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처음에 나는 밀양송전탑 반대 활동을 잘 몰랐다. 밀양희망버스 행사에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공사가 강행되어 전국적인 이슈가 되던 2013년 무렵에는 변호사 시험 준비에 치여 그저 안타까워만 할 뿐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발표를 기다리다 밀양대책위에서 법률간사를 애타게 찾는다는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주민과 연대자들이 계속 연행되고 기소되면서 법률적 조력이 절실한데, 도움을 줄 변호사들은 서울, 부산, 창원 등 멀리 있다 보니 그 번거롭고 복잡한 일들을 현장에서 직접 챙겨줄 '법률가'를 찾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연락을 받고 밀양대책위를 찾아갔다가 덜컥 법률간사를 맡게 된 것이 변호사 개업을 하고도 지금껏 5년째 이 일을 함께 하게 된 계기다. 너무나 기막힌 사연들이 많았다. 70명에 육박하는 형사사건 피고인들, 끝없이 이어지는 연행과 기소, 선고와 항소, 패소와 기각으로 점철되는 한 가운데서 이 나라의 공권력과 사법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은 2005년부터 시작되었고, 공사가 처음 시작되던 이명박 정부 때로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은 풍찬노숙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급기야 박근혜 정권이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경과지 주민들을 대규모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진압한 2013년 10월, 13차 공사 재개 때부터 밀양 주민들에 대한 사법적 진압 작전도 함께 시작되었다. 경찰과 검찰은 송전탑 반대 데모에 참여한 고령의 주민들을 색출한 뒤 경찰서와 검찰청의 문지방이 닳도록 불러들여 수사한 후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얼마 전 양승태 대법원과 사법행정처의 사법 농단 문건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밀양송전탑 반대주민들에 관한 몇 가지 가처분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러한 정황만으로 밀양의 송전탑 반대주민들에게 선고된 형사 판결들이 위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선고된 판결문을 뜯어보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라는 의문은 들지 않을 수 없다. 몇 분의 사례만 훑어보자.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강정-밀양 공동기자회견’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앞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대책위 주민과, 송전탑저지 경남 밀양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양승태 대법원 철저 수사하라"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강정-밀양 공동기자회견’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앞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대책위 주민과, 송전탑저지 경남 밀양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선고된 판결문

밀양시 단장면 동화마을 주민 김아무개(46, 남)씨는 수년간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밀양시청, 국회, 청와대 등 안 가본 곳이 없었으나, 정부의 송전선로 건설공사 계획을 되돌리지 못하고 결국 맨몸으로 한국전력공사의 공사를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김씨는 집 뒷산 꼭대기 공사 현장에 500ml 물병에 기름을 담아 불을 붙여 공사 자재를 덮고 있던 마대 위로 던져 시가 약 140만 원 상당의 마대 일부를 태웠고, 다행히 그 마대의 불은 다른 곳으로 옮겨 붙지 않고 꺼졌지만, 법원은 김씨에게 일반물건방화죄를 적용하였다.

법원은 김씨가 또 다른 날 송전탑 찬성 주민의 집 앞 공터에서 송전탑 반대 운동을 지지하러 온 시민 십수 명과 함께 북, 꽹과리, 징을 30분간 친 것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협박죄로 인정하고, 이들 죄목을 합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법농단으로 박근혜에게 36억 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선고 받은 2심 판결 형량과 정확하게 같다.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송아무개(63, 여)씨는 반대 주민들과 함께 밀양시청을 찾아가 시장을 만나게 해달라며 면담요구를 하는 과정에서 시청 복도에서 몇 차례 구호를 외친 것을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공사를 위해 이동하는 레미콘 차량을 막을 요량으로 2시간 동안 공사 현장 진입도로에 앉아 기다린 것을 일반교통방해죄로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법원은 밀양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이 신고하지 않고 주민 1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구호를 외친 것을 두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상 미신고집회로 유죄 판결을 했다. 기자회견의 형식으로 의견을 표명할 일이 투쟁 현장에서 수없이 일어나지만, 오직 그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이 아닌 미신고 집회로 간주하고는 48시간 이전에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또한, 송전탑 반대 투쟁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전국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온 후원금을 모금하여 사용하면서 관할 자치단체에 신고하지 않았다는(실은 신고를 하였으나, 등록된 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두 차례 반려되었다) 것을 두고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의 유죄 판결을 하였고, 결국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69명의 밀양 주민 연대자들의 사연들에는 억울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선고형량이 '이 정도면 받아들일 만하다'라고 한 적이 없다. 늘 예상한 것보다 가혹했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밀양 주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사면'을 간절히 원한다. '빨간 줄'이라도 촛불 대통령이 지워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에 관하여 삼권분립의 원칙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법의 형평성을 깨뜨려 법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면'을 간절히 원한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하거나, 부정부패 사범에 면죄부를 주는 용도로 사면권이 남용되는 사례를 익히 봐왔다. 그럼에도 사면제도는 법 제정 내용 자체가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혹은 법 자체는 온당하다 하더라도 법적용을 잘못한 경우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법적용을 잘못한 경우'라고 함은 사법부의 판단 자체가 위법한 절차와 내용에 의한 것일 경우와, 사법부의 판단에 형식적으로는 위법 사항이 없다 하더라도 기계적인 법 적용으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볼 수 있는 국민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분인 형사처벌을 한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검찰만이 기소권을 가지는 기소독점주의 하에서 수사기관이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을 제압하는 용도로 수사 및 기소권을 남용한 결과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범죄자로 둔갑된 경우에는 사면권 행사의 요구가 더 절실할 것이다. 결국 사면권은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진 형식적으로 합법적인 형사처벌을 국가가 스스로 거두어들인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헌법적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위와 비슷한 사건들로 총 67명의 주민과 연대 시민을 재판에 부쳤고, 법원은 그 중 14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47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단 4명만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과 시민에게 부과된 벌금은 총 1억 1170만 원이다.

이미 송전탑 공사는 끝났고 평생을 살아온 고향땅과 일터, 논, 밭 위로 76만5천볼트 특고압 송전이 이뤄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밀양의 주민들은 '빨간 줄 그어진' 범죄자가 되어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과 이재용을 2년 6개월이라는 숫자로 똑같이 가리키고 있는 사법부의 기울어진 추를 바로 잡을 의무라고 쓰인 동전이 대통령의 손에 있고, 이 동전의 뒷면에는 사면권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법률사무소 시대에서 변호사로, 밀양 765 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에서 법률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밀양송전탑, #광복절특별사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