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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향할까? 종교론자에게는 정해진 답이 있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까? 호사유피 인사유명,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고상히 이름을 남기기 전에, 물리적으로 남기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장판에 눌어붙은 피와 조직, 숨쉬기조차 힘든 악취, 어쩌면 구더기의 새 보금자리가 되어줄 살점까지도.

특수청소업체 하드웍스 대표인 김완(51)씨는 2012년부터 11년째 특수청소업에 종사하고 있다. 사람이 사망했거나 폐기물이 가득 남은 현장 등 일반적이지 않은 공간을 청소하는 일이다. 인간이 물리적으로 남긴 것들을 치우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의뢰 현장에 나갈 채비를 마친 모습
▲ 특수청소부 김완 의뢰 현장에 나갈 채비를 마친 모습
ⓒ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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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20년 책 <죽은 자의 집 청소>를 발간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담은 이야기는 10만 부가 넘게 판매되면서 '특수청소'라는 생소한 업을 널리 알렸다. 책이 출간되고 숱한 인터뷰를 하며 업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조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에는 생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책방을 열기도 했고, 오는 6월 24일에는 죽음과 음악을 엮어 대화하는 소모임을 열 예정이다. 그의 SNS에도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죽은 사람을 다독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고독'을 막아서려는 그만의 외부 활동이다. 특수청소를 하면서도 끝없는 외부 활동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김완씨와 지난 5월 23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독사'가 아니라 '고독'이 문제

김완씨는 특수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활발히 해왔다. 그가 설정한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onefoot.in.the.grave였다.

"two foot이 아니라 one foot이잖아요. 한 발은 무덤에 담그고, 다른 한 발은 무덤 밖에 두고 있죠. 제가 분명히 살아는 있지만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고, 제가 하는 일이 죽음과도 관련이 있잖아요. 저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도 죽은 사람들이고요. 그런 아이러니를 담고 싶었어요."

그의 SNS에는 삶과 죽음에 관해 직접 적은 시, 인상 깊게 읽은 도서 추천, 역사적인 기념일 추모글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시를 전공한 그는 어릴 적부터 글과 늘 함께였다고 말한다.
 
쏟아지는 뭇별 아래 서럽고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서로 벗 삼아 계속 걸어야겠지요.
매일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도 별빛 아스라한 밤하늘의 길이 열리길 기도합니다.
괴로움 속에서 언제나 다시 떠오르는 저 빛,
어진 영혼들의 눈빛.

당신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그 길 말고는 여기 모든 죽어가는 것 중에 누구도 저 혼자서 평안에 이를 수 없습니다. 
- <김완  인스타그램 게시물 일부 발췌>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결국 죽음은 산 사람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산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죠. 사람이 죽고 사는 건 허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이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이잖아요. 그런 감정을 초월해 더 영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고독사'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는 고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야생 동물 역시 고독사하고 있는데 인간의 고독사만 특별하게 가치 판단을 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서울시 고독사 대책 외부 위원으로 몇 년 동안 일을 했었는데요. 그런 모임에 갈 때면 우스갯소리로 '제 직업의 종말을 위해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고 하곤 했죠. 저는 '고독사'가 문제가 아니라 '고독'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서울시에서 규정한 고독사는 '죽고 나서 48시간 동안 발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해요. 다시 말해 48시간이 안 된 24시간 만에 발견되면 고독사가 아닌 거로 처리되는 거죠."

사망 직전까지 아무리 고독의 고통을 겪고 있었더라도, 48시간 이내로 발견되었다면 고인은 고독사에 해당되지 않게 된다는다는 것이다. 김완씨는 행정적인 정의는 필요하겠다만, 심리학자가 말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인간의 감정인 '고독'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시에서는 고독사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센서가 달린 등을 설치해, 사람의 움직임이 없으면 보고하는 시스템 등을 마련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게 굉장히 결과 중심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해요. 통계적으로 숫자는 줄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사람이 혼자 계속 남아 있었던 시기인 거죠."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공간들

김완씨의 책에는 '누군가 혼자 계속 남아 있었던 시기'에 대한 다독임이 가득하다.
 
