... 쌩뚱 맞은 '청춘 호명'

지난 주말 광주시가 '핫플'로 홍보하고 있는 양동 발산마을을 찾았다. 영산강의 지류인 광주천을 따라 형성된 도심 한복판 마을이다. 낮은 언덕에 기대어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집들 사이로 거미줄처럼 좁은 골목이 얽혀있어 수십 년 전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공용 주차장도 마련해두었고, 번듯한 관광 안내소도 갖추어놓았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데다 고샅길 어귀마다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길 잃고 헤맬 일은 없다. 바쁠 것 없이 얕은 담벼락 너머 남의 집 기웃거리듯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을 입구로 되돌아오게 된다.

아직 제대로 정비돼있지 않은 탓인지, 주말인데도 인적이 뜸했다. 그곳에 머문 두 시간 남짓 동안 만난 관광객이라곤 두 가족이 전부였다. 토박이로 보이는 어르신 몇몇 분들이 잠옷 차림으로 집 밖에 나와 눈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컹컹거리는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을은 새것과 낡은 것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새로 지은 공원 뒤로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낡은 건물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족히 수십 년은 된 듯한 계단에 두껍게 입힌 울긋불긋한 페인트는 어색했다. 살림집 벽을 가득 채워놓은 유명인의 벽화도 어째 좀 뜬금없다.   

지금 이곳의 공식 명칭은 '청춘 발산' 마을이다. 원래 이름인 발산마을 앞에 '청춘'을 수식어처럼 이어붙인 것이다. 마을 이름으로 쓰인 '고유명사'가 청춘과 어울리는 '동사'로 쓰이게 됐다. 일종의 언어유희인 셈인데, 이는 마을의 역사를 통째로 지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곳은 해방 후 귀국한 동포들과 6.25 전쟁 중 피난민들이 모여 살며 형성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이후 섬유산업이 호황을 맞게 되면서, 인접한 전남방직 여공들의 거주지로서 번성하게 된다. 이후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마을도 동시에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발산마을은 성쇠의 광주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그런 그곳에 애꿎은 '청춘'을 호명하는 건 생뚱맞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마을에 그곳의 역사를 알 길 없는 청년들을 끌어다 '재개발'의 주체로 삼으려는 건, 그들을 위한 어쭙잖은 '취업 대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청춘발산마을의 랜드마크인 108계단.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글귀가 계단마다 적혀 있다.
▲ 서부원 청춘발산마을의 랜드마크인 108계단.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글귀가 계단마다 적혀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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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당혹스러운 글귀가 난무한다. 발산마을의 역사나 주민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러티브가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한다. 주말 이곳을 거닐며 만난 청년이라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아르바이트생이 전부였다. 그들에게 발산마을은 어떤 곳일까.

압권은 '양학선 기념관'이다. 알다시피,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체조 종목 금메달리스트다. 도마 부문에서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여, 당시 그의 이름이 도마 기술의 등급 기준처럼 불렸다. 그의 생가터에 조그만 건물을 새로 지어 메달과 상장 등 소장품을 전시해놓았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한 평 남짓한 그의 방 입구에 걸린 글귀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하면 된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곳을 찾은 청년들이 읽게 된다면, '실패는 도전을 두려워하고 노력하지 않은 네 탓'이라는 말로 여겨질 듯하다.
 
양학선 선수의 생가터에 조성한 기념관 입구. 뒤로 그가 어린 시절 지내던 방이 복원되어 있다.
 양학선 선수의 생가터에 조성한 기념관 입구. 뒤로 그가 어린 시절 지내던 방이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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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말해서, 주민들의 삶에 기반한 마을의 역사를 콘텐츠 삼기는커녕 애꿎은 청년들에게 삶터를 저렴하게 내줄 테니 힘껏 마을을 재생시켜보라고 등 떠미는 모양새다. 원주민들은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빈집들이 청춘들의 차지는 아니다. 투기 자본이 '먹잇감'을 그냥 놔둘 리 없다.

결국 발산마을은 여느 지역 도심 재개발 과정과 유사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낡은 건물은 십중팔구 카페로 리모델링 될 테고, '사진 잘 나오는 곳'으로 꾸며질 것이다. 인근 관광지와 연계된 '스탬프 투어' 방식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이른바 '인스타 성지'를 목표로 삼은 셈이다.
 
