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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공공미술인가
ⓒ 학고재
'미술'이라고 하면 고흐나 이중섭 또는 '요절한 천재'와 같은 '왕초보' 단어들만 떠올리는 보통사람들에게 미술은 가까이하기엔 너무도 고결해서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풍경에 불과하다. 달리 말하면 미술은 그들의 삶에 '거의 쓸모없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술에 대해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판에 박힌 상식들은 대부분 '미술관 속의 순수미술'로 대표되는 미술에 대한 공교육수준과 사회적인 관습의 한계 내에서 형성된 것들이다.

하지만 '미술관 속의 미술'에 대해 이런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거리에서, 공원에서, 백화점 앞에서 마주치는 생기발랄한 '공공미술'에 대해서는 좀 더 친근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이런 공공미술들은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아름답게 장식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약속장소가 되고, 나아가 공동체의 관심사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우리의 공공미술은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채 아직도 '문패조각'이나 '장식미술'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전문적인 연구와 제도적 기반 역시 취약한 상태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공공미술품을 둘러싸고 비리가 양산되는 어두운 면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 대한 해답이라도 내놓듯 시의적절하게 나온 것이 바로 공공미술을 기획, 연구해온 박삼철의 <왜 공공미술인가>라는 책이다. 공공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서도 별로 없는 지금, 서구에서 시작된 공공미술의 역사는 물론 우리의 현실을 고려한 철학적, 미학적 대안들을 깊이 있게 다룬 이 책의 성과가 더욱 빛이 난다.

삶터의 도시를 위하여

잘 꾸며진 표지와 풍부한 도판이 눈길을 끄는 책을 펼치면 저자는 책 제목에 걸맞게 공공미술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왜 공공미술인가'라는 첫 장을 시작으로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누가, 언제라는 질문과 공공미술을 연결한 6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공공미술에 관한 모든 주제들을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물론 부제인 '미술, 살만한 세상을 꿈꾸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본격적인 공공미술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현재를 사는 우리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논의를 출발시킨다.

돈과 권력의 '성장기계'인 거대도시에 사는 우리는 파편화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영혼없는 소비자로 훈육 되고 공동체적인 삶의 풍요로움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렇게 죽어가는 공간으로서의 도시를 '삶의 터'로 되돌려 놓기 위해선 '철학과 예술'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르페브르는 삶의 총체성으로 도시를 성찰할 수 있는 철학, 그리고 시간, 공간에 어울리게 삶의 노래를 만들어내는 예술을 도시에 대한 권리로 강조했다. 그럼으로써 마침내 도시 자체가 작품이 되고 도시인 자체가 철학자, 예술가가 되는 삶을 상상했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도시를 상상해야 한다. 성장기계의 욕망에 따라 설계가, 건축가, 미술가 등 전문가가 펜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도시의 주인인 시민 사용자와 그들을 돕는 철학자,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도시를 말이다. (35쪽)

이러한 토대 위에서 '공공성'과 '공공미술'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월드컵광장과 촛불시위 등에서 이미 공공영역에 대해 충분한 경험을 했으며 개체가 자발적으로 연대하는 관계의 그물망으로서의 공공성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와 예술적 특성이 어우러져야 하는 공공미술의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역사적 흐름 속에 성장해 온 서구의 공공미술과 그 가치들을 살피며 해결책을 모색한다.

새로운 공공미술의 출현

근대국가의 권력전시 아이템인 '모뉴멘트(monument)'로부터 시작한 공공미술의 역사는 20세기에 들어와 미국 행정부의 연방예술 프로젝트 등을 통해 도시의 공간을 좀 더 다양한 주제로 장식하는 '장소 속의 미술'로 발전한다.

양적, 질적 성장을 한 '장소 속의 미술'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공공미술이라는 제도에 의해 도시의 더 많은 부분을 점령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설치되는 공간과의 맥락을 살리지는 못했다.

