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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날 2

 

 미야자키 역에 도착합니다. 기차여행으로 역들을 옮겨 다니면서 추가로 주어지는 재미있는 보너스는요? 각기 개성이 다른 기차역 건물을 감상하는 거였어요. 미야자키역도 독특한 자태였어요. 현대식 건축양식으로 실용성뿐 아니라 건물 자체에서도 멋을 느끼게 하네요.

 

봄이 오면 아마도 한 낮 남국의 뜨거운 태양이 이 역사의 은빛 구조물에 반사될 테고 그럼 꽤나 장관일 거 같네요. 하지만 뭣보다 이 역사의 풍광을 더욱 살려주는 건 역 앞  넓은 광장과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키 큰 피닉스 야자나무들입니다. 사람들이 잠시만이라도 저 야자나무에 시선을 두기만 해도 나무를 타고 순식간에 저 파란 하늘에 닿을 수 있을 텐데요. 정말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네요.

 

  아오시마 행 4시 43분 기차를 타야겠습니다. 잠시 뭘 좀 먹어볼까요.  우동집에 들어갑니다. 자판기의 천국 일본이라더니, 식당에서도 자판기시스템을 이용합니다. 자판기에 돈을 넣어 선택한 후 식권을 보여주나봐요. 기본이 190엔, 그리고 한 가지씩 뭔가 첨가될 때마다 가격이 올라가는 것 같은데 일본어를 통 알 수가 없네요. 잠시 서서 지켜보기로 했지요. 한 아가씨가 320엔 버튼을 누룹니다.

 

 '무엇이 들어있나?'

 

 단무지 세 조각, 새우 튀김 1마리 따로 나오고, 우동 그릇에 어묵 세 덩어리, 마지막으로 생 달걀을 탁 깨뜨려 위에 얹어주시네요.

 

 '그럼, 기본일 경우는?'

 

 기본을 눌러봤어요. 저런! 아무것도 없네요. 단무지도 없고. 고춧가루만 실컷 쳐 먹어야겠네요.ㅋㅋ 몇 젓가락 떠 먹는데, 옆자리의 그 아가씨의 것과 비교되지 뭐예요. 달랑 외로운 우동 한 그릇. 슬그머니 일어나 제 우동 그릇을 들이대며 주방아주머니께 아가씨 우동 그릇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이거, 이거, 이거...응?" 하면서요. 아주머니께선 빙그레 웃으시며 뭐라 하시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튼, 중요한 건 제 우동에도 어묵과 달걀, 단무지 새우 튀김이 나왔다는 거겠지요? 옆자리 아가씨가 씨익 웃네요. 우리는 마주보고 웃습니다.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우동면발도 웃고 있는 거 같네요. 맛있는 식사였어요.

 

 아오시마행 열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가는 거지요. 아오시마섬을 둘러본 후 미야자키로 돌아와 야간열차로 하카타역으로 돌아오면 부산행 코비호가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그럼....

 

 그런데 아오시마섬은 얼마나 작기에 한 바퀴 도는데 30분일까요? 여름철에는 큐슈남부 해안은 다양한 해양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로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지금 같은 겨울철은 긴 휴식 같겠죠?

 

 아오시마역은 '작은 간이역'같네요. 주변도 작은 동네고요. 그런데 역 안으로 들어서니 철도원이 없어요. 무인 기차역이라는 안내판이 있었어요. 돌보는 사람이 없으니 역은 정말 쓸쓸하고 황량했어요. 작은 대합실엔 담배 피우는 할머니 한 분만 덩그러니 앉아계셨습니다.

 

  작은 인공 개울물이 나타납니다. 크크크... 어디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낮게 비행하더니 개울물위로 내려앉더군요. 목을 축이고 있나봐요. 그러고 보니 저도 목을 축이고 싶어지는 거있죠. 자판기에서 콜라를 한 병 뽑아 마십니다. 목구멍까지 긁어내리는 시원한 맛!

 

 일단은 숙소를 정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역 근처에 숙박할 만한 곳을 두어군데 들어가 봤지만 아예 문을 닫아버려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어요. 역시 비수기 탓이겠지요. 마을 쪽으로 걷다가 한 젊은 여자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오시마 유스호스텔을 찾고 있어요."

 

 지도가 나와 있는 책자를 보여드렸습니다. 이 분은 설명하기에 난감하셨는지, "조또마떼네!" 하시면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잠시 후 차키를 들고 나오시는 거예요. 자신의 차로 직접 데려가 주신다는 거예요. 저런! 놀랍지 않으세요? 전 놀라 자빠지겠더라구요.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분이 아사미 상으로 한국에는 여러 번 여행한 적이 있고, 한국을 매우 좋아하신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역시나 유스호스텔은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근처에 호텔이 있는데 그리로 가시겠어요?"

