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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더워지고 있다. 내리는 비도 그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 추리소설을 읽는 것만큼 호사로운 일이 또 있을까? 때마침 굵직한 추리소설들이 소개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스릴러 작가 마이클 코넬리와 일본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들이 번역된 것이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건만, 두 권 모두 추리소설 애호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시인>, <블러드 워커> 등으로 조금씩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유골의 도시>는 산 속에 묻혀 있던 소년의 유골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발견된 유골이었다. 그것이 아이의 것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군다나 유골을 살펴본 결과 아이가 생전에 수많은 학대를 받았으며 또한 살해당한 것이 농후하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마이클 코넬리가 만든 매력적인 형사이자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해리 보슈의 감정은 분노였다. 그는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소년이 살해당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이었다. 그런 사건은 사실상 미결로 해결될 것이 뻔했다. 경찰 내의 분위기도 그랬다. 다들 적당하게 덮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 보슈는 범인을 쫓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사건을 추적한다. 그 결과, 소년이 묻힌 산 근처에서 유력한 용의자를 발견한다.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전과가 있는 남자였다.

 

해리 보슈의 추격 앞에서 남자는 어떻게 했을까? 해리 보슈는 남자를 신문하면서도 언론에는 그 정보를 알리지 않으려 하지만 언론은 억척스럽게 그들의 관계를 추적해 대서특필한다. 그 결과 용의자는 3장의 유언장을 남겨놓은 채 자살한다. 경찰과 언론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죽은 것이다.
 
그러자 경찰 고위직은 자살한 용의자가 범인이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려고 한다. 경찰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경찰로써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리 보슈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 범인을 잡는 것도 어려운데 그와 같은 '정치'적인 일들이 그를 막아서고 그는 번번이 방해를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추적한다. 그리하여 조금씩 숨겨진 진실을 밝히게 되는데, 그것은 제법 충격적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진 아동 학대와 죄책감에 관한, 추잡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담긴 비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비열'한 것들을 마이클 코넬리는 날카롭게 그려낸다. 또한 해리 보슈로 대표되는, 이상을 추구하려는 경찰의 고독한 모습도 생생하게 담아낸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어느 때보다 인간적인 정이 묻어난다.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한 미국식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때보다 반가워할 소설인 셈이다.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 또한 일본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 환영받을 소설이다. 일본 추리소설만의 매력이라면 '사회파'적인 것이다. '추리'를 담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인 문제들을 담아내 인간 심리의 어두운 심연을 파고드는 것이 매력인데 <우행록>에서는 그런 모습이 자주 보인다.

 

<우행록>은 도쿄의 고급 주택가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르포 형식의 소설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남편과 곱게 자란 엘리트 아내, 귀여운 아이들이 한꺼번에 살해당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경악한다. 그들은 주변의 부러움을 살지언정 누군가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범인은 누구일까?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시간은 흐른다. <우행록>이 다시 사건을 찾은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다. <우행록>의 주인공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시작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 예컨대 이웃이나 대학 동창, 회사 동료들은 무슨 말을 할까? 그들의 입은 살인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살해당한 사람들에 관한 '평'을 할 뿐인데, 그것들이 소름을 돋게 만든다. 왜 그런가.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행록>은 누쿠이 도쿠로를 알린 <통곡>에 비하면 추리적인 면에서는 그 완성도가 약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 강렬함은 이전 작품보다 더하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낄낄거리며 마음대로 '재구성'하는 그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렸기에, 또한 그것에서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얼굴을 느끼도록 만들었기에 그런 것일 게다.

 

<유골의 도시>나 <우행록> 모두 그만의 매력이 충분하다. 여름이 보이는 지금, 본격적으로 추리소설들이 빛을 발하기 전에, 호사를 누리는 워밍업으로 삼기에 그 무게감이 충분해 보인다.


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10)


태그:#추리소설, #마이클 코넬리, #누쿠이 도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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