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느 조직이라도 내부 비판은 쉽지 않다. 특히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인사 보복 등이 우려되는 공직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내부 비판은 또 누워 침 뱉기가 되기 십상이라는 조직 논리 때문에 집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정의감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조직 내부의 전반적인 위기의식의 공유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이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감사원 6급 이하 직원들의 모임인 '실무자협의회'는 20일 내부 전산망에 올린 글에서 감사 대상인 행정안전부로부터 되레 감사 결과를 재조사 당해야 하는 치욕까지 겪고 있는 감사원의 처지를 두고 이들은 '어쩌다 감사원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라고 개탄했다.

 

국민의 칭송을 받을만한 감사를 해놓고, 그 결과 등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등 투명하지 못한 감사처리로 국민의 지탄을 한 몸에 받게 된 쌀 직불금 감사를 비롯해 현 정부 들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보로 감사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공기업'과 'KBS'에 대한 감사를 그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이들은 이러한 감사에 대해 '죽은 권력에는 강하고 산 권력에는 약한 감사원', '영혼없는 감사원'이라는 세간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 때마다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감사원의 핵심적 가치인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위태롭게 됐으며, 감사원이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며 감사원 간부들의 소신있는 태도와 인적 쇄신을 촉구했다.

 

'죽은 권력에는 강하고 산 권력에는 약한' 보수언론

 

그렇지 않아도 감사원의 감사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감사원 직원들의 이러한 내부 문제 제기는 당연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 감사원의 핵심적 가치인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평가야말로 국정감사 대상이 될 만한 충분한 사안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21일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비판'을 1면 머리기사 등으로 비중있게 보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신문들은 그렇지 않았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은폐 의혹에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던 신문들이지만, 정작 감사원 내부에서 터져 나온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지극히 인색했다.

 

가령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그래도 쌀 직불금 문제를 다룬 지면에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그래도 비중을 두어 전하기는 했다. 하지만, <중앙일보>나 <한국일보> 같은 경우에는 아예 기사 자체를 싣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감사원 직원들 스스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말하고 나섰는데도, 그것은 뉴스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일까.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쌀 직불금 파문은 물론이고, 그동안 사회적 논란이 됐던 공기업이나 KBS에 대한 감사에 대해서도 '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고 나섰는데도, 주목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것들이 뉴스가치가 있고, 중요한 기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무엇을 주목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라면 이들 신문은 내부비판을 제기한 감사원 직원들이 '6급 이하' 직원들이어서 별 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말하자면 감사원 간부들이 아닌, 일반 직원들의 목소리여서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은 것일까? 그런 엘리트주의의 발로일까?

 

하지만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비판'이 더 주목되는 것은 사실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감사원의 최근 행태에 책임이 무거운 간부들은 정작 책임회피에 급급하거나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6급 이하 감사원 직원들이 그나마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집단적인 대오각성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사실은 이 자체가 기사감이고,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신문이 이들의 자성의 목소리에, 집단적 각성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 일부 신문의 기사를 보면 의도적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려 한 듯한 경향도 읽힌다.

 

<동아> <조선>, KBS 감사 문제제기는 쏙 빼고 보도

 

가령 <동아일보> 기사는 기사 내용만 놓고 보면 '감사원 실무자협의회'의 목소리를 잘 요약해 소개했다. 하지만 편집은 어디까지나 '직불금 감사에 대한 자성의 글'로 한정했다. 제목부터가 '감사원 직원들 직불금 감사 자성의 글'로 돼 있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하물며 <조선일보>까지 '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감사원'에 초점을 맞춰 기사 제목을 뽑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사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동아일보> 중간 제목 역시 쌀 직불금 감사를 잘 해놓고도 '공개'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만 돼 있다. 기사 내용에 들어 있는 이명박 정부 이후 감사원의 공기업과 KBS 감사 행태 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기사 제목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기사가 실린 <동아일보> 지면은 '직불금 부당수령 파문'을 한 면에 걸쳐 다루면서 이번 파문의 배경과 그 원인을 '노무현 정부'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 기사의 제목 역시 기본적으로 이같은 '편집코드'에 맞춰 뽑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만하다.

 

반면 <조선일보> 기사는 새 정부 이후 권력 주문형 감사 행태에 대한 '실무자협의회'의 문제 제기를 소개하기는 했지만, 그 대표적 사례로 든 '공기업 감사'와 'KBS 감사' 가운데 'KBS 감사' 사례는 기사에서 뺐다. '사소한 생략'일 수 있겠다.

 

하지만 KBS 문제에 대해 <조선일보>가 보인 그동안의 보도태도와 논조에 비춰보자면 결코 '사소한 생략' 같지는 않다. 감사원 직원들까지 KBS에 대한 감사가 권력에 휘둘린 대표적인 '정치적 감사' 사례라고 보고 있다면, 그동안 그 정당성을 주장해왔던 <조선일보>로서는 낯 뜨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10·21대책] 서민 고통 외면한 "건설사 살리기 대책"
☞ [국감]삼성 앞에서 그저 "죄송"할 뿐인 대법관
☞ 공정택과 장제원, 누가 더 웃겼나! 국감코미디 "베스트5"
☞ 학생들이 "괴담" 휘둘려 백지답안 냈다고?


태그:#감사원, #정치적 감사, #쌀 직불금, #KBS감사, #내부비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