 "고맙지만... 아니예요. 전 가난한 배낭족이거든요."

 "하하... 그런데 정말 짐이 그게 전부예요?"

 "네... 카메라도 두고 왔는걸요."

 "하하... 눈에 잔뜩 넣어 가셔야겠네요?"

 "네... 하하하."

 

  아사미상이 다시 안내해준 곳은 호텔 옆 자그마한 료관이었어요.  아저씨 한분이 나오시더니 영업하지 않는다 하시네요. 실망한 저는 난감해졌습니다. 이곳 아오시마에서 머물 곳은 저 커다란 호텔뿐인가 하고요.

 

"어쩌죠? 참, 잠시 만요. 유후인에서 머물던 곳의 아가씨가 적어준 곳이 있었어요. 고모가 운영하신다고 했어요. 호텔 옆이라고 했는데...." 하며 쪽지를 꺼내어 아사미상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어머! 이곳이 바로 저 곳이에요. 지금 다녀오신 저 곳 知福旅館 이예요. 조또마떼네..."

 

잠시 후, "들어오시래요! 어서요!"

 

"그래요? 저런...덕수장에 있었어요? 토모코는 잘 있구요? 아버님은요? 잘 계시죠?"

 

 갑자기 제가 한 집안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부를 전해주는 전령사가 되었지 뭐예요. 그리고, 참으로 인연이란 알 수 없는 거란 생각이 다시 듭니다. 정말 스쳐 지나는 인연인줄 알았는데요. 모든 것이 인연 아닌 것이 없는거 같아요. 

 

 저와 아사미상과 토모코상 고모는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고모님께서, "쪼도마떼네...!" 하시더니, 녹차 한 포와 작은 보온병에 뜨건 물과 등이나 발에 붙이면 몸이 뜨뜻해지는 거(?)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리곤 3층 구석방으로 안내받고 들어서자 역시 다다미방인데 따뜻한 방 기운! 더욱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아마 이야기하는 사이에 고모부께서 제 방에 미리 온풍기를 켜 놓으셨나 봅니다. 옷 정리도 하지 않고 벌러덩 눕자마자 잠깐 잠에 빠져 들었어요. 눈을 떴을 때는 밤 2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도 들리는 거 같았어요. 창문을 열어보았지만 사방이 어둡기만 할뿐 바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파도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어요. 다시 누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기차역에서 나와서 작은 인공개울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 육교를 건너 상점가 사이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바다와 섬이 보이는 장면!'

 

 '그럼, 바다와 섬은 이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텐데...'

 

  잠시 여관을 빠져나와 한동안 걸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분명히 들렸습니다. 파도 소리가요. 그리고 그 바다의 출렁이는 소리를 따라 갔습니다. 바다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바다는 아주 오래 그곳에 그대로 있었을 겁니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바다가 보입니다. 큐슈의 북쪽 바다에서 시작해서 이곳 남쪽 바다까지 기차로 때로는... 걸어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눈 앞의 저 어둔 하늘위에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거쳐온 역들이 별이 되어 하늘 위에 찍혀있는 거 같더군요. 하카타항에서 구마모토역을 지나 아소역, 벱부역, 유후인역을 거쳐 미야자키역, 그리고 아오시마역까지. 이들 역은 별처럼 제게 이정표가 되어준 거지요.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창문을 바라보니 날은 벌써 환히 밝았지만 창가에 붉은 빛이 조금 남아있었어요.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거리이름 역시 일향로(日向路)더군요. 해바라기 마을. 

 

  아오시마섬으로 가는 길입니다. 해안가 회색빛 모래는 밀가루 같이 곱디 고았어요. 육지에서 섬까지 다리가 이어져있어 그 위를 걷기만 해도 섬에 쉽게 도착합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오히려 아쉬울 지경입니다.

 

 일본인들이 제법 많은데, 아오시마의 신사를 찾아가는 길이라 해요. 이곳 신사는 꽤 유명한가 봅니다. 그렇군요. 섬에 닿자마자 커다란 신사가 바로 나오네요. 이 작은 섬에 이렇게 규모가 큰 신사가 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였어요. 신사를 위해 섬이 있었던 거 같잖아요. ㅋ.

 

 신사 안 매장에는 장수나 교통안전, 학업, 애정, 안전운항을 비는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군요. 일본인들에게 신사가 어떤 존재인지 직방으로 말해주는 거 같네요. 저기 신주를 모신 사당 앞에 일본인 부부가 동전을 나무통(복전함)안에 던지곤 절을 한 후 매우 특이하게도 박수를 두 번 칩니다. 일본전통 복장을 한 기념품 가게 아가씨에게 물었어요.

