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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꼭 1년이 된다. 1년 전 정부는 거대시장 미국으로의 경제고속도로가 연결됐다고 자축했다. 자동차부품과 섬유의류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 국내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볼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내 농축산업 등의 피해도 우려됐다. 지난 1년 한미FTA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마이뉴스>는 중소 수출기업과 감귤농장 등의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등과 함께 향후 대안을 고민해본다. [편집자말]
지난 2007년 1월 24일 개성공단 안 의류제조업체인 신원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월 24일 개성공단 안 의류제조업체인 신원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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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서울 중랑구에 있는 한 의류 봉제 공장.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 4층에 마련된 50평 남짓한 작업장 안에는 그 흔한 전자동 기계 하나 없이 직원 20여 명이 오직 재봉질에 매달려 있었다. 10대 여공들만 없었을 뿐 1970년대 청계천 봉제 공장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이들이 국내 섬유·의류업계에선 거의 자취를 감춘 마지막 '수출 역군'이란 점까지도.

실제 이들이 만든 여성 니트를 비롯한 옷들은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된다. 정성조 두일교역 전무는 "연간 수출 규모가 1500만 달러(약 160억 원)에 이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미국 수출도 10% 정도 늘었다"고 자랑했다. 이 업체의 경우 국내 생산 비중이 70%에 달하지만 대부분 의류 업체는 중국과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겨 'FTA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 성공 사례'로 꼽힌 기업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섬유·의류업계, 국내 생산 적어 FTA 체감 못해... "바이어만 이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지난해 6월과 9월 한미FTA 중소기업 성공 사례를 연달아 발표했다. 지난해 3월 15일 한미FTA 발효 즉시 2~10% 수준의 관세가 철폐되는 자동차 부품과 섬유·의류·신발 등이 대표적 수혜 품목으로 꼽혔다.

특히 여성 원피스의 경우 11.5~14.9%에 이르던 관세가 한꺼번에 사라져 혜택 폭이 상당히 컸다. 당시 코트라는 여성의류 90%를 미국에 수출하는 누리안인터내셔널을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누리안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지난 6일 "한미FTA로 미국 수출이 많이 늘어날 걸로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며 "미국 바이어(수입업자)들은 관심을 보였지만 국내 봉제 생산 능력이 안 돼 주문을 해도 물건을 댈 수 없었다"고 밝혔다.

누리안의 경우 국내 공장은 3곳 뿐이고 90% 이상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10% 넘게 관세 혜택을 받더라도 베트남 공임이 워낙 싸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다"라며 "당분간 국내 공장을 늘릴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 국내에서 의류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 해외에서 생산해 FTA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중견 니트 의류 수출업체인 최신물산 사정도 비슷했다. 백미희 최신물산 차장은 "국내 생산은 10%뿐이고 대부분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인건비를 따지면 국내 공장을 늘려봐야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의류 수출업체인 명성텍스 박영순 전무 역시 "주로 유럽에 수출해 미국 수출 비중은 높지않지만 국내 공장이 없어 관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생산하려해도 인건비 때문에 채산성이 안 맞아 경쟁력이 없다"고 밝혔다.

관세가 지난해 2%포인트 정도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줄어 줄어드는 섬유업계 쪽은 어떨까? 특수 편직물 섬유를 만들어 미국에 70% 이상 수출하는 지텍코리아의 경우 국내 생산 비중이 90%에 달해 바이어가 추가 주문하고 새 거래처를 확보하는 등 관세 인하 효과를 보고 있다.

반면 부직포·크리너 등 산업용 섬유를 수출하는 웰크론의 경우 미국 수출 비중이 적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가대현 웰크론 차장은 "대부분 유럽쪽에 수출하고 있고 미국 수출은 10%도 안 돼 한미FTA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국내 공장에서 50% 이상 생산하고 있지만 FTA 전보다 오히려 매출이 줄어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국에 화학섬유 직물을 수출하는 부미랑코퍼레이션 김태식 이사 역시 "연초에 가격 조정도 있었고 섬유 쪽은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라며 "FTA 이후 매출이 줄었으면 줄었지 늘어난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산지 사후 검증 불안... 관세 혜택 박탈에 벌금까지

서울 중랑구에 있는 한 의류 봉제 공장 입구. 이곳에서 만드는 의류들은 대부분 유럽·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고 계단을 창고 대용을 쓰는 등 시설은 열악했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한 의류 봉제 공장 입구. 이곳에서 만드는 의류들은 대부분 유럽·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고 계단을 창고 대용을 쓰는 등 시설은 열악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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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원산지 증명과 사후 검증도 중소기업들 발목을 잡고 있다. 특혜 관세를 받으려면 상대국 세관에 제품과 재료 원산지가 한국임을 증명해야 하고 사후 검사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원재료 목록부터, 원가자료와 생산 등 원산지 관련 서류만 200여쪽에 달한다. 게다가 미국쪽으로부터 사후 현장조사까지 받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세 혜택이 모두 사라지는 건 물론 최대 수천만 원에 이르는 벌금이나 과태료까지 물어야 한다.

