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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혁명의 상징인 프랑스 혁명의 도시 답게 파리에는 곳곳에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건물이나 기념물이 많다. 파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에펠탑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탑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던 1789년을 기리고자 같은 수의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해마다 수많은 한국인이 파리를 찾아 에펠탑을 보고 루브르를 찾는다. 약탈문화전시장의 거대함에 감탄사를 날리며 발품 팔아 사진을 찍고 다니지만, 프랑스를 제대로 보고, 그들의 공화주의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면 혁명 정신이 태어나고 묻혀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 변혁운동을 상징하는 공간은 어느 곳일일까. 5·18의 상징공간인 광주 망월동을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 이 시점에서는 촛불이 모여드는 서울 시청광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광장은 촛불의 과거형으로 비교되는 87년 6월항쟁의 공간이기도 하기에 상징의 요소를 제대로 갖추었다 하겠다.

 

파리시민이라면 어디에서 모여서 촛불을 들까. 과거 혁명의 발생지격인 바스티유광장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아마도 빵떼옹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혁명가들의 무덤이자 기념관인 빵떼옹은 도심 한 복판에 있는 모란공원이자 망월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 정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소르본 대학과 붙어 있으니 이 또한 제격이다.

 

모든 신을 모시는 만신전이란 뜻의 빵떼옹은 원래 루이 15세가 1764년 셍뜨 쥬느비에브(Sainte Genevieve)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지은 교회였다. 로마의 판테온을 모방한 건물로 그 시대에는 드문 고딕 양식으로써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대 문명을 찬양하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적 건물의 하나로 평가된다.

 

교회였던 이곳은 1789년 프랑스 혁명 2년 뒤인 1791년 제헌의회에서 프랑스를 빛낸 위대한 인물을 안치하는 사원으로 바꿀 것을 결정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잔다르크와 쌩뜨 쥬느비예브 벽화. 왼쪽의 잔다르크는 프랑스의 수호신, 오른쪽의 쌩뜨 쥬느비예브는 파리의 수호신이다.

 

빵떼옹의 지하에는 만인을 위해 살다간 분들이 모셔져 있다. 루소, 에밀졸라, 빅토르 위고, 볼테르, 최근에는 혁명가는 아니지만 여성계의 영향으로 퀴리부인도 안치되어 있다. 말이나 글로만 접하던 쟁쟁한 분들, 만인을 위해시대를 앞서 싸우다 상당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분들을 만나는 감동이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이곳에는 또 푸코의 추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는 푸코의 추는 한 시간에 오른쪽으로 11도씩 움직이는데, 이는 빵떼옹에 86미터 높이의 실내돔이 있기에 가능하단다.

 

빵테옹을 나오면 바로 건너편 건물에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가 씌여 있는 건물이 있다. 혁명정신은 빵떼옹의 지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장의 하늘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빵떼옹이 과거의 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둠을 밝히는 광장의 자격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 만이 다는 아니다.

 

1981년 당시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축하 퍼레이드를 개선문에서 시작되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이곳 빵떼옹으로 옮겼다. 그 후 빵떼옹은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축하 행진을 벌이는 곳이 되었다. 선배 투사들의 영령 앞에서 승리의 기쁨을 자축하는 것이다.

 

현재의 사회당이 과연 진보적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사회당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사회당 좌파와 공산당 등 보다 진보적인 그룹은 지난 6월 28일 반자본주의 연합당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창당 준비에 들어갔다) 어쨌거나 프랑스 혁명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가톨릭교회라는 종교적 시원을 갖는 빵떼옹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혁명의 사원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고 이러한 정치적 변화과정은 빵떼옹의 건축 미학 상의 변화 역시 이끌어낸다. 이후 일련의 정치적 격변들은 빵떼옹의 정치적 성격과 미학적 내용을 계속 변화시키는데 프랑스 정체가 공화정으로 완결되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빵떼옹은 궁극적으로 공화국과 국민의 사원이라는 의미체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1981년 미테랑의 정치적 의례 행위는 빵떼옹의 이러한 역사와 밀접한 결합관계를 갖는 것이다. - 하상복, <빵떼옹과 상징 정치>

 

반면 우파는 정권을 잡으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개선문에서 시작되는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한다. 'CHAMPS-ELYSEES'-영웅들의 휴식처, 영원한 낙원이란 뜻의 이 거리는 콩코드광장에서 개선문까지 직선으로 뻗어있는데, 낙원이라는 말뜻처럼 세계적인 명품샵과 유명한 극장쇼가 있는 자본주의의 꽃길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좌우의 대비가 잘 어울리는 컨셉이다.

 

빵테옹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소르본 대학을 만나게 된다. 한 때는 혁명 정신의 산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현대철학과 문화예술의 산실. 800년 역사를 지닌 소르본은 1971년 대학 개혁을 통해 파리지역 국립대학 모두를 파리대학으로 통합하면서 파리 제4대학이 되었다. 이처럼 과감한 평준화 조치를 포함하는 교육개혁이 가능한 것 역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파리대학 소르본 캠퍼스보다는 여전히 소르본 대학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이 대학 한 해 등록금이 우리 돈 10만원 정도(사실 등록금은 없다. 학생신분 등록, 도서관 이용 카드 발급 등의 명목으로 내는 비용이다)라는 사실 또한 이방인에게는 놀라움을 준다. 학문은 최대한 자유롭게 그러나 교육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는 프랑스혁명 정신이 여기에 담겨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기념이며 계승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지난해 다녀온 유럽 기념시설 방문기입니다. 
김종철 기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장으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성취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민주주의전당' 건립을 추진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 #혁명, #빵떼옹,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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