이런 고민은 1970년대에 들어와 '장소로서의 미술'로 진화하게 되는데 특히 이 시기에는 벤치, 휴지통, 가로등과 같은 도시의 구성요소들을 활용하는 '퍼블릭 퍼니처(public furniture)'의 개념이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장소 속의 미술'과 '장소로서의 미술'은 1990년대의 이미 변한 서구사회 분위기 앞에 장식적 미술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더는 '새로운 공공성'을 담아내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운 공공미술은 권력 체제가 어떤 공간을 만들지라도 공간 사용자들이 그곳에서 머물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평하고 저항하는 공공영역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공공미술은 비평적 공공영역에서 진정한 공공성이 비롯된다고 강조한다.(137쪽)

'공익 속의 미술'이나 '새 장르 공공미술'로 지칭되는 이 새로운 공공미술은 공동체의 사회적, 정치적 관심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한다. 그리고 작가와 관객이 삶의 현장에서 함께 작업하며 창조자와 사용자의 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어진다. 이제 '공공미술은 미술가뿐만 아니라 건축가, 설계가, 디자이너 더 나아가 시인, 철학자, 사회학자, 사회운동가와 함께할 때 제 의미를 찾는다.'(165쪽)

나아가 저자는 공공미술이 장소적 범주를 넘어서 인터넷이나 엔지오(NGO)와 같은 새로운 공공영역에서 더욱 가치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용미학의 시대로

이 책의 전반부가 공공미술의 사회적, 철학적 배경과 역사적 흐름을 담고 있다면, 후반부는 주로 공공미술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미학적 방법론으로 제시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특히 4장 '어떻게 공공미술이 되는가'에서는 공공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어법을 읽을 수 있는데, '문안하는 공공미술, 동반하는 공공미술, 대변하는 공공미술'이 그것이다. 즉, 사람들의 삶을 초월한 저 높은 좌대 위에 존재하는 미술이 아니라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점에서 공공미술은 새로운 미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한발 더 나아가 지금까지 단지 수동적인 관객으로 머무르던 시민들을 공공미술의 적극적인 사용자로서 재정립시킨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사용미학'을 역설한다.

사용미학은 미학에서도 사용자가 비로소 투표권을 얻어 미학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얕은 수준의 민주화에서 멈추지 않는다. 삶에 요구되는 민주적인 가치를 '아름답게' 실행하는 총체적이고 낭만적인 혁명의 토대를 만든다. 사용미학은 개념과 순수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온 창작미학을 교정할 뿐 아니라 삶다운 삶, 더 나아가 예술 같은 삶을 견인해내는 탈근대의 초석이다. 사용미학은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바로잡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예술 같은 삶을 사는 새로운 시대의 미학이다.(286쪽)

삶의 현장에 있는 공공미술은 결국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생성되는 참여과정이야말로 공공미술에 진정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공공미술은 우리 모두와 함께!

이 책에서 다루어진 것처럼 '미술관 속의 미술'과 '공공미술'에 대한 변화된 가치들은 실제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가까운 예가 바로 청계천에 세워질 상징조형물을 둘러싸고 현재 서울시와 문화예술계가 보이고 있는 커다란 시각차이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하지만 이미 식상해진 팝아트작가 올덴버그의 '스프링'을 용감하게 선정해버린 서울시와 청계천의 장소성 및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고 공동체의 민주적인 참여절차에 의해 선택된 공공미술을 중시하는 문화예술계의 의견 차이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과 공공미술의 의미 있는 관계에 대한 공감대가 더욱 폭넓게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 책은 우리에게 더욱 유익한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공영역을 관리하고 쓰임새를 기획하는 공무원들에게 이 책을 반드시 탐독할 것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왜 공공미술인가_ 미술, 살 만한 세상을 꿈꾸다> 박삼철 지음/ 학고재/ 20.000원


왜 공공미술인가 - 미술, 살 만한 세상을 꿈꾸다, 학고재신서 40

박삼철 지음, 학고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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