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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홍의 이파리 하나가 단풍에 들어 쉬고 있는 중이다. 가을 햇살이 그를 따스하게 감싸준다.
▲ 연산홍 이파리의 단풍 연산홍의 이파리 하나가 단풍에 들어 쉬고 있는 중이다. 가을 햇살이 그를 따스하게 감싸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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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습니다. 무더운 여름과 잇닿아 있던 가을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만으로도 좋지만, 가을이 제법 깊어지면 또다시 겨울과 잇닿아 있는 가을로 인해 쓸쓸해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겨울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들은 쓸쓸함과는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겠지요.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활엽의 나무는 앙상해지고, 숲길을 걷다보면 낙엽밟는 소리가 들려오고, 떨어진 지 오래된 낙엽은 점차로 고운 빛을 잃고 흙빛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인생무상'을 느끼게 됩니다. 그 무상함이란, 그저 허무함은 아닙니다. 인생무상이기에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값지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연산홍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아직은 푸른 이파리에 앉아 쉬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은 연산홍 이파리에 새겨진 잎맥들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살아온 길, 그렇게 갈래갈래 길로 이어져 생명을 이어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산수국 헛꽃에도 단풍이 들고 있다. 아주 특이한 보랏빛 단풍이다.
▲ 산수국의 헛꽃 산수국 헛꽃에도 단풍이 들고 있다. 아주 특이한 보랏빛 단풍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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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산수국은 얼마나 화사했는지 모릅니다. 토양에 따라 산성비율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에 따라 꽃빛깔도 달라집니다. 짙다 못해 파랑색부터 보랏빛과 연분홍빛에 이르기까지 화사한 빛을 자랑합니다. 아시는대로 수국은 참꽃과 헛꽃으로 치장하고 있습니다.

작은 참꽃은 옹기종기 모여 무수히 많은 꽃술을 내놓고, 헛꽃은 크로버를 닮은 제법 큰 꽃잎을 내놓고 곤충을 유인합니다. 참꽃이 피었다 진 후에도 헛꽃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다시금 수국에 새순이 올라올 무렵까지 헛꽃은 가지에 붙어있습니다.

저는 수국을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수국뿐 아니라 다른 꽃들도 좋아하지만, 수국 사진만 해도 적어도 백 장 이상은 될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국을 좋아하면서도 올 가을에서야 비로소 보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헛꽃의 단풍입니다. 보랏빛과 연분홍 빛으로 은은하게 단풍이 들어가고 있는 헛꽃을 보면서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듯 신기했습니다.

겨울을 보내고 나면 헛꽃도 이렇게 꽃맥만 남고, 봄이 되면 그 잎맥마져 사그라 들것이다.
▲ 산수국의 헛꽃 겨울을 보내고 나면 헛꽃도 이렇게 꽃맥만 남고, 봄이 되면 그 잎맥마져 사그라 들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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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단풍이 들고 잎맥만 남기고 하나 둘 사라지는 것입니다. 잎맥만 남은 헛꽃은 종종 겨우내 찬 바람과 더불어 앙상하게 말라버린 수국 줄기에 매달려있습니다. 신기하게도 헛꽃의 마지막 순간, 그 순간은 한창 피어 곤충을 유인할 때와 견주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의미나 상징으로 보면 오히려 더 많은 울림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고가는 것이 자연,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오고 가는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스스로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은 제법 행복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옹다옹하며 살아갈 필요도 없구요. 그저 흐르는 대로 편하게 살아가다보면, 삶도 자연스레 풀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 자연스러움, 그것이 21세기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살나무의 단풍과 열매
▲ 화살나무 화살나무의 단풍과 열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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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나무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열매들이 붉은 속살을 내놓습니다.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나면 붉은 열매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지금은 이파리의 화려함에 가려져 있지만, 때가 되면 홀로 붉은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비록, 그 시간이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기도 하지만, 그런 고통의 시간이 있은 뒤에야 하나의 화살나무가 될 수 있는 씨앗(개체)가 됩니다.

추운 겨울, 꽃눈처리를 하지 않으면 봄에 싹을 틔워도 제대로 된 나무로 자랄 수 없습니다. 꽃눈처리를 거치지 않은 씨앗들은 싹을 틔워도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니 열매도 부실하고, 다년생의 씨앗들은 처음으로 맞이하는 겨울에 얼어죽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니 자연에서는 고난 혹은 고통의 시간 조차도 자신을 위한 아주 소중한 시간인 것입니다.

사람도 고난의 때에 고난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라는 고난의 역사를 보낼 때 친일행각을 벌였던 이들이나 그 후손들의 역사인식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시대만 그렇겠습니까? 유신독재로 인해 기득권을 누린 이들은 5.16을 쿠데타라고 하고, 유신을 독재라고 하는 역사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왜곡된 역사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우리 민족이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 동참하지 않고 별세계에서 살았던 분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제철에 피어난 꽃은 아니지만, 바보꽃이지만 여전히 예쁘고 대견스럽다.
▲ 쇠별꽃 제철에 피어난 꽃은 아니지만, 바보꽃이지만 여전히 예쁘고 대견스럽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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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을 걷다가 바보꽃을 만납니다. 봄에 피어나는 쇠별꽃인데 이 아이들은 추운 것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이른 봄, 아직도 하얀 눈이 남아있을 때 부지런히 피어나는 꽃이기도 한데, 곧 서리가 내릴 터인데 화들짝 피었습니다.

제철에 피어나지 못한 꽃, 그래서 '바보꽃'이라고 불리는 꽃이지만 그들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바보는 아닙니다. 물론, 최선을 다한다고 모든 것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옳은 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때, 선한 것일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꽃이 귀한 시절 피어나 보는 이에게 기쁨을 주고, 신기하게도 짧은 시간이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씨앗을 맺고, 씨앗은 꽃눈처리를 마치고 봄이 오면 제대로 된 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보꽃 아래 맺힌 씨앗주머니를 통해서 봅니다. 저 정도면, 겨울이 오기 전에 충분히 익을 것입니다.

단풍구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정에 혹시라도 산수국을 만나신다면 천천히 헛꽃을 바라보십시오. 아주 신비한 빛깔의 단풍빛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그:#단풍, #산수국, #화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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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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