별마루 전망대에서 본 풍경. 발 아래로는 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로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별마루 전망대에서 본 풍경. 발 아래로는 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로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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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맨 꼭대기 '별마루 전망대'에 서면,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말이 전망대지, 새 둥지 모양의 설치 작품을 덩그러니 세워놓았을 뿐이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차라리 '분지'다. 주위가 온통 아파트로 둘러싸여 마을이 땅이 꺼진 듯 움푹 파여있는 느낌이다.

유일하게 트인 곳이 잿빛 콘크리트 건물이 성냥갑처럼 늘어선 전남방직 공장 터다. 발산마을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공동운명체'로서, 일제강점기부터 십수 년 전까지 가동됐던 굴지의 대기업이었다. 최근 터를 매입한 건설사가 내년 초 복합 쇼핑몰 공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청춘발산마을의 고샅길에서 내려다본 전남방직 공장 터 전경. 2028년까지 이곳에 대형 복합 쇼핑몰이 세워진다고 한다.
 청춘발산마을의 고샅길에서 내려다본 전남방직 공장 터 전경. 2028년까지 이곳에 대형 복합 쇼핑몰이 세워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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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방직 공장 터 정문. 십수년 동안 인적이 끊겨 웃자란 숲으로 무성한 모습이다. 도심 속 공원으로 개발하면 제격일 성싶지만, 조만간 이곳에 대형 복합쇼핑몰이 세워질 예정이다.
 전남방직 공장 터 정문. 십수년 동안 인적이 끊겨 웃자란 숲으로 무성한 모습이다. 도심 속 공원으로 개발하면 제격일 성싶지만, 조만간 이곳에 대형 복합쇼핑몰이 세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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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쇼핑몰이 완공되면, 이곳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말 그대로 밤하늘 별빛뿐이다. 그마저 쇼핑몰과 아파트가 늦은 밤까지 쏟아내는 휘황한 불빛으로 인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망대보다 더 높은 고층아파트 스카이라인의 위세는 밤하늘 별빛마저 무릎 꿇릴 태세다.

광주천을 경계로 마을과 전남방직 공장 터 사이에 '뽕뽕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과거 여공들이 출퇴근하던 길목으로, 지금은 관광객들이 이따금 오갈 뿐 다리를 이용하는 주민은 거의 없다. 머지않아 발산마을과 전남방직의 사라질 역사와 함께 박제화할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미 발산마을과 전남방직의 '인연'은 완전히 끊겼다. 다리를 건너도 왕복 6차선의 대로가 막아선다. 부러 찾아간 전남방직 공장 터에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다. 개발을 앞둔 사유지여서인지 입구가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다. 오랫동안 인적이 끊긴 터에는 웃자란 숲만 무성하다.

전남방직의 역사가 지워지면, 발산마을도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유행처럼 '반짝 관광지'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삶의 터전으로서 지속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자면 여느 곳과는 차별화한 발산마을만의 '고유한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
 
"복합 쇼핑몰이 생기면, 덩달아 여기도 집값이 뛰겠네요?"
"오르면 뭐해? 이미 외지인들 차지가 됐는데."


토박이 원주민도,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주요 관심사는 '돈'인듯 했다. 쇼핑몰이 들어설 줄 알았다면 팔지 않았을 거라는 하소연부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허름한 집이라도 사둬야 한다는 조언이 오갔다. '청춘 발산'이라는 이름이 낯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도 무등산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맑은 날 동남쪽 무등산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디든 아파트 뒤에서 해가 떠오르고 아파트 뒤로 해가 지지만, '분지'가 된 발산마을에선 그마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고층아파트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마을을 나오며 '경기장의 딜레마'를 떠올렸다. 경기를 보려고 한 사람이 일어서면, 나머지 관중도 모두 일어서게 된다는 비유 말이다. 주변이 온통 고층아파트로 뒤덮이고 있는데, 이곳만 옛 모습 그대로 남게 할 순 없을 것이다.

백 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전남방직 공장 터도 과감히 허물어 복합 쇼핑몰을 짓는 마당이다. '청춘 발산'이라는 마을 이름이 청년의 기백으로 투기 자본과 맞서 싸우라는 기성세대의 채근처럼 느껴지는 건 내 삐딱한 심성 탓일까. 여하튼 전남방직도 사라지고, 무등산도 보이지 않는 발산마을에 청춘이 깃들기는 어려울 성싶다.

태그:#청춘발산마을, #광주복합쇼핑몰, #전남방직, #무등산, #양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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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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