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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건설이 과잉투자로 질주하고 있다. 녹색연합의 <철도 난개발과 공공성 악화>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 혹은 계획 단계에 있는 상당수 신규 노선들은 향후 적자운영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미 적자 운영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본 기사는 '무분별한 신규 건설', '방치된 기존 노선', '모순적인 철도 정책'을 주제로 철도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 훼손을 검토하고자 한다. - 기자 말

동서고속화철도와 충주-문경 노선이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두 노선 모두 완공 뒤에는 큰 폭의 적자운영이 불가피하다. (관련 기사: '적자' 뻔한데, 국토부는 왜 신규노선 건설 강행할까) 코레일 노선 중 KTX 경부선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적자로 운영 중이다. 적자운영에 대한 부담 탓에 존폐위기에 처한 노선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7개 벽지노선이다. (관련 기사: 수십 년 주민과 함께한 지역철도, 죽어가는 이유는?) 국토부는 철도의 공공성과 관련해 모순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분별한 신설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철도 건설과 운영의 분리, 기재부의 칸막이 구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누구도 '철도'를 신경 쓰지 않는 상황 속에서, 철도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SRT 개통, '수요 기반 서비스'...모순적인 국토부 정책

국토부는 공공성을 위해 새로운 적자노선을 건설하면서도 정작 기존 노선에 대해서는 공공성을 외면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년 12월 개통한 SRT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SRT는 코레일 자회사로 출범한 ㈜SR 소속의 수서 발 고속열차다.

SRT는 KTX와 동일한 구간을 달린다. 때문에 SRT 개통은 코레일의 유일한 흑자노선인 KTX의 영업 손실로 이어진다. 현재 코레일은 KTX의 수입으로 그 외 적자노선들의 손실을 메꾸는 '교차보조' 운영을 한다. KTX 실적 악화는 곧 적자노선들에 대한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SRT 개통은 KTX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 KTX 열차 SRT 개통은 KTX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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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SRT와 KTX의 경쟁을 통해 코레일이 연간 5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해결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다르다. SR은 코레일의 기존 시스템에 무임승차해 알짜배기 노선만 운영한다는 논란이 나온다. 차량과 정비 등 초기비용의 상당 부분을 코레일에 의지하는 탓이다. 노선 배분 또한 경부선을 늘리고 호남선을 줄이는 등, SR의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조정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올해 영업 손익 전망자료를 받았다. 자료에는 SRT와 경쟁하기 위해 KTX 주중 운임을 10% 낮추면 1013억 원, 주중·주말 운임을 모두 인하하면 1704억 원의 적자가 각각 발생한다고 돼 있다.

SRT의 운송수입은 개통 100일간 1000억 원을 돌파했다. SR 관계자는 SRT의 질 높은 서비스를 성과의 이유로 든다. 그러나 SRT를 선택하도록 하는 요소는 서비스의 질이 아닌 기점 역의 위치라는 목소리도 많다. 분당/강남 지역 승객들이 가까운 수서역(SRT)이 아닌 서울역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SR의 지분은 코레일이 41%, 나머지는 사학연금 31.5%, 중소기업은행 15%, 산업은행 12.5% 등이 보유하고 있다. 이는 곧 철도의 수입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공성을 저해하는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2월 국토부가 발표한 '제 3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의 '벽지노선 운영 효율화' 항목의 내용은 <표1>과 같다.

벽지노선 운영 효율화 계획 (국토부)
▲ <표 1> 벽지노선 운영 효율화 계획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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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벽지노선도 수익성에 따라 운영하겠다는 계획으로 해석할 수 있다. PSO 보상이 줄어드는 마당에 수익성에 따른 운영을 한다면, 결국 적자폭이 큰 노선은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국토부는 적자를 이유로 벽지노선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적자가 뻔한 신규 노선을 건설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건설과 운영이 따로 노는 철도 산업

이렇듯 무분별한 신규 건설이 멈추지 않는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현재 철도산업은 정책과 건설, 운영이 분리되어 있다. 정책은 국토부, 건설은 한국철도시설공단, 운영은 코레일이 맡는다. 신설 노선의 경우 대개 국토부가 노선을 계획, 승인하면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국가 재정으로 건설을 집행한다. 완공된 노선 중 민간자본 운영 타당성이 확보된 일부 노선은 민간에서 운영한다. 이 밖의 모든 노선을 코레일이 운영하게 된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입장에서는 조직 유지를 위해 최대한 사업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좁은 국토 내에 이미 상당수 노선이 설치되어 있다. 일감이 한정된 상황에서 새로운 건설 사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가 재정으로 건설을 집행하면 그만이다.

