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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식 수술장,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곳.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터보다 더 잔인한 곳이다. 서경석 교수의 간이식 편이 방송된 건 <명의>가 시작되고 18개월 후였다. 80여 회의 방송이 나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암 수술과 치료과정을 지켜봤지만 이토록 지독한 결말을 보진 못했다. 한 달간의 촬영을 마치고 방송이 나간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몸이 정말로 힘들어서 한동안 회복기를 가져야만 했다. 모두가 헤피엔딩이었지만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은 무엇보다 강하고 치명적이었다. - <명의 2:심장에 남는 사람> 중에서

<명의 2: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심장에 남는 사람>
ⓒ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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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2:심장에 남는 사람>의 저자는 EBS <명의> 제작팀이다. 2007년 3월 1일부터(금요일 21시 50분) 방송되고 있는 메디컬 다큐멘터리 <명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1권은 2008년에 출간됐다.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명의는 간이식 전문의 서경석 교수 외 16명. 전국 1543명의 현직 전문의들이 추천한 각 분야 최고의 베스트 닥터들이다.

이야기는 모두 17편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간이식, 두 번째 生을 주다'란 제목의 글로, 간성혼수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를 위해 간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26살 아들과 어떤 선택이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인 간의 무게는 대략 1.2킬로그램이다. 문맥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했다 다시 공급하고, 우리 몸에 들어 온 독성분을 배출한다. 그리고 병균들을 잡아먹어 우리 몸의 건강을 유지해준다. 그런데 간이 이런 제 기능을 잃게 되면 여러 독성들이 쌓이고, 여러 가지 합병증을 거쳐 간성혼수에 이르러 결국 사망하게 된다.

간을 '침묵의 장기'라 부르는 까닭은, 90% 이상이 망가질 때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황달이나 출혈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간의 이런 특성 때문에 간암의 최종치료는 간이식이랄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혈액형이 맞아야 한다. 수혜자는 자신 몸무게의 1%는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공여자는 전체 간 중 30% 이상을 남겨야 한다.

'간성뇌종'으로도 불리는 간성혼수는 가벼운 정신착란, 수면장애부터 혼수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들로부터 간을 이식받을 모씨(책 속의)도 며칠 전 아들과 아내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그리하여 아들은 자신의 간을 이식하고 싶은 어머니를 제치고 서둘러 검사를 받았고 이식수술 직전에 놓기에 된 것이다.

간성혼수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방법은 다름 아닌 간이식, 아들이나 동생 혹은 형의 간을 이식 받아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선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두렵고 힘든 결정일지 모른다. 자신이 살기 위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받아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간이기 때문이다. 신장처럼 두 개의 장기 중 하나를 나누는 이식수술은 안타깝기보단 고마웠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하지만 우리 신체에서 간이 갖는 무게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일까? 그만큼 간이식 수술장은 충격이었다. - 책 속에서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이미 잃었기 때문에 남은 아들을 수술대 위에 눕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은 더욱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 정신적 무게가 얼마나 크면 바라보는 제작진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곳이라고 표현했을까.

이어서 간경화인 형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어느 아우의 이야기와 60대 중반의 간성혼수 환자의 3차에 걸친 어렵고 기적적인 간이식 수술사례가 소개된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 틈틈이 간이식 분야 명의 서경석 교수의 이야기들이 소개 된다.

서경석 교수는 1988년에 처음 간이식 수술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뇌사자 1명의 간을 세 살배기 아이와 33세의 남성 환자에게 나눠 이식하는 분할 간이식을, 2001년에는 생후 29개월 된 아기의 간에 아버지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보조 간이식을 성공했다. 국내 최초다.

이 책의 저자인 EBS <명의>팀이 촬영을 시작하기 두 달 전인 2008년 6월에는 생후 60일이 된 여자아이에게 아빠의 간 일부를 이식, 같은 해 8월엔 심장사한 40대의 간을 간성혼수를 겪고 있는 60대 환자에게 이식했다. 이 또한 국내 최초의 성공적인 수술이다.