 

 "왜 박수를 치죠? 왜 두 번 치나요? 무슨 뜻이 있나요?"

 "글쎄...잘.... 모르겠는데요."

 

 수줍어하며 답합니다. 이 아가씨에겐 그냥 예사로운 습관인가봐요. 제 눈엔 대빵 특이하게 보이는데 말이죠. 문화란 그래서 늘 참 재밌어요. 

 

    신사를 빠져나오니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아오시마섬이 자연의 모습으로 오롯이 펼쳐집니다. 섬 안쪽으로 완벽한 '비로우 성목' 숲이군요.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게 생겼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4300그루가 심어져있고 수령은 300년 된 것도 있다고해요. 아! 저것이 전 세계적으로 아오시마섬과 니치난 해안에만 있다는 '도깨비 빨래판' 이로군요. 정말 특이한 해안지형이네요. 하하하.

 

  섬 주위를 천천히 걷습니다. 저는 적당히 한 곳에 자리하곤  책상다리하고 앉았습니다. 가까이 도깨비 빨래판과 그 너머 파도 치는 바다를 동시에 굽어보고 있습니다. 역시 조용하기 그지없습니다. 신기해요. 이렇게 조용하다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정말 시간이 정지된 거 같더라구요. 너무나 조용하니까요.... 아니, 사실은 조용하지는 않았지요. 멀리 파도소리와 귀가에 바람소리가 들렸으니까요. 하지만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는 저 끝없이 넓은 바다와 하늘에 속해 있으니, 이상하게도 허공에 조용히 묻혀 있는 거 같았습니다. 정말 고요하기만 합니다. 너무나 고요한데 제 주위에 꽉 찬 고요함이 어떤 힘을 갖고 저를 이곳에 붙잡아두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꼼짝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할아버지 한 분이 긴 고무장화를 신고 들통과 낚시대를 들고 불쑥 나타나셨습니다. 익숙한 걸음으로 도깨비 빨래판을 가로질러 바다를 향해 걸으십니다.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벌떡 일어나 할아버지를 따라가 보기로 했어요.

 

  할아버지의 안정된 걸음은 생각보다 빠르시더군요. 부지런히 쫓아가다가 빨래판위에서 기웃뚱 그만 미끌어지면서 "엄마야!" 엉덩방아를 찢고 말았습니다. 빨래판 위에 물이 고이고 이끼가 끼어서 미끌미끌했던 거예요. 그 통에 할아버지께서 뒤를 돌아보셨는데....무덤덤하게 돌아선 다시 가던 길을 가십니다.

 

약간 심통이 난 저는 양말과 신발을 벗어버리고 본격적으로 첨벙첨벙 할아버지를 쫓아갔습니다. 좀 깊은 곳은 허벅지까지 물이 들어오더군요. 이젠 이판사판이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포기하고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소라, 조개껍질로  발바닥도 따꼼거립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무신경이십니다. 드디어 할아버지는 파도치는 경계까지 도착하셔선 낚시 채비를 하시네요. 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봅니다.

 

점점 바닷바람이 물에 젖은 옷 속으로 파고들어와 추위가 매섭게 느껴지기 시작했지요. 할아버지는 저를 흘끗 보시더니 배낭 속에서 보온병의 뜨거운 홍차를 제게 건네주시곤 다시 바다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십니다. 그리곤 할아버지의 동작도 영원히 멈추신 거 같았어요. 조금 안정을 되찾은 저도 할아버지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다가 좀 더 가까이 그곳에 있더군요. 파도소리도 훨씬 가까이... 이 지구별 생명의 근원 바다를 바라봅니다. 영원한 바다! 영원이란 이름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다시 시간이 정지 합니다. 파도와 바람처럼 할아버지도 이 바다에 속해버린 거 같습니다.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

 

  아오시마섬을 한 바퀴 돌고 육지로 나오니 아열대식물원이 있군요. 들어가 봅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뜻밖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넓은 정원에 야자나무가 파랗게 심어져 있는데 그 아래 노란 튤립과 하얀 튤립들이 개화하여 지천으로 피어있지 뭐예요. 풀들도 봄을 만나듯 파릇파릇하고요. 키 작은 노랑풀꽃들과 흰 풀꽃들도 사방에 왁자지껄 흐트러지게 피어있었어요.

 

겨울철이라지만 남국의 햇빛이 그 위를 쨍하니 비추니 튤립들이 너무 좋아 반짝반짝거립니다. 이곳 정원사는 자연이 봄맞이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던 아닐까요? 잠시나마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젖은 몸을 말렸답니다. 이제 아오시마를 떠날 준비가 되었나봅니다. 마지막으로 토모코상이 가르쳐준 일향하(日向夏)를 먹어봐야겠네요.

