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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원인 -'부패' '낙후' '내전'

중국 길림성 성도인 장춘 역에서 가까운 위황궁(僞皇宮) 진열관에 가보면 장개석 국민당 정부와 동북 군벌정부가 망한 이유를 요약해 놓았다. '부패(腐敗)' '낙후(落後)' '내전(內戰)'이 세 단어가 국치를 당한 근본 이유라고 밝히고는, '물망국치(勿忘國恥)'를 돌에 새겨 놓고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자고 역설하고 있었다.

중국에는 거기뿐 아니라 역사의 현장 곳곳마다 '물망국치(勿忘國恥)' '전사불망후사지사(前事不忘後事之師, 지난 일을 잊지 말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자)'라는 말을 돌에 새겨 인민들에게 교육시키고 있었다. 어디 장개석 국민당 정부와 동북 군벌정부만이 그러했겠는가. 조선 왕조도 '부패(腐敗)' '낙후(落後)' '내전(內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

'부패(腐敗)'가 망국의 원인이라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다 잘 안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청나라가 망하고, 장개석 국민당 정권이 망하고, 조선이 망한 가장 큰 까닭이 '부패'라는 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학자나 지식인, 언론인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 '부패'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나는 아니다' '내 가족은 아니다' '우리 집단은 아니다'라는 데 근본 이유가 있다.

부패한 정치인들의 비리가 터지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놈들은 그래"라고 혀를 차며 매도를 하면서도 선거 때면 "다 그런 거지 뭐"하고 새 인물로 바꾸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고위직 공무원이 투신자살을 하거나 쇠고랑을 더 차야 우리나라에 부정부패가 사라질지 모르겠다. 백성들 모두가 몸속에 암세포처럼 번져 있는 부정부패의 세균을 몰아내지 않는 한, 아무리 정부가, 언론이, 검찰이 부정부패를 뿌리 뽑으려고 해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런데 통탄할 일은 이런 부정부패를 주도한 사람이 먼저 승진도 하거나 고위직에 오른다는 사실에 오늘 대한민국의 비극이 있다. 백성들 가운데는 이런 일을 주도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이들을 부러워하고 박수치기 때문이다. 부정부패가 망국의 지름길인 줄도 까마득히 모른 채.

남산에 있는 조선신궁에 참배하는 조선학생들
▲ 조선신궁 참배 남산에 있는 조선신궁에 참배하는 조선학생들
ⓒ 눈빛출판사(한일병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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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변화를 두려워한 조선왕조

'낙후(落後)', 조선조 500년 동안 백성은 거의 변화가 없는 낙후된 삶이었다. 조선 500년 동안 가장 기본인 의식주 어느 하나 획기적인 변화나 발전이 없었다. 대부분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누추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늘만 쳐다보는 농사는 해마다 가뭄과 홍수의 되풀이로 봄이면 대부분 백성들은 양식이 떨어졌다.

거기다가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백성들은 괴나리봇짐을 싸서 남부여대로 국경 넘어 만주로 연해주로, 하와이나 멕시코 등, 사탕수수밭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서양은 산업혁명으로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조선은 일부 지배계층만 가마나 말을 탔을 뿐, 백성들은 아무리 먼 길이라도 걸어서 다녔다.

일반 백성들은 500년 내내 괭이나 삽으로 땅을 팠고, 등짐을 지거나 머리에 인 채 짐을 날랐다. 양반 계층들이 일하는 것을 업신여기는 노동 천시사상은 노동인구의 부족으로 생산의 저하를 가져와 낙후한 생활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허례허식과 공리공론에 집착한 결과 백성들 삶의 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런 양반사회가 500년을 이어왔으니 뼈 빠지게 일한 계층은 일부 상민이나 천민에 불과했다. 같은 시대 서구와 비교하면 단순노동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여성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갖은 인권이 침해된 사회였고, 사회진출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여성의 창의와 능력은 그대로 빛을 보지 못한 암흑의 사회였다. 이런 봉건사회에서는 백성들의 생활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조선조 500년간 '낙후'의 원인은 개혁과 변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집권층은 기득권을 잃을 양 변화와 개혁을 철저히 막았다. 이런 수구 보수 세력으로 말미암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낙후'를 면치 못하다가 결국 망국을 맞았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생활면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낙후를 벗어났으나 아직도 사회구조나 백성들의 의식에서는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빈부의 극대화, 약자에 대한 배려,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 등 앞으로도 개혁해야 할 점이 매우 많다.

