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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발표한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범죄일람표에 포함되어 국가정보원(국정원) 관련 아이디로 알려진 '좌익효수'의 댓글이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공개한 검찰의 범죄일람표에 따르면,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한 아이디 '좌익효수'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빨갱이들에게 놀아난 붕진들의 폭동 맞음...이거 아직 모르는 사람 있음?"이라고 항쟁을 비하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배우 문근영에게는 "문근영 뒤통수 절라디언 빨치산 손녀랑께"라는 수준 이하의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 외에도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수준의 인권 유린 댓글이 공개되었다.

국정원의 인권 유린 행각은 이런 반인륜적인 댓글을 단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국정원의 인권침해와 관련한 논란은 있어 왔다.

인권침해 기관 국정원

국정원은 지속적으로 국민을 사찰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월, 국정원이 민간인을 미행하는 등의 불법사찰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1월 14일자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진보단체의 간부로 재직하던 이모씨는 1월 3일부터 자신을 미행, 촬영하는 남성을 인지하고 1월 9일 국정원 직원 문모씨를 몸싸움 끝에 경찰에 인계했다고 한다. 또한, 2013년 4월 13일자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의 트위터를 자주 올렸던 황모씨의 가족을 찾아와 주의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국정원이 선거와 관련하여 민간인의 신상정보를 불법으로 알아보고 찾아가기까지 한 일로써 민간인 사찰을 통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국정원은 국민들의 인터넷 사용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8월 31일 '국정원 대응모임'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국정원이 '패킷감청'을 실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패킷감청'은 인터넷을 통해 전송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가로채어 보는 것이다. '패킷감청'은 혐의 내용과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모조리 보게 된다는 점, 같은 회선을 사용하는 타인의 인터넷 사용 내용도 감청 당하는 점 등 인권침해 요소가 크다. 2009년 11월 3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최소 2004년부터 '패킷감청'을 실시해 오고 있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탈북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인권 유린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화교남매 간첩단 사건은 국정원이 탈북자에게 저지르는 인권 유린 유형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탈북화교 유모씨는 북한에 정보를 전달했다는 혐의로 2013년 2월 구속 수감되었다. 국정원은 이 유모씨를 간첩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변호사 측은 국정원에 의한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여동생이 국정원의 조사과정에서 오빠를 간첩이라고 진술했던 것이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증거다. 그러나 여동생은 변호인을 만난 자리에서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또한 여동생은 국정원이 관리하고 있는 합동신문센터에서 180일 동안 갇혀 조사를 받는 동안 국정원에 의해 강압적으로 수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여동생이 진술을 번복하자 궁지에 몰린 국정원은 유모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6장의 사진을 '북한에서 촬영한 것'이라면서 재판정에 증거로 제출했다. 2013년 7월 24일, <시사Live>에 따르면 국정원은 유모씨를 간첩으로 몰기위해 이 사진의 디지털 증거를 조작했다고 한다. 변호인 측에서 이 사진의 EXIF 정보(디지털 사진 내부에 따로 저장되는 정보) 중 GPS(위치) 정보를 확인한 결과, 국정원이 제출한 모든 사진이 중국 연변에서 찍은 것이 확인되어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은 '합동신문센터'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6개월간 국정원, 경찰, 군의 합동수사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들은 그 어떤 외부적 접촉이 불가능하고 가족이나 친척들의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 수사는 모든 탈북자들에 대하여 진행되며, 공안기관은 탈북자 모두를 잠재적인 간첩으로 간주하고 조사를 벌인다. 6개월 동안 외부 접촉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탈북자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국민을 사찰하고 약자인 탈북자들에게 가하고 있는 인권 유린 행위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국정원의 과거를 보면 국정원뿐만 아니라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도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권력을 위해 국민에게 죽음을 강요

국정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인권 유린의 대명사였다. 이들은 권력을 위해 또는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끊임없이 조작사건을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마저도 서슴지 않았다.

중앙정보부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으로 최종길 교수 사건을 들 수 있다. 1973년 10월 19일, 최종길 교수는 중앙정보부에서 수사 중이던 간첩 사건과 관련하여 중앙정보부를 찾아갔다가 정보부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중앙정보부는 최종길 교수가 간첩 혐의 사실을 자백한 뒤 창밖으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는 최종길 교수의 투신 현장도 공개하지 않았고 부검도 거부했다.

2002년 5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서울대 최종길 교수의 죽음이 "공권력에 의한 사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2006년 최종길 교수의 유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고문에 의한 사망인지 아니면 의식불명 상태에서 자살로 위장됐는지 간에 당국의 조사도중 숨진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여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타살되었음을 밝혔다.

1975년 벌어진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도 있다. 1975년 8월 17일,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추진 3일을 앞두고 숨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해 중앙정보부는 포천 약사봉에 등산을 하러 갔다가 실족하여 추락사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는 2013년 3월 26일, 서울대 의대 이정빈 명예교수가 진행한 정밀유골감식 결과 고 장준하 선생은 "머리를 가격당해 숨진 뒤 추락했다"는 부검결과를 발표했다.

