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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 Say, No!'는 오는 14∼15일 실시되는 2008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반대해 시험·등교 거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10일 밝혔다.

마침내 일어나야 할 것이 일어났다.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미친 소, 미친 교육 꺼져!!'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학생들이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를 위해 시험을 거부하고, 등교를 거부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지금은 정직3개월-학생으로 치면 무기정학 쯤...ㅠㅠ 징계를 먹고 학교를 못 나가고 있는 상태이다.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이 투쟁에 많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교육은 헌법과 교육기본법을 위배하고 있다. 교장, 선생, 학부모 모두 학생들을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위배되게 교육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범법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범법행위를 청와대, 국회, 교육부, 교육청은 단속하기는커녕 오히려 장려하고 배후조종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과 교육법 어디를 뒤져봐도 학교가 입시교육의 전쟁터라는 규정이 없다. 학교를 입시교육의 전쟁터로 몰고 가려는 것은 헌법과 교육법 위반이다.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
- 지금과 같은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학생들은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학교를 입시 교육을 위한 전쟁터로 운영하는 것은 학생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반국가적 범죄행위이다. 

헌법과 교육법은 또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 '자율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입시경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헌법과 교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평등성, 균등성을 부정하는 것이요, 이는 헌법 파괴행위이고, 국가정체성 파괴행위이다.

현행 입시 교육 시스템에서 '자율과 경쟁'은 '부잣집 자녀'와 머리좋은 부모를 두어 머리좋게 태어난 '머리좋은 자녀'에게만 특권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평등하지 못한 시스템이다.

사교육은 돈으로 싸발라 성적을 올리는 정확히는 '성적을 사는' 반칙행위이며 신성한 교육현장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짓이요 범죄행위이다. 사교육은 부잣집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서민들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경제적으로 상위 10%의 재산을 둔 집안 자식들에게만 유리한 제도인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난 게 아니고, 자신의 선택으로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난 게 아니다. 부자 부모를 둔 것이 학교 성적에 그대로 직결되는 시스템은 그렇기 때문에 법앞의 평등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과 경제적 지위를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교육법의 정신에 위반된다.

지금과 같은 국,영,수 주지과목 위주의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은 '머리좋은 자녀'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머리나쁜 자녀'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머리좋고 나쁜 것은 인간 능력 가운데 지극히 일부의 능력이다. 또한, 과학이 밝힌 바에 따르면 머리 좋고 나쁜 것은 학생의 선택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유전에 기인하는 것이다.

머리나쁜 학생들은 지금과 같은 머리 능력만 따지는 교육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머리좋은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다. 거북이가 아무리 열심히 기어가도 토끼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토끼는 달리기 실력으로, 거북이는 수영실력으로, 독수리는 날기 실력으로, 지렁이는 기기 실력으로, 두더지는 땅파기 실력으로, 개는 짓는 실력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모두에게 달리기 교육만 시키고 달리기 시험만 보게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다.

아울러 '머리좋은 신체적 조건'을 가진 학생들(이 역시 대략 전체의 10% 정도)만 우대하고, '머리나쁜 신체적 조건'을 가진 학생들은 차별함으로써 교육법을 위반하고 있다.

자율과 경쟁 좋다.    

그러나 자율이 부자들이 돈으로 싸발라 사교육으로 자식 성적을 올리는 자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쟁이 부잣집 자식들과 머리좋게 태어난 자식들에게만 유리한 게임의 룰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교육법은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대 많이 보내는 게 교육의 목적이 아니요, 영어 잘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아니요,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대 많이 보내고, 영어 잘하게 하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고 학교의 존재이유가 되면서,

(1) 학생들의 인격도야는 내팽겨쳐진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독식보다는 나눔을, 최고보다는 최선을, 탐욕보다는 배려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에서 경쟁, 독식, 최고, 탐욕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우리 학생들, 정확히는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 대부분은 속된 말로 싸가지 없이 자란다. 싸가지 없이 자라도 공부만 잘 하면 되니까...

