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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출근하여 어느덧 오전 11시가 넘었습니다.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선배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주방장, 점심 때가 다 됐어!"

순간 저는 아차 싶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점심밥을 짓는 손길을 서둘렀습니다. 우선 쌀을 씻어 물에 담갔습니다.

다음으론 냉장고를 열어 얼마 전 저와 선배님의 집에서 미리 갖다 비축해 둔 밑반찬을 챙겼습니다. 10분 뒤 전기밥솥의 전원을 연결하고 취사 버튼을 눌렀지요.

이어선 냉동실에 있던 전날 먹다 남은 프라이팬의 돼지 주물럭 양념고기를 빼서 자연 해동상태로 두었습니다. 그리곤 하던 일을 마저 했지요.

밥은 정확히 30분 후에 기차 화통소리를 알리며 완성됐습니다. 이번엔 밥을 주걱으로 밥그릇에 푸고 신문지를 탁자에 깐 뒤 점심 먹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선배님, 어서 오세요."

그렇게 점심을 먹고 덤으론 전기밥통의 밑바닥에 적당히 눌러 붙은 누룽지까지 물을 부어 또 잠시 가열했습니다. 그러면 이내 눌은밥이 되지요. 그것까지 우려먹곤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얼추 오후 1시가 다 됩니다.

사무실에서 제가 '주방장'이 되어 점심을 지어먹기 시작한 건 며칠 전부터입니다. 그동안은 주변의 식당에서 매식을 하였지요.

하지만 선배님께 얻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꾀를 냈습니다. 집에 있는 전기밥솥이 마침 오래돼서 다시 구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걸 집에서 가져왔지요. 밑반찬도 챙겨오자 선배님도 이튿날 8㎏짜리 쌀 한 봉지와 이런저런 밑반찬을 가져오셨습니다. 비록 홀아비(?)들만의 그 같은 조촐한 점심식사이긴 하되 가외로 돈이 들지않으니 우선 좋습니다.

둘이서 점심을 한 끼 사 먹을 돈이면 그 돈으로 일주일 이상의 반찬을 사서 먹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같이 구질구질한 행동을 실천하게 된 건 물론 당면한 빈곤이 원인입니다. IMF라는 무지막지한 재해의 희생양이 된 뒤로 저는 지금껏 빈곤의 질곡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질 못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거개가 그러하듯 저 역시도 직장의 처우가 허술하고 형편없는 까닭으로 경제적으론 여전히 행시주육(行尸走肉)에 다름 아닙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그야말로 '살아 있는 송장'이란 얘기죠.

그렇게 늘상 쪼들리는 생활이다보니 딸이 대학을 가기 전인 지난 2004년부터 출근할 땐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만 아들에 이어 사랑하는 딸을 대학에 보낼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한 때문이었지요.

딸은 2005년에 대학생이 되어 상경했고 그때부터 저의 지출은 배가되었습니다. 이실직고하건대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딸에게 생활비를 톡톡 털어 보내(송금)주고 나면 정말이지 수중에 한 푼조차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 사무실을 나와 요즘 같은 뙤약볕을 온몸에 맞아가며 집까지 한 시간가량이나 터벅터벅 걷자면 정말이지 저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제가 꿋꿋이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근저는 바로 두 아이가 모두 이른바 '괜찮은 대학'에, 그것도 장학생인 때문이었지요. 아이들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 저를 묵묵히 견디게 해 준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오후에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저는 이번엔 '가정부'로 변신합니다. 직장에 나간 아내와 아들은 밤 아홉 시가 넘어야 귀가를 하는 고로 먼저 귀가한 제가 당연히 집안 청소에서부터 저녁밥을 짓고 설거지까지 하는 가정부의 일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죠.

사무실에선 '주방장'이요, 집에선 '가정부'라는 이중 타이틀 외에 제게도 당연 '가장'(家長)이란 타이틀이 또 하나 있으니 그렇다면 저는 명실상부하게 1인 3역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가장도 가장 나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평소 돈을 잘 벌어야 가장의 위치도 공고한 것이지 저처럼 비실비실하게 돈도 못 버는 필부는 기실 가장 축에도 못 든다는 자격지심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평소 아내와 아이들이 저를 무시한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저의 성정(性情)이 조금은 모가 난 때문으로 이와 같은 솔직함을 담담히 피력하는 것이랍니다.

어려서 어머니 없이 자란 때문으로 진작부터 밥과 웬만한 반찬까지 척척 만드는 건 이골이 난 차원을 넘어 얼추 '척척박사'의 수준입니다. 그러니 제게 있어 '베테랑 주방장'이란 타이틀도 실은 무리는 아니라 하겠습니다.

휴일에 집에 있을 때도 깔끔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 또한 잘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성실한 가정부'라는 명칭도 가당하다 하겠지요.

그 외에도 술과 친구를 좋아하며 문학에도 자신이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만 한 가지 그놈의 웬수 같은 돈만큼은 웬일인지 IMF 도래 이후론 단 한 번도 제 곁에 머무르지 않는 차가운 이방인일 따름이네요.

그로 말미암아 저는 오늘도 돈을 잘 벌어 가계를 안정시켜야만 그 본연의 목적에도 부합되는 가장이란 위치엔 여전히 도달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걸 보자면 '재주가 많으면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으며 팔자까지 세다'는 어떤 고사(故事)까지 떠올라 이내 입안이 쓰곤 합니다.

아무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IMF 도래 십 년을 맞는 올해가 지나면 저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고진감래의 날은 오겠지요? 그날을 맞기 위해서라도 현재 저의 1인 3역의 역할은 여전히 지속돼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싱글벙글쇼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인물, #주방장, #1인3역, #가장, #가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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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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