2013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2004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 당시 중앙정보부는 장준하 선생을 '위해분자'로 분류해 첩보원과 경찰을 동원한 불법 도청 방식 등으로 감시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 6국장은 장 선생 사망 일주일 전 그의 무등산 산행에 대한 동향관찰을 지시했고, 사망 전날에는 장 선생이 재판을 방청한 사실도 파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중앙정보부는 장준하 선생 사망사건 처리 과정에도 적극 개입했다고 한다. 장준하 선생 죽음 배후에 중앙정보부가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2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과 같이 사법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있다"고 발표하며 사건 관련자 1천 24명을 연행했다. 그리고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인혁당 사건 관련자 23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도예종을 비롯한 8명은 사형, 나머지는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8인은 재심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사형이 선고되고 18시간 만에(4월 9일) 사법살인을 당하고 말았다.

2002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인혁당 사건은 수사 착수부터 재판까지 철저하게 조작됐다"며 "당시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고, 정권 유지의 필요에 따라 수사방향을 미리 결정하여 조작한 사건이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7년 1월 23일, 재심결과 사형수 8인에 대해 전원 무죄판결을 내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살펴보았듯이 중앙정보부 등의 기관은 권력과 자신의 실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겼던 인명경시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성의 실종, 고문과 간첩조작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자행한 인권 유린 행위에는 고문과 간첩조작도 있었다. 중앙정보부가 개입했던 1차, 2차 인혁당 사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모두 조사과정에서 끔찍한 고문이 자행 되었다. 2012년 9월 12일자 <한겨레>보도에 따르면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된 이수병씨의 부인 이정숙씨는 "등이 다 시커멓게 타 있었어요. 손톱 10개, 발톱 10개는 모두 빠져 있었고, 발뒤꿈치는 시커멓게 움푹 들어가 있었어요."라고 밝혀 인혁당 관련자들이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고문은 간첩 또는 이적단체/반국가단체 조작과 관련하여 자행되었다.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의 '총책'으로 알려진 황인오씨는 "중부지역당 사건은 안기부의 고문수사로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2004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황인오씨는 "안기부가 어린 아들을 비롯해 가족들을 20일 동안 감금했다는 것을 알고도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몰라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황인오씨의 어머니인 전재순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재순씨는 안기부 조사실에 끌려가서 3일간 강압수사를 받았는데, 조사를 받는 도중에 "아들 황인오씨의 비명소리가 들려 잠을 잘 수도 물 한모금 마실 수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먼저 연행되었던 며느리가 4살짜리 손자가 보는 앞에서 구타와 욕설을 당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고 한다.

1993년 일어났던 소위 "남매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김삼석씨도 고문을 당했다. 2004년 김삼석씨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연행 뒤 3, 4일간 시간 날짜 개념을 잊은 채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으며 구타와 원산폭격, 서서 무릎 쪼그리기와 같은 가혹행위를 수십 회에 걸쳐 당하며 유도신문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라고 한다. 심지어 김삼석씨는 성고문까지 당했다. 김삼석씨는 같은 기고문에서 160번 명찰을 단 수사관이 치솔을 대고서 성기를 건드리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였다고 밝혔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 시기에서도 국정원의 가혹행위는 뿌리 뽑히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000년 5월 20일 '백두청년회' 명의로 북한관련 자료를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했다는 혐의로 지태환씨가 구속되었다. 지태환씨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조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자 국정원 직원이 "가슴·명치·옆구리 등을 샌드백 치듯이 주먹으로 무차별 두들기고 무릎으로 걷어찼다."고 한다. 이에 항의하면서 지태환씨가 묵비 및 단식을 진행했음에도 국정원 직원들의 폭행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구치소로 이송된 후 검진한 결과 좌늑골 9, 10번이 골절된 사실이 밝혀졌지기까지 했지만 폭력을 휘두른 국정원 직원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고문을 이용해 조작한 1969년 '일본 거점 대남간첩단 사건', 1973년 '유럽간첩단 사건', 1974년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1980년 '진도 간첩단 사건', 1983년 '조총련 간첩단 사건' 등의 간첩조작 사건이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결나고 있다. 이들 사건으로 피해자들은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 의해 고문을 당했고 수년에서 수십년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으며, 심지어는 사형을 당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결국 이들 국정원, 중앙정보부, 안기부는 정보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와 실적을 위해 국민을 마구잡이로 희생시킨 반인권 범죄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정원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라"며 국정원의 '셀프개혁'을 주문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국정원은 권력과 자신의 실적을 위해 국민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반민중 반인권 범죄집단이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인권유린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 왔다.

이런 기관에게 스스로 개혁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이들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인권유린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셀프개혁'이 아니라 국정원 권력의 해체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사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정원해체, #인권유린, #좌익효수, #고문, #간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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