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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 조고는 황제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했지만 조고의 위세에 순치된 관리들은 그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지록위마, 조고는 황제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했지만 조고의 위세에 순치된 관리들은 그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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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에 발표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습니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진시황이 남긴 유언(편지)과는 달리 큰아들 부소를 자살하게 하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우고 승상이 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그런 후, 신하들과 함께 있는 호해에게 사슴을 끌고 가 말이라고 합니다. 사슴과 말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는 호해가 주변에 있던 신하들에게 사슴인지 말인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사슴이라는 사실을 답하지 못합니다.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사실, 눈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할 만큼 조고의 권세는 대단했고, 황제 주변의 신하들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미 조고의 위세에 순치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고는 오래지 않아 호해마저 자살하게 하고 시황제의 동생 자영을 새로운 황제로 앉힙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였던 진나라 황제를 두 번씩이나 마음대로 바꿔치기 하던 조고였지만 시황이 된 자영(子嬰)이 시킨 환관 한담에 의해 사살되고 삼족이 멸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자영이 진나라 삼세 황제로 즉위했지만 신하들과 백관 모두가 자신을 따르지 않아 기강이 무너집니다. 결국 자영이 즉위한 지 석 달 만에 항우에게 항복하지만, 항우는 이를 받아주지 않고 자영의 목을 벱니다. 자영의 죽음으로 진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다보면 조고처럼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삼족을 멸하는 끔찍한 형벌이 가해지는 상황이 가끔 나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그 이상, 4족이나 5족까지 멸족을 당했다는 내용은 읽어보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5족을 멸족당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기> '혹리열전'에 나오는 왕온서는 5족을 멸족 당하였습니다. 왕온서는 역모를 꿈꾼 모사꾼도 아니고 체제를 부정한 반역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관리였을 뿐입니다. 그러함에도 왕온서는 삼족을 멸족당한 조고보다 훨씬 더한 심한 오족이 멸족(滅族) 당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원문 대역 <사기열전>

<사기 열전> 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사기 열전> 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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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1, 2, 3(지은이 사마천, 옮긴이 장세후, 펴낸곳 연암서가)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 중 70편으로 돼있는 <열전>을 원문(한자)과 번역문을 동시에 읽을 수 있도록 펴냈습니다.   

<사기>는 한나라 때 사람 사마천(B.C 145∼B.C 86년경으로 추정)이 약 3000년에 걸친 고대 중국의 '역사와 인간사'을 기록한 명저입니다.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등 총 130권, 52만6500자나 되는 방대한 기록입니다.

<사기>는 사마천이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를 받들어 궁형(남근을 거세당하는 형벌)이라는 형벌까지 극복해가며 완성한 효의 마무리이자 대를 이어 완성한 역사적 걸작입니다.

우리나라 조선 이전 역사는 '김부식(삼국사기)이나 일연(삼국유사)이 없었다면'을 가정하면 깜깜해지고, 고대 중국 역사는 '사마천(사기)이 없었다면'을 가정하면 암담해 질만큼 <사기>는 고대 중국역사를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위대하고도 방대한 역사서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처럼 일기를 쓰듯 연대순(날짜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編年體) 방식입니다. 또 다른 방식은 역사를 군주의 정치 관련 기사인 본기(本紀)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列傳), 통치제도·문물·경제·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志)와 연표(年表) 등으로 기록하는 기전체 방식입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가 기전체 방식으로는 처음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하니 <사기>는 불후의 역사서이기도 하지만 역사를 정리하는 기전체 방식을 개척해 낸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사기>는 인문학적 복합 역사서

<사기>는 단순히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가 아닙니다. 문학작품이고, 인문학이고, 정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직시하게 하는 반면교사이고,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처세술입니다.

<사기열전>은 3권 세트로 돼 있습니다. 1권에는 '1-백이 열전'부터 '25-여불위 열전까지', 2권에는 '26-자객 열전'부터 '50-흉노 열전'까지, 3권에는 '51-위 장군 ·표기 열전'부터 '70-태사공 자서'까지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5족을 멸족당한 왕온서 이야기는 62-혹리 열전(酷吏列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光祿徐自爲曰 悲夫 夫古有三族 而王溫舒罪至同時而五族乎
광록 서자위가 말하였다. "슬프도다, 대체로 예로부터 3족을 멸한 일은 있었지만 왕온서의 죄는 동시에 5족을 멸함에 이르렀도다!" - <사기열전> 3499쪽

왕온서는 도대체 무슨 엄청난 죄를 지었기에 5족을 멸족 당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은 앞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왕온서는 아첨을 잘하여 권세가 있는 자는 잘 섬겼고, 권세가 없는 자는 종처럼 여겼다. 권세가 있는 집은 간악함이 산과 같아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권세가 없는 자는 귀척이라도 반드시 능욕하였다. 법을 멋대로 적용하여 교묘하게 빈민의 교활함을 들추어내었고 이로써 호족들을 위협하였다.