 

길가 토산품가게 앞. 가격표를 보니 한 개에 220엔. 일향하는 껍질은 레몬색이고요, 껍질을 벗겨보니 과육은 백옥같이 흽니다. 맛은 레몬+오렌지맛, 크기는 오렌지 크기. 맛있어요. 향이 달콤하면서도 묘한 톡쏘는 맛이 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조또마떼네..."하시더니(ㅋㅋ) 안으로 들어가셔서 과도를 들고 나오십니다. 제게서 일향하를 빼앗으시더니 껍질을 얇게 자르시고 과육을 덮고 있는 흰부분까지 먹는 거라 시늉을 하십니다. 아깝게도 제가 벗겨 버리는 걸 보시곤 안타까우셨나봐요. ㅋ. 먹어보니 밍밍한데 몸에 좋다는 말씀이신 거 같고요. 아무튼 일향하 이름도 멋지고 맛도 훌륭한 남도 과일입니다.

 

  아오시마역에 도착합니다. 무인 기차역이라 안내판을 보고 시간을 정해야하는데 통 헛갈립니다. 지나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요. 조용한 비수기라서 좋긴 한데요, 이럴 때만 좀 불편하네요.ㅋㅋ 아무튼 근처 '민숙 무료 안내소'란 곳으로 다짜고짜 들어갑니다. 문이 열렸을까? 싶었는데 쓱 열리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식사중'이셨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다시 문을 조용히 닫고 나오려는데, "조또마떼네..."하시며 할머니가 따라 나오십니다.

 

 "저, 미야자키 가는 기차시간을 알고 싶어서요...."

 

 "조또마떼네...."하시더니,

 

 "미야자키로 바로 가는 기차는 6시대에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아오시마역에서 南宮崎(남 미야자키)역까지 간 다음에 역 근처에서 버스로 가야할 거예요."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그리곤 역으로 돌아와 플랫폼 벤치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멀리서 그 할머니께서 앞치마 휘날리며... 제게 손을 흔드시며...뛰어오고 계시지 뭐에요.

 

'무슨 일일까?'

 

 "저기요. 남 미야자키에 가서 버스를 탈 필요가 없다는군요. 전화를 해봤더니, 그냥 그 역에서 미야자키가는 열차로 옮겨 타면 된데요. 여기 시간을 적어왔어요. 남미야자키에 도착하는 시간은 2시 12분이고, 2시 13분에 미야자키 가는 일풍선(日豊線) 열차가 있는데, 너무 촉박하니까 2시 36분차를 타세요. 오케이?"

 

"하이! 하이! 노무 노무 고맙습니다. 그걸 가르쳐 주실려구...이리 뛰어오신 거예요?" 

 

"하이! ^^" 하시면서 제 손에 사탕 다섯 개를 쥐어주십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답니다. 할머니를 꼭 껴안았어요. 오랫동안이요! 정말이지 할 말을 잃었어요! 이토록 철저한! 친절에 기가 막혀버렸답니다.

 

 이것이 일본의 속모습이 아닐까요? 일상의 삶 자체가 일본인들에게 참으로 진지한 삶의 현장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지나는 한 나그네에게 이만큼 대접한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까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할머니가 제게 건네준 열차시간표가 적혀있는 메모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머리에 머플러를 쓰시고 앞치마를 두르신 정갈하고 기품 있는 할머니.

 

  저기 할머니가 돌아서 다시 뛰어가시네요. 저는 그분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실한 만남을 가진 이 짧은 시간에 감사하며 행복감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순간 그분을 통해 엄청난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얻었음을 느낍니다. 그분도 저와 같으시리라 믿습니다.

 

 10분 후 전 열차에 오릅니다. 제 입안에서 달콤한 사탕물이 녹아나고 있었죠. 잠시 '여행 예찬'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여행은......우리에게 새롭고 경이로운 자연을 만나게 해줄 뿐 아니라, 길 위에서의 소중한 만남을 갖게 해줍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막혔던, 닫혔던 가슴을 다시 열게 해줍니다. 그리고 멀어있던 저의 눈을 다시 뜨게 합니다. 삶 자체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밤 10시가 되어갑니다. 이제 야간열차를 기다리는 일만 남겨 두고 있습니다. 잠시 마지막으로 역 주변을 걸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역사를 나와 야자나무 주위를 다시 한 번 맴돌아 봅니다. '너 참 잘도 컸구나!'  역 앞 도로 길 양쪽의 사람 다니는 길이 참으로 널찍해서 너무 좋네요...야홋! 날 듯, 춤 출 듯 그렇게 달려도 봅니다.

 

       '여행하는 자여! 그대는 자유로워라!'

덧붙이는 글 | 일본 큐슈로의 나홀로 기차여행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태그:#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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