'내전(內戰)'은 나라 안 동족끼리의 싸움으로 내란, 민란도 포함될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집안도 나라도 멸망 원인에는 골육상쟁의 내전이 빠지지 않았다. 중화사상(中華思想, 중국을 세계문명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사상)에 빠져 소중화(小中華)에 자족하면서 서구의 합리적 사상이나 과학을 무시하거나 깔보면서 집권층은 내부 개혁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진주민란이 일어났고, 이어 삼남뿐 아니라 경기 황해도 함경도에 이르기까지 소요가 일어났다. 이들 민란의 원인은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지역 차별, 과거제도의 문란에 따른 매관매직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분출된 결과였다.

이런 민란에도 지배계층은 자성치 않고 내부 개혁을 소홀히 하다가 마침내 갑오 동학농민전쟁을 맞았다. 관군이 동학군을 진압치 못하자 조정에서 외국군대를 끌어들인 결과 결국에는 나라가 망하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지역 간 계층 간 갈등의 틈이 깊다. 38선(휴전선)은 한반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뉴욕에도 파리에도 베이징, 도쿄에도 있다. 미국의 한 주, 중국의 한 성보다도 더 적은 나라 안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지역감정이 살아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지고, 부유층과 빈곤층 등, 사회 구성원들이 갈기갈기 나눠져, 또 다른 내홍(內訌, 내부 분쟁)을 겪고 있다.

광복절보다 더 기념해야 할 국치일

오랫동안 일본인과 접촉한 일본 전문가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든지, 예의가 바르다든지, 근검절약한다든지 장점도 많지만, 반면에 일본인들은 철저한 이중성으로 강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고, 약자에게는 무자비하고 매우 오만하다고 한다. 그들은'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라는 게 있어서 겉보기로는 매우 친절하고 평화를 사랑한 듯 보이지만, 속내는 그와는 전혀 다르게 매우 전투적이며 잔인하다고 한다. 특히 그들의 친절성에는 깜빡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독립선언서를 쓴 육당 최남선도, 독립신문을 만든 춘원 이광수도 그들의 회유에 변절했겠는가.

'한일병탄'에 찬성한 친일 고관부인들이 일제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미스코시 백화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매국 고관 부인들의 일본나들이 '한일병탄'에 찬성한 친일 고관부인들이 일제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미스코시 백화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눈빛출판사(한일병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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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병탄을 전후해서 일제는 한국의 고관부인들을 일본에 유람시키면서 선물공세를 쏟았는데 거기에 넘어가지 않은 부인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마도 그들이 뿌린 은사금에 대신들도 왕족들도 대부분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기개가 시들어버렸을 것이다.

국치 100년을 맞은 이즈음 이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할까? 내 생각은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기에 계속 진심어린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을 증오하기보다 앞으로는 일본의 실체를 바로 아는데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만연된 부패를 뿌리 뽑고, 낙후된 부분을 일대 개혁하고, 찢어진 국토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나라 발전에 힘쓴다면, 곧 우리 국력이 그들을 추월하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이 일본에 가장 바람직한 선의의 복수 길이며,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국치 100주년에 즈음하여 나라와 정부, 그리고 온 겨레에게 제의한다. 100년 전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國恥日)'인 8월 29일을 8월 15일 '광복절' 못지않은 기념일로 정하여, 이날 하루만이라도 백성들이 나라가 왜 망했는지 깊이 되돌아보는 날이 되게 하라.   

서대문감옥에서 출옥한 독립지사들이 해방의 기쁨에 만세를 부르고 있다(1945. 8.16).
▲ 해방 후 감옥에서 나온 독립지사들의 만세 서대문감옥에서 출옥한 독립지사들이 해방의 기쁨에 만세를 부르고 있다(1945. 8.16).
ⓒ 눈빛출판사(한일병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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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치일,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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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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