그 중위로 다스림이 이와 같았다.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끝까지 다스렸는데 거의 모두 옥중에서 몸이 너덜너덜해졌으며 형이 확정되면 나오는 자가 없었다. 그의 심복 관리들은 호랑이에다 모자를 씌운 격이었다. 이에 중위의 관할에서 교활한 자들은 모두 몸을 숨겼고 권세 있는 자들은 명성을 높여주어 잘 다스린다고 칭찬하였다. 몇 년을 다스리는 동안 그 관리들은 거의가 권세를 내세워 치부하였다. -<사기열전> 3497쪽

백성의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관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자기보다 권력이 센 사람들에게는 아부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자신보다 권력이 약한 자들에겐 착취와 군림의 도구로 악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관직 상승 이사가 3족을 멸족 당한 까닭은

진시황 때 이사는 승상(천자를 보필하는 최고관직)이었습니다. 이사는 초나라 때 상채 사람으로 젊어서는 하위직 관리였습니다. 화장실에 있는 쥐와 창고에 있는 쥐가 달리 행동하는 것을 보고 다시 공부해 드디어 진시황제에게 선택받습니다.

이사는 추방 위기에 몰리기도 하지만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설득해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사는 글만 잘 쓴 게 아니라 말도 잘했습니다. 설득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할 수 있는 상승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상승의 말로는 삼족을 멸족당하는 불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영민하던 이사가 삼족을 멸족당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자식 문제로 약점이 잡혔을 때 정정당당히 법대로 처리하지 않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고와 어렴풋이 야합을 한 게 운신의 폭을 얽어매는 족쇄가 됐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권모술수에 능한 조고가 바로 환관, 문고리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고는 2세(호해)가 한가할 때는 별별 핑계를 대서라도 이사가 보고를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2세(호해)가 연회를 하면 이사에게 연락을 해 보고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모처럼 기분 좋게 연회를 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보고를 하지 않던 승상(이사)이 3번씩이나 보고를 한다고 나타나 연회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니 황제는 이사가 일부러 연회를 방해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조고는 환관이라는 직분을 십분 이용해 승상과 황제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불신을 조장해 자신의 처신에 방해가 되는 승상(이사)을 제거하고 자신이 승상으로 등극합니다. 하지만 조고 또한 결국에는 삼족을 멸족당하니 예나 지금이나 가려진 진실은 드러나고 잘못된 처신을 화를 부른다는 걸 알려줍니다.

원문과 함께 읽으면 새겨가는 의미 곱 돼
  
원문이 한자로 된 고전을 번역서로 읽어 그 내용을 아는 것도 충분히 유익하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는 속도가 좀 더디더라도 저자가 사용한 한자까지 곁들여 읽게 되면 책을 읽는 재미는 더해지고 새겨가는 의미는 곱이 됩니다.

<사기 열전>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사기 열전>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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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삼족을 멸한다'는 '삼족(부계, 모계, 처계)을 죽이는 것' 정도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자 멸(滅)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 멸이라고 하는 벌의 무게가 더더욱 실감납니다. 한자 멸(滅)자를 파자하면 한일(一), 물수(氵), 불화(火), 창모(戊)로 돼 있습니다.

여기서 한일(一)은 가문을 이어가는 양(陽씨, 앗)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멸(滅)은 가문의 씨앗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물로 수장하고, 불에 태워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는 싹트지 못하도록 처벌한다는 무시무시한 뜻이라고 합니다.

'열전'이란 여러 사람의 전기를 차례로 기록한 책을 말합니다. 열전 하나하나 마다 여러 명의 전기를 싣고 있으니 70편으로 된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은 수 백 명이 됩니다.

<사기> 중 열전, 수 백 명의 전기를 원문과 함께 수록하고 있는 <사기열전> 일독은 수 천년 전에 살던 수 백 명의 삶, 선현, 순리 또는 혹리로 살아간 수 백 명의 처신을 역사로 입증되고 있는 정의와 삶의 지혜로 새기게 되니 인문학적 소양을 반듯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양식 보약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사기 열전>1, 2, 3 / 지은이 사마천 / 옮긴이 장세후 / 펴낸곳 연암서가 / 2017년 2월 25일 값 각 35,000원



사기열전 1 - 원문대역

사마천 지음, 장세후 옮김, 연암서가(2017)


태그:#사기 열전, #장세후, #연암서가, #사마천, #지록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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