실제 무역업계에 따르면 미국 세관은 최근 한국타이어를 포함한 국내 20여 개 업체에 대해 FTA 사후검증 조사를 실시해,  일부 기업에 대해 FTA 특혜관세 혜택을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조사를 받은 업종은 타이어를 비롯해 섬유 등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들이었다.

중소 의류업체인 최신물산의 백미희 차장은 "(관세 철폐해봐야) 수출업체는 효과가 없고 바이어들만 혜택을 본다"며 "(바이어들을 위한) 원산지 증명 서류만 200쪽에 달해 서류 작업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코트라에서 LED 조명 분야 대미 수출 성공사례로 뽑은 엔타임텍 경우도 마찬가지다. 엔타임텍은 미국 LED 조명 제품업체인 맥스라이트의 하청(OEM)을 받아 100% 미국에 수출하는 업체다. 한미FTA 발효로 최대 6% 관세가 사라졌지만 이 회사는 아직까지도 특혜 관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박아무개 엔타임텍 해외영업팀 차장은 "FTA 발효 이후 수출이 약간 늘기는 했지만 원산지 증명 서류 작업이 완벽하지 못해 가시적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간 수출 규모가 270만 달러(약 29억 원)에 달해 특혜 관세가 적용되면 바이어는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 이익을 볼 수 있고 주문량 증가도 예상되는데도 망설이는 건 사후 심사 부담 때문이다. 박 차장은 "바이어쪽에선 원산지 증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에는 대기업처럼 전문적인 관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사후 심사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최현필 코트라 선진시장팀 과장 역시 "많은 중소기업들이 한미FTA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잡한 원산지 증명 작업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한국무역협회가 3월 15일 한미FTA 1주년을 맞아 원산지 사후검증 대응 세미나를 여는 등 중소기업 대상 컨설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만 주성호 한국섬유산업연합회 FTA지원센터 과장은 "원산지 증명은 한미FTA뿐 아니라 기존 한-EU를 포함해 모든 FTA에 적용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온 업체들은 큰 어려움이 없다"며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얼마나 열의를 가졌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개성공단 포함 여부 앞둬... 대북 경제제재 강화로 불투명

'한미FTA 발효 축하 국민축제 한마당'이 지난해 3월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국자유총연맹 주최로 열린 가운데 '한미FTA로 미국시장을 점령하라' '한미FTA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 등 환영 구호가 적힌 수십개의 현수막을 참가자들이 들고 있다.
 '한미FTA 발효 축하 국민축제 한마당'이 지난해 3월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국자유총연맹 주최로 열린 가운데 '한미FTA로 미국시장을 점령하라' '한미FTA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 등 환영 구호가 적힌 수십개의 현수막을 참가자들이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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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FTA 관세 혜택에서 배제된 것도 문제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신원·좋은사람들·평안·만선을 비롯해 섬유·의류업체 50여 개가 입주해 있지만 미국 수출은 차단돼 있다. 한미FTA 협상 당시 개성공단에서 가공한 제품도 한국산으로 분류해 미국 수출 길이 열릴지가 큰 관심사였다.

한미 양국은 발효 1년이 되는 날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열어 개성공단 포함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북 핵실험으로 미국이 대북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어 전망도 불투명하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내정자 역시 지난 7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겠다"며 "국제 정세가 개선되면"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1년 전 한미FTA 발효 당시 섬유의류산업은 자동차산업과 함께 대표적 수혜 업종으로 꼽혔고 업계에서도 크게 환영했다. 하지만 당시 대표적인 수혜 기업, 성공 사례로 꼽혔던 중소기업들 가운데 '한미FTA 효과'를 제대로 체감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의류수출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언제 수혜 기업이라고 한 적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대부분 수출업체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긴 현실은 외면한 채 단순히 관세율 인하 효과만 가지만 수혜 업종을 따진 건 아닌지 정부와 재계 스스로 돌아볼 대목이다.


태그:#한미FTA, #의류산업, #봉제공장,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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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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