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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관극장 앞에 있는 카페 '극장앞'에서 만나."
"극장 앞에 카페가 여럿인데 카페 이름이 뭐야?"
"'극장앞'이라니까."
"그래, 극장 앞에 있는 무슨 카페?"
"어휴, 이름이 '극장앞'이라니까?"

동인천 애관극장 앞에는 '극장앞'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카페 주인 윤성원(27)씨는 카페 '극장앞'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 중 이런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지난 12월 26일 중구 경동 애관극장 앞, 카페 '극장앞'에서 윤성원 사장을 만났다.

볼 게 많은 카페이자 갤러리인 '극장앞'

중구 경동에 있는 애관극장 앞에는 ‘극장앞’이라는 카페가 있다.
 중구 경동에 있는 애관극장 앞에는 ‘극장앞’이라는 카페가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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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겸 갤러리인 '극장앞'은 2013년 8월 오픈했다. 피부관리실이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비어있었다. 윤 사장의 어머니가 2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1층은 카페 겸 갤러리 겸 윤 사장의 작업 공간으로, 2층은 생활공간으로 꾸몄다.

윤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후 중학생 때 미국으로 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2012년 귀국해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가 한국에서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하셔서 들어왔습니다. 카페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오픈했고, 동인천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알게 돼 이곳을 거점으로 지역축제나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하게 됐어요."

윤씨는 2012년 귀국 후 '청년플러스'라는 단체에 참여하며 지역 활동을 시작했다. '좋아요 인천'이라는 신포동 주변에서 이뤄지는 축제에 청년기획단으로 함께하며 교류했다.

카페 운영은 어머니가 많이 도와준다. 공동운영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적당한 듯했다. 카페 안에는 윤씨와 어머니의 취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벽면에는 윤씨의 사진작품과 기증받은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그밖에 빈티지 가구와 다리미, 재봉틀 등 생활용품, 중국과 일본에서 구입한 제품들, 책들이 카페 곳곳에 빈틈없이 놓여있다.

"입구에 있는 나무 테이블은 어머니가 아는 어떤 작가님이 손수 제작해주셨어요. 오래된 가구는 외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건데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오신 거고요. 미싱은 미국 제품이고, 엔틱 다리미와 병ㆍ잔 등은 어머니가 모으신 것을 데커레이션(decoration)한 겁니다. 오래된 영사기도 장식으로 카페 안에 뒀습니다."

카페에 있는 가구 중에 눈에 띄는 게 몇 개 있었다. 예전 한약방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오래된 가구가 그 중 하나다. 진한 밤색의 이 가구의 겉면에는 서랍마다 약재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카페 사장이자 사진작가인 윤성원씨.
 카페 사장이자 사진작가인 윤성원씨.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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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친구의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했는데 문을 닫게 됐대요. 버리기엔 아깝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곳에 기증하고 싶다고 해서 삼촌한테 소개 받아 저희가 보관하게 됐죠. 40년 전에 목수가 만들고 할아버지 친구가 서랍장에 글씨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카페 출입문 바로 옆에는 한 무더기의 책이 전시돼있다. '세든 서점'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세 들어 있는 서점'이라는 말을 줄인 거란다. 그래픽디자이너와 책 편집자가 운영하는 이 서점엔 그들이 고른 책을 전시하고 있는데, 카페에서 공간을 대여해주고 있다.

책이 놓인 공간 아래에는 각종 가위가 전시돼있다. 윤씨의 어머니가 중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가위들이다. 어머니가 가위를 좋아하기도 하고, 가위를 생산하는 기업이 400여년 된, 전통이 있는 곳이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어머니가 옛날 디자인이나 빈티지를 좋아하세요. 가위도 새로 나온 디자인이 있는데도 예전의 것을 고집하십니다. 중국의 오래된 찻잔을 모았는데 그것도 카페에 전시해 판매합니다. 모두 좋은 물건이에요. 예전에 어머니가 빈티지 의류 사업도 하고 광고회사에도 다녀서 안목은 저보다 훨씬 좋죠. 제 사진에 깊이가 없다고 인생을 더 살아봐야한다고 쓴 소리를 하기도 하십니다.(웃음)"

카페를 오픈하고 꾸준히 찾는 단골이 있다고 말한 윤씨는 다른 카페와 차별성으로 볼거리 많은 것을 꼽았다. 인테리어를 따로 안 해도 가끔씩 생기는 가구가 기존에 있는 가구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게 이 카페의 멋이라고 했다.

"카페 안에 볼거리가 많으니까 손님들이 사진 찍기도 좋고 극장에 가기도 편하잖아요. 우리 카페는 콘셉트가 없는 게 콘셉트입니다."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카페 벽면에는 카페 주인장이 대학 때 LA에 있는 그랜드센트럴마켓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카페 벽면에는 카페 주인장이 대학 때 LA에 있는 그랜드센트럴마켓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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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처음 이 공간을 열 때 매상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카페 운영도 생각할 수밖에 없어 손님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도 손님들에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주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1월 중순에 지인들과 영화 상영회를 할 계획입니다.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 영화나 웹 드라마 '자몽'을 상영할 예정입니다. 지인 중에 독일에 사는 사람도 있는데 같은 영화를 독일에서도 상영할 생각이에요. 모이는 사람이 많든 적든 일단 시작하려고요. 잘 되면 계속 할 수도 있고요."