텐트 뒤에서 책 몇 권을 발견했다. 이 세상에 캠핑을 온 것처럼 실로 간단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그녀의 곁을 지켜준 책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참 소중한 너라서>,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 <아주, 조금 울었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모두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책이다. 서점에서 이 책들을 발견하고 집 혹은 집이라 불리는 캠핑장에서 읽기 위해 값을 치르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했다면 스스로 삶을 저버리겠단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어느덧 서른을 맞이하고, 소중한 '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끔은 울기도 하겠지만 행복한 시간 속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 <죽은 자의 집 청소, p.19>

<죽은 자의 집 청소>에는 개개인이 남긴 유흔이 모두 어제 발견한 장면처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삶의 마지막을 남긴 여성, 자살 후 자신을 청소하기 위해 드는 가격을 직접 의뢰한 남성,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녹아 버린 고양이... 김완씨는 남다른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공간들이 마음에 남아있다고 전했다. 

"수많은 현장을 가면서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곳들이 있어요.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있어요. 가령 제가 좋아하는 책이 꽂혀 있거나, 제가 좋아하는 음악의 CD가 보일 때? 그럴 때면 기시감이 들면서, 도저히 남 일처럼 보이지 않는 순간이 와요. 그런 순간이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고, 그렇게 남은 기록이 책에 담겼죠."
 
어떤 날은 이 세상의 온갖 알 수 없는 사연이 바람에 실려와 잎이라곤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든다. 그런 날은 작은 봉투 하나 버리는 일조차 버겁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p.28>
 
"작은 봉투 하나 버리는 일조차 버거운" 일들을 해야만 하는 김완씨는 자신을 위해 피아노를 친다고 했다. 

"손가락의 쓸모를 다른 식으로 바꾸고 싶었어요. 특수청소업을 하다 보면 수습할 것들이 많은데, 특히 고양이 사체를 처리할 때는 사후 경직이 돼서 굉장히 딱딱해요. 혹은 액화된 상태로 있기도 하고, 가죽만 남는 경우도 있어요. 수술용 장갑을 껴보셨다면 알겠지만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이 역할은 저희 회사에서 저만 해요. 이 감정을 누구하고도 공유하고 싶지 않거든요. 손에 남는 슬픈 감각 때문에 열 손가락을 다 쓰는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고, 피아노가 좋겠다 싶었던 거죠."

그는 음악이 가진 힘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언어의 세계가 음악의 세계보다 느리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직관적이고, 비언어적인 특성으로도 우리를 감동시키죠. 20개의 계단이 있다면 언어로는 상대가 계단을 올라올 때 푹 꺼지는 곳이 없도록 성실하게 말을 해줘야 해요. 하지만 음악은 자유롭게 공간을 들락날락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기타로 뉴진스의 Ditto 연주를 많이 합니다."

"자신에게 친절한 것은 힘이 됩니다"

그리고, 김완씨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무척 많음을 소개해주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는 불쑥불쑥 자신의 것들을 내어 보였다. 휴대폰으로 녹음한 직접 작곡한 곡들, 산책하는 동안 찍은 꽃 사진들, 세계 곳곳에서 부품을 공수해 커스텀한 개인 기타 사진까지. 모두 자신이 '애정'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해외 배송이나 중고 거래 등을 통해 각종 부품을 구매하고, 조립해 김완 씨만의 기타를 제작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 김완 씨 SNS 중 음악 계정 일부 해외 배송이나 중고 거래 등을 통해 각종 부품을 구매하고, 조립해 김완 씨만의 기타를 제작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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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행복을 (누군가와) 비교해서 찾고 있는데 절대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점점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지인인 요조(작가, 뮤지션)씨는 가끔씩 달리기를 한 후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진을 SNS에 올리시더라고요. 그게 정말 좋아 보였습니다.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을 마련해주면서 느끼는 해방감도 다들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김완씨는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통해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도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이라는 건 해야 하는 행위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즉 사랑하기 위한 행위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나 자신이 사랑이라는 것만 깨달으면 되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게 '사랑'이라면, 결국 가장 좋은 게 '자신'이라는 의미가 되는 거죠."

인터뷰 말미,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정말 신기하게 인생은 뜻대로 잘 안되요. 하지만 뜻대로 안 된 일이 또 다른 희망을 가져와줄 때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그럴 때마다 슬프고 괴롭겠지만,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자신에 대한 신뢰입니다. 연인도, 친구도, 부모님도 언젠가는 헤어지는 시기가 자연스레 찾아올 거예요. 결국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인 거죠. 자신의 내면을 한 번씩 돌아 봐줄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친절함이 언제나 큰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어요."

태그:#특수청소부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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