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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한 소유와 정기고가 트로피에 키스를 하고 있다.
▲ 키스? 안 돼! 2월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한 소유와 정기고가 트로피에 키스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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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벤치에는 네 사람까지 앉을 수 있다. 건장한 남성이라 할지라도 두 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길이이다. 하지만 대학교 캠퍼스 곳곳에서 그 넓은 벤치를 놔두고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여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거나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말도 않는다. 벌건 대낮에, 주변에 사람들이 있든 없든 아랑곳 하지 않는 커플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기는커녕 민망하기만 하다.

물론 그 정도의 스킨십은 귀엽게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캠퍼스를 걷다 보면 남성이 여성의 몸을 과하게 만진다거나, 쉴 새 없이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때마다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 "저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불쑥 일어난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배움의 터전인 학교인지, '19금' 영화 촬영 현장인지 혼란스럽다. 이런 나의 반응에 커플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신경 꺼!" 또는 "너도 하든가!". 나 참.

2010년, 파릇파릇한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다. '대학만 들어가면 남자친구가 생길 거야. 그럼 아름다운 봄날의 캠퍼스를 즐겁게 누빌 수 있을걸?' 하는 마음가짐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남자친구가 생기기는커녕 내 주변엔 여자들만 가득했고, 벚꽃이며 목련이며 봄꽃들을 구경하기도 전에 중간고사 시험 준비에 돌입해야 했다. 친구들의 블로그나 미니홈피는 애인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로 도배됐고, 나는 부럽지만 부럽지 않은 듯 그 사진들을 보며 밤새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솔로로 학교생활을 하는 1년 동안 나는 커플의 모든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나의 민감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잠도 깰 겸 같은 과 친구와 학교 안 편의점에서 커피를 하나씩 사들고 근처 벤치로 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시험 스트레스를 풀려던 찰나에 나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바로 벤치 근처를 걷고 있는 커, 플, 들. 어깨동무를 하거나 상대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있는 커플들의 모습은 정말 꼴 보기 싫었다.

"저런 것들이 미풍양속을 다 깨뜨린다니까!"

"저게 뭐하는 짓이고? 안 그래도 날도 좋은데 시험 준비해야 해서 짜증나는데 애인 있다고 티내는 것도 아니고…. 맞제?"
"진짜 저것들은 시험 공부도 안 하고 뭐하는 짓이고? 꼭 저런 애들이 시험 성적은 뭐같이 받더라."
"분명히 학점도 완전 안 좋고, 주변에 친구들도 없지 싶다. 지네끼리 다닌다고 인맥관리 완전 꽝일걸?"
"맞다, 맞아!"

나와 친구는 한동안 그 커플의 다정한 행위에 혀를 찼다. 그들의 애정행각은 더 발전(?)했다. 볼에 입맞춤을 하고 난 후 서로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우리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대학에서 뭐 배운 건데? 저런 것들이 우리나라 미풍양속을 다 깨뜨린다니까!"

근거도 없이 무조건 커플을 비난하면서, 솔로였던 나를 스스로 위로했다.

KBS <개그콘서트> '끝사랑'의 한 장면. 스킨십에 민감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여성 역할의 박소라(왼쪽).
 KBS <개그콘서트> '끝사랑'의 한 장면. 스킨십에 민감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여성 역할의 박소라(왼쪽).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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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이 흘러 드디어 내게도 남자친구가 생겼다. 연애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은 지금, 커플들의 애정행각에 대한 내 생각에도 조금의 변화는 있었다. 솔로 시절에는 커플들의 스킨십에 과하게 민감했지만, 이제는 조금 관대해졌다. 왜냐하면… 나도 하니까.

캠퍼스 커플인 우리는 같은 수업도 종종 듣고, 점심식사는 거의 매일 함께 한다. 손을 잡고 캠퍼스를 산책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보는 시간도 많고, 그만큼 애정지수는 더욱 올라간다. 애정행위 정도에 있어서 남자친구와 나의 생각은 거의 일치한다. 가끔씩은 내가 더 많이 요구(?)할 때도 있다. 남자친구는 부끄러움이 많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2014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김없이 우리는 봄날의 캠퍼스를 즐기고 있었다. 학생들이 수업을 하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간 시간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떨어질세라 딱 붙어서 길을 걷는다. 가끔 사람들이 안 보이면 볼에 뽀뽀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학생들이 하나둘 강의실 밖으로 나오면 남자친구는 내 어깨에 올렸던 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그냥 내 손을 잡는다.

나보다 더 민감한 '부끄럼쟁이' 남친, 순수한 줄 알았는데

"왜? 왜 손만 잡아야 돼? 어깨동무 정도는 괜찮잖아?"
"아니다. 원래 손만 잡아야 하는 거다."
"치!"

가끔씩은 섭섭함이 머리 끝까지 차오르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기엔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에 그냥 넘긴다. 남자친구는 아예 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은 적도 꽤 있다. 그냥 손 시려워 그러는가 보다 하고 '쿨'하게 넘긴다.

내가 스킨십에 관대해졌다고 해서, 커플들이 공공장소에 하는 지나친 애정행각도 용인하게 됐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드문 곳에서 포옹이나 입맞춤을 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학교 식당이나 편의점 옆, 또는 도서관과 각 단과대 건물 앞 벤치에서 남들 보란 듯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여전히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자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남자, 남자의 무릎 위에 앉은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는 '저게 뭐하는 짓이고'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아닌가 보다. 길을 가다 커플이 한창 애정행각을 하는 장면을 보면 눈을 떼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서라도 감상(?)하고야 만다. 나 참. 사람 있는 곳에서는 어깨동무조차 하기를 꺼려했던 남자친구가 아니었던가. 왜 그러냐고, 보지 말라고 눈치를 줘도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다.

"왜? 재밌잖아."

재미? 영화도 아니고, 다른 커플의 애정행각을 재미를 위해 계속 보고 있다니. 남자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다는 걸까? 남자친구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하면 솔직히 부끄럽잖아. 특히나 학교에서는 동아리 후배 녀석들도 만날 수 있고. 그럼 내 모습이 뭐가 되냐? 사람들 앞에서 하는 거야 뭐 어차피 남들 구경하라고 하는 거 아니가? 남자나 여자가 좀 더 진하게 스킨십 하면 상대방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순수한 줄만 알았던 남자친구가 음흉한 늑대로 보이는 순간이다. 그래도 사람들 많은 곳에서 나한테 저런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할 뿐….

덧붙이는 글 | 최은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연애, #캠퍼스, #커플, #스킨십, #애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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