웹 드라마 '자몽'은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친구가 요청해 장소를 대여해줬다. 2016년 7월에 찍은 '자몽' 외에도 2016년 2월에는 웹 드라마 '키스 미 이프 유 캔(Kiss me if you can)'을 찍었고, 조만간 한 편을 더 찍을 예정이란다.

카페를 오픈한 이듬해에는 이곳에서 종종 공연을 했다. 그밖에 사진작가 서은미와 '이미지로 만나는 타인의 고통'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읽고 따뜻한 차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윤씨가 직접 '장농 속 낡은 카메라로 오래된 동네 담기'라는 제목으로 사진교실을 열기도 했다. 인천의 구도심을 느릿느릿 산책하며 필름카메라로 셔터를 누르면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담긴 나만의 작품이 탄생한다고 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멋진 사진을 찍는 깨알 같은 팁을 동네 카페 사장이 친절이 알려준 사진교실이었다.

잠시 중단된 사진·회화·조각·유화·동양화 등의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극장 앞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손님들의 연령대가 다양해요. 유행하는 영화에 따라 오시는 손님이 다양하니까요. 가끔 가구점인줄 알고 들어온 사람도 있어요. 동네 분들 중에 진짜 오고 싶었는데 혼자 못 와서 친구를 데리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왜 못 들어왔냐고요. 글쎄요. 우리 가게 분위기 때문에 문턱이 높다고 할까요? 일반적인 카페 분위기가 안 나나 봐요. 가구점 같은 느낌도 있어서 '내가 들어가도 되나' 싶은 거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차별적으로 아무나 들어오면 피곤할 거 같아요. 카페가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공간이지만 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만의 카페처럼 보이게 하려고 해요."

없는 계획을 만들어갈 계획

카페 겸 갤러리인 ‘극장앞’에는 한약방에서 쓰던 40년된 가구가 놓여있다. 목수가 짠 이 가구의 서랍장에는 손글씨로 약재 이름이 쓰여있다.
 카페 겸 갤러리인 ‘극장앞’에는 한약방에서 쓰던 40년된 가구가 놓여있다. 목수가 짠 이 가구의 서랍장에는 손글씨로 약재 이름이 쓰여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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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가 생기고 나서 애관극장 앞에 카페가 세 곳 더 생겼다. 들리는 말로는 이 거리에 카페가 더 늘어날 거란다. 카페가 늘면서 극장 손님도 늘어나고, 관객이 늘어나면서 카페의 매상도 올라 카페와 극장이 상생하고 있다.

"현재 이 거리를 '웨딩거리'라고 하는데 문 닫는 혼수가구점이나 양복점이 점점 많아져요. 반면에 카페는 늘고 있잖아요. 다른 카페 사장들과 '카페거리'로 만들자고 중구청에 건의하자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습니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윤씨는 창작활동에 더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그러나 카페를 운영하며 쉽지는 않은 일이다. 지금은 사진촬영 의뢰가 들어오는 정도의 작업을 하고 있지만 구도심인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동네가 매력적이잖아요. 낡았다기보다 세월이 깃들어있는 공간과 건물이 많아 운치가 있어요. 저는 주로 거리 스냅사진을 찍어요. 여행하거나 돌아다니며 그 순간에 들었던 느낌을 담아 찍는 걸 좋아합니다. 거리에서 찍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가게 사진도 많이 찍습니다."

2014년 남구 신기시장의 갤러리 '듬'에서 개인전시회를 열기도 한 윤씨는 최근에는 인천아트플랫폼 칠통마당에서 열린 '인천바로알기종주' 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인천의 청소년 130여 명이 6박 7일간 인천의 여러 곳을 여행한 것을 작가들이 사진과 동영상, 캐리커처 등으로 담아 전시한 것이다.

카페 이름을 밑도 끝도 없이 반은 농담으로 지었다는 윤씨는 간판도 너무 작아 손님들의 불만이 있지만 '불친절이 콘셉트이기도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좀 더 아늑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 다양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합니다. 하지만 2017년에는 사진을 찍으러 더 많이 다녀볼 생각입니다. 계획이 없다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친구들과 이 동네에 모여서 얘기하다가 '이거 해볼래?' 자연스레 얘기가 흐르기도 하죠. 화요일은 쉬고, 정오께 문을 열어 극장 마지막 상영시간에 맞춰 닫아요. 불 켜 놓고 작업하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받기도 하고, 장사가 안 되면 문을 일찍 닫기도 해요. 불친절한 사장인가요?(웃음)"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윤성원, #극장앞, #애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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