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은 지난 17일 개봉한 태국산 공포영화다. 이 영화는 <디 아이>와 <셔터>를 만들었던 반종 피산다나쿤, 팍품 웡품(이름이 참 어렵다) 감독의 신작으로, 몸이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샴쌍둥이'라는 희귀한 소재와 태국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어우러진 영화는 나름의 묘한 느낌으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슬픔이 가득 담긴 영상,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게다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반전에 대한 궁금증, <샴>의 예고편을 봤을 때 나는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멋진 남자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샴>은 나의 '보고픈 영화 목록' 1순위를 차지했고 난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표를 예매했다. 훌륭한 소재,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에는 웃음이
 공포영화 <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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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게 웬걸! 관객석에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시쳇말로 '홀딱 깼다'. 영화 초반 주인공인 핌(마샤 왓타나파니크)과 위(위타야 와수크리파산)가 한국말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어설픈 발음에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핌과 위의 한국 친구로 등장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우스꽝스러웠고, 관객석 여기저기에서는 '킥킥' 소리가 들렸다. 영화에 대한 몰입은 깨졌지만, 어쨌든 영화는 공포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던 핌과 위에게 핌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핌과 위는 태국으로 향하고, 핌은 태국의 집에서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원래 샴쌍둥이로 태어났던 핌은 자매였던 플로이와 분리수술을 받은 후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었다. 죽은 플로이의 물건들은 핌에게 옛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겨주고, 핌은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와 더불어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플로이의 혼령에 핌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다. 그럼에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플로이의 혼령은 옷장에서, 욕실에서, 침실에서 튀어나와 핌을 떨게 만든다. 음습한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플로이 귀신에 나는 심장의 피가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속의 핌 역시 피 마르는 시간들을 보낸다. 위는 핌을 위로하고 도우려 애쓰지만, 그 역시 플로이의 혼령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기본기가 있는 영화, 그러나 기본 이상은 해내지 못하는 영화 <샴>은 기본기가 있는 영화다. 어디에서 터뜨려줘야 관객들이 기겁하는지 알고 있으며, 효과적인 공포 분위기 조성법도 꿰고 있다. 영상미도 뛰어나다. 핌과 위가 머무는 저택 앞 바다는 공포 영화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과거 회상장면은 아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기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영화 곳곳에 놓여있는 클리셰(진부한 장면)의 탓이 크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귀신의 등장 장면은 무섭지만 새롭지 않고, 비슷한 움직임을 되풀이하는 핌과 위는 지루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의 미덕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맴도는 현실의 공포가 아닌, 샴쌍둥이로 태어나 한 남자를 사랑했던 자매의 슬픔에 있다. 샴쌍둥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면, 샴쌍둥이들이 겪는 불편이나 아픔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관객들은 스크린 속 주인공이 인간적인 면모를 내보일 때 비로소 공감을 표하기 때문이다.
 공포영화 <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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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 이후 대다수의 공포영화들이 반전 강박증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이는데, 이 영화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그 반전이라는 것도 집중해서 극 전반부를 봤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영화가 현재 극장 상영 중이기에 자세히 말할 순 없다) 눈치가 보통만 되는 이라면, 지하철에서 핌이 앉은 자리라든가 회상장면에 등장하는 플로이의 표정에서 반전을 미리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반전 이후 영화는 '생뚱맞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핌의 정체(!)가 드러난 후부터 영화는 호러무비에서 싸이코 드라마로 바뀌어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그래도 아름다웠던 것은, 반전의 베일이 벗겨지기 전 핌이 보여줬던 인간적인 면모에 있었다. 그러나 반전으로 인해 핌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변신하고 사악한 핌의 모습은 과거 쌍둥이 자매의 우애까지도 어두운 색으로 칠해버린다. 이유 없이 나쁜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감독은 플로이의 내면 보기를 피함으로써, 영화의 체온을 급격히 하강시킨다. 샴쌍둥이 자매의 내면에 카메라를 댔다면... 변해버린 핌과 위의 격투신을 보며, 그 동안 그들이 나눴던 믿음의 시간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진심으로 의아했다. 자신의 욕심으로 주위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주인공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 설레었던 마음은 훨훨 사라지고 말았다. 잘 된 영화,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영화들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다룬 것들이다. 공포영화라고 해서 인간을 피해갈 수 없다.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유 없이 못된 주인공을 보며 나는 이 영화가 그저 그런 공포영화로 상영을 마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반전에 대한 집착을 놓고 핌과 플로이의 내면에 카메라를 들이댔으면 좋았을 것을.

공포영화 샴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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