철도의 건설은 한국철도시설공단, 운영은 코레일이 맡는다
▲ 원주-강릉선 공사현장 철도의 건설은 한국철도시설공단, 운영은 코레일이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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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건설된 수많은 적자 노선들을 운영하는 것은 코레일이다. 코레일 또한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레일은 2015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C 등급을 받은 바 있다. 이는 벽지노선 운행으로 발생한 적자와 무관하지 않다.

2016년 재무제표상 코레일의 금융부채는 13조 2789억 원쯤이다. 2015년과 비교했을 때 1년 새 2조 원 가까이 늘어난 액수다. 2015년 기준 영업이익이 1144억 원 수준이었음을 생각하면 이자의 4분의 1도 못 갚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기관은 예산 및 임금이 삭감되는 등 불이익이 따르다보니 운영적자를 무시할 수도 없다.

지역별 인구격차가 큰 한국에서 대부분 철도 노선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국가는 국민의 교통권 보장을 위해 철도와 같은 SOC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공공성에 입각해 철도를 운영할 경우 오히려 조직에 해가 되는 것이다.

국토부마저 모순적인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어느 기관도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철도를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철도청이 건설과 운영 분야로 상하분리 된 것은 2005년이었다. '경영책임을 분명하게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지만, 지난 10년간 쌓여온 것은 건설과 운영을 통합적으로 보지 않는 무책임이었다.

예타조사 따로, 예산 따로...칸막이 기재부

이런 상황에서 무분별한 신설을 견제할 수단마저 없다. 철도 건설 사업의 예타(예비타당성)조사는 기재부의 타당성심사과가 담당한다. 이와 별개로 PSO 보상, 노선 유지 보수, 철도 건설 등의 예산은 기재부 국토교통예산과가 담당한다. 사업을 승인하는 부서와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결정하는 부서가 나뉘어 있다.

문제는 예타조사 과정에서 철도 산업의 전체 예산에 관해서는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재부 예타 담당자는 "예타조사는 그 사업의 비용/편익 등에 한정해서 심사하는 것이고, 다른 노선의 운영 상태 등은 관심 영역이 아니다"라며, "PSO 보상 예산, 전체 철도의 지속가능성 등은 타당성심사과에 물어볼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규 적자노선 건설은 향후 철도 전체의 운영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부담은 벽지노선 등 기존 노선에 곧장 위협이 되는 만큼, 하나의 신규 노선 건설을 심사할 때도 철도 전체를 따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재는 사업 승인 부서가 그러한 결과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구조다.

예산 담당 부서는 이미 결정된 건설 사업에 예산을 배정할 수밖에 없다. 기재부 철도예산담당자는 "우리는 예비타당성조사에 대해 알 수 없다"며, "적자노선 문제에 대해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건설 예산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PSO 보상 등, 기존 적자노선 관리를 위한 예산은 줄어들게 된다. 철도건설의 예산은 주면서, 운영관리 예산은 주지 않는 것이다. 부서 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칸막이 구조 탓에 벌어지는 일이다.

무분별한 신설에 앞서, 벽지노선 등 기존 노선의 운영에 대한 대책부터 필요하다
▲ 영동선 무궁화 열차 무분별한 신설에 앞서, 벽지노선 등 기존 노선의 운영에 대한 대책부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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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건설은 사업 당 2조 원가량이 투입되는 대형 SOC 산업이다. 그러한 사업이 최소한의 견제 수단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철도노조 역시 신규 적자 노선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동의는 하지만 보다 시급한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철도는 공공성이 뛰어난 교통수단이다. 환경성, 효율성, 안전성 면에서도 다른 교통수단보다 우월하다. 고령화되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철도에 대한 투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강점은 지속가능한 운영이 보장될 때에야 가능하다. 기존 적자 노선은 줄이면서, 새로운 적자노선을 건설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으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철도 정책에 대한 관심이 절실한 이유다.


태그:#동서고속화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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