서경석 교수의 간이식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78%, 2003년 이후 최근 5년간 수술한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4.6%이고 간암이 없는 간경변증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8.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가 지난 10년간 수술한 간이식은 약 700여 건. 이식이라는 치료를 통해 그가 살린 사람들의 숫자이며 다른 간암 환자들에겐 희망의 숫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간이식'은 많은 사람들이 꺼리는 편견의 대상이며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는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 지난 2008년 12월 히말라야의 아일랜드 피크를 올랐다. 그의 곁엔 간이식을 받은 환자 7명과 공여자 3명이 함께했다. - 책 속에서

책을 통해 알아가는 '명의'와 '질병'
▲따뜻한 그의 손을 잡다(소화기내과 김효종)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간담췌외과 김선회) ▲심장, 박자를 찾다!(심장내과 김영훈) ▲턱이 아파 슬픈 자들이여, 내게로 오라(턱관절 김형곤)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산부인과 남주현) ▲기적을 만드는 손(정형외과 백구현) ▲웃어요, 웃어봐요(소아성형외과 김석화) ▲디스크를 고치고 다함께 디스코를(신경외과 윤도흠)

▲돌체 마 푸오코소(흉부외과 성숙환) ▲이 길이 나의 길이다(대장외과 전문의 김선한)▲임신, 34주를 사수하라!(산부인과 이근영)▲뇌 속 희망의 오아시스를 찾아서…(정위신경과 장진우)

▲400cc 배뇨, 머물지 말고 흘러라(비뇨기과 박영요) ▲눈(眼), 중심을 찾다(안과 조윤애)▲탈모와의 전쟁을 선포하다(모발이식 센터 김정철) ▲세상을 보여줄게(소아청소년과 박원순)

종종 의학드라마와 의학 프로그램들이 방송된다. EBS 다큐멘터리 <명의>도 그중 하나. 환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나 의료기술 등에 대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질병을 눈앞에 두고 밤잠 자지 못하며 고민하고, 새로운 치료법과 수술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의 진지한 표정과 환자에 대한 소명에 주목한다.

<명의 2: 심장에 남는 사람>은 이런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라 진솔하고 유용하다.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병들을 치료하는 그 현장 이야기를 질병 치료자인 의사를 중심으로 풀어 나가되 질병에 관한 것들을 일반인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의학 용어마다 주(설명)를 쪽지 형태로 별도로 달았고, 이야기 끝마다 관련 '의학정보'를 덧붙였기 때문이다. 이 '의학정보'들은 이야기와 관련된 질병의 대표적인 증세와 수술장면 사진을 곁들여 간략하고 명확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이해가 쉬운 것 같다.

촬영 팀 모두가 제작 기간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사실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의 무게였다. 아들과 남편을 동시에 수술장으로 들여보내는 엄마, 형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남편을 보는 아내, 시아버지에게 이식하는 딸을 보는 친정엄마… 환자들의 무게 위에 더해진 그 가족들의 무게였던 것이다. 내 가장 가까운 이가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난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할 수도, 멀쩡한 배를 열어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할 수만도 없는 가혹한 운명, 그 불편한 현실에서 오는 무거움이었고 답답함이었고 안쓰러움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간이 아닐 수는 없을까? 그렇게 빚을 지고 살지 않아도 되는 길은 없을까? - 책 속에서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부분들과 자주 만나곤 한다. 어찌 해줄 수 없어 그저 바라보고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의 막막한 심정이랄까. 가슴 뭉클한 휴먼다큐를 보며 그 안타까움에 감동마저 죄스러운 그런 마음 때문에 쉽게 넘겨 읽지 못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읽는 내내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 붉어지게 하는 우리 사회 가장 가치 있는 삶의 현장 그 기록의 주인공들' 정도로 표현하면 마땅할까. 좋은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 이 순간에도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둔 가족에게도 큰 힘이 될 법한 그런 책이라고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명의 2 :심장에 남는 사람|EBS 명의 제작팀 (엮은이)| 달 | 2010-02-05 | 13,000



명의 세트 - 전2권 (별책부록 : ) - 심장에 남는 사람

EBS 명의 제작팀 엮음, 달(2010)


태그:#명의(의사), #불치병, #병원(환자), #다큐멘터리, #간이식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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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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