(2) 자주적 생활능력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천적으로 부정된다.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다 논술이다 독서다 피아노다 태권도다 하면서 자가용으로 버스로 아이들을 실어나르기 바쁘니 아이들이 무슨 수로 자주적 생활능력을 함양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은 못하게 하고, 하기 싫은 것들만 골라서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온갖 비교육적 '당근'을 던져서라도 기어이 시키고야 만다. 아이들의 영혼은 병들고 신체는 퇴화하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자주적으로 놀 줄도, 공부할 줄도, 생활할 줄도 모르는 21세기판 신종 마루타가 되어가고 있다.

(3)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 개똥같은  소리!! 학교에서 학생들은 부당한 것일지라도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또는 눈치빠르게 복종이라도 하는 척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처세술을 배운다.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징계를 운운한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행복권을 근거로 머리 자율을 주장하는 학생에게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하라고 윽박지른다. 학급 회의에서 토론되고 결정된 것이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법은 거의 없다. 민주주의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가치이다. 공공선은 제쳐놓고 개인의 출세와 성공만을 추구하는 현재의 학교에서 어떻게 민주주의에 필요한 자질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또한 민주주의는 여유를 전제로 한다. 여유가 있어야 모여서 생각도 하고 토론도 하고 놀기도 하고 교류도 하고 소통도 하고 촛불도 들고 그러면서 다양한 뜻이 하나의 무지개를 이루어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것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쓸데없는 입시공부, 문제풀이하느라 밥먹는 시간,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생각이요 토론이며 교류, 소통이란 말이야. 귀차니즘의 노예가 되어 버린 우리나라 학생들. 당췌 생각하고 꿈쩍거리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4) 인간다운 삶 영위? 지금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요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기계로, 노예로 12년을 보내면 나비와 매미가 이쁜 날개짓을 할 수 있듯이 학생들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가? 선생과 부모들은 말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라도 학생 시절은 기계처럼, 노예처럼 지내야 한다고... 기계처럼 노예처럼 긴 터널을 지나서 당도하는 곳이 어디인가? 많이 잡아도 20%가 안 되는 부잣집 자식들과 머리좋은 자식들은 꿈을 이룰 수 있다. 비록 그 꿈이 공공선과는 관계없는 개인적 성공과 출세인 것이 문제이지만... 나머지 80%는 해도 해도 안된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게임의 룰을 때려부수지 않고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

(5) 인류 공영의 이상? 인류 공영의 이상은 인류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리라. 그러자면 전쟁이 없어야 하고 빈곤이 없어야 하고 자연이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을만큼 보존되어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 이걸 가르치나? 국, 영, 수 잘하면 전쟁이 없어지고 빈곤이 없어지고 자연이 보호되나? 현실은 국영수 잘해서 출세하고 성공한 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빈곤을 조장하고 자연을 파괴한다. 대한민국 학교에 민주주의와 인류 공영의 이상은 발붙일 수 없다. 입시와 내 출세와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와 교육은 헌법과 교육법을 위반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것은 당연히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반헌법적, 반교육적 범죄행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교육법은 <부모 등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바른 인성을 가지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교육할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부모들은 그 권리와 책임을 방기하고 범죄행위에 동조하고 있다.

학생들이 믿을 곳이라곤 아무 곳도 없다. 기댈 곳이라곤 아무 데도 없다. 부모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즉 학생들의 고통은 학생들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서 털어버려야 한다.

오늘 나는 학생들이 무한경쟁,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시험 거부, 등교 거부 운동을 시작하였다는 뉴스를 보고 흥분한다.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희망이다. 학생들의 운동은, 학생들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학생들의 투쟁은 출세와 성공지상주의에 오염되어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는 기성세대에 대한 회개촉구운동이며, 우리나라 헌법과 교육기본법의 정신을 되살리고 대한민국을 건강한 나라로 재정립하는 헌법바로세우기, 나라바로세우기의 거대한 역사적 요구에 부응하는 역사적인 투쟁이다.

청소년의 파업으로 몹쓸 교육을 바꿔요...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 Say, No!' 누리집에서 본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아고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무한경쟁, #입시교육, #일제고사, #청소년파업, #SAY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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