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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2월 14일 냉이가 이렇게 자랐습니다.
ⓒ 이학근
지금이 초봄도 아닌데 냉잇국을 끓인다하면 나처럼 도회지 살다 온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헌데 정말 산막 밭 자락 빈땅에는 냉이가 있었다.

산막에 들어가기 전날 인터넷 게시판에서 만난 시골 사시는 분이 알려 준 바에 의하면 지금 냉이를 캐서 뿌리는 말려 차로 마신다 했다. 찬 땅에 온기를 품고 사는 냉이가 소음인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토요일 오후 산막에 도착했다. 호미를 들고 멀리까지 갈 것도 없었다. 마당 감나무, 차나무 아래 풀이 말라버린 땅을 살펴보았다.

냉이는 땅 색깔로 엎드려 있었다. 그 마른 풀 속에 푸른 속잎이 꽃잎 벌어지듯 땅에 납작 붙어 그냥 보면 하나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풀을 베어 땅에 눕힌 자리나 볏짚을 깐 자리를 가만히 뒤집어보면 그 속에는 새파란 잎을 단 냉이가 줄줄이 나타났다.

시장거리에 할머님들이 봄나물이라며 캐온 냉이를 사 먹어 본 적은 있지만, 내 손으로 캐 본 적이 없기에 이것들이 정말 냉이일까 하는 일말의 의심이 들긴 하였다. 지금 같은 겨울철에 잎이 살아있는 것은 냉이 이외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기에 호미로 땅을 파서 뿌리 채 캐기 시작했다.

냉이 뿌리는 잔뿌리가 유난히 많고 가운데 원뿌리 하나는 길게 뻗어 있었다. 땅이 부풀어 있어 호미 한 두 번이면 뿌리 채 올라왔다. 하얀 수염뿌리가 올라올 때는 뿌리에서 약초냄새가 향긋하게 풍겼다. 몇 뿌리를 캐고 나니 냉이가 눈에 익자 한 자리 앉아서 수십 뿌리를 캐었다. 이곳은 여름에는 잡초 밭이었는데, 지금은 온통 냉이 밭이구나.

▲ 산막에서 캔 겨울 냉이입니다.
ⓒ 이학근
작은 바구니 하나에 가득 캐고 보니 더 이상 캐 본들 내게는 소용없는 양이지 싶어 그만하고 일어섰다.

수돗가에다 물을 길러 대야에 냉이를 흙이 뭍은 채로 부었다. 잔뿌리에 달린 흙들이 쏟아져 물에 저절로 씻기어 뿌리가 고운 흰 수염으로 나타났다. 마른 잎사귀는 따내고 뿌리 속에 흙을 하나씩 씻고, 뿌리에 붙은 마른 껍질은 칼로 다듬어서 몇 번이고 헹구어 소쿠리에 담았다.

시간을 보니 냉이를 캐는데는 30분도 안 걸렸는데, 이를 씻고 다듬는데는 한 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전기 밥솥에 쌀을 씻어 올리면 되는 밥도 20분은 걸리고, 냉이 된장국을 끓이는데 시작부터 밥상에 올리기까지 30분은 걸리었다.

한끼 식사를 준비하는데 내가 좀 서툴긴 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려야 밥상이 차려진다. 그런데 반찬을 시장에서 사거나, 밭에서 캐거나 그걸 식탁에 올리기 위해 가리고 챙겨 다시 조리하고 상을 차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반나절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주부가 가사노동을 한다면 하루 세끼의 끼니를 준비하는 시간은 하루 종일이라는 표현이 맞는 말이다. 전업주부가 아닌 다음에야 이처럼 시간을 내어 준비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가정생활을 수십 년 해 보고 나서도 모르던 일, 체험을 해보니 이제야 그 크기를 알 것 같았다.

보글보글 끓는 냉잇국을 밥상에 올려놓고 맛을 보니 국 맛이 아니라 약 맛이 나는 것이다. 냉이를 쓴 냉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전에 먹어본 냉이 국 맛은 이처럼 쓰지는 않았는데 싶었다. 잘 익은 뿌리를 건져 밥 위에 올려놓고 식혀서 씹어보았다.

국 맛처럼 쓰지 않고 냉이 맛이 나왔다. 독초는 아닐 것인데, 혹시 내가 냉이 초보이니 잘 못 캔 것은 아닌가 하니 그만 입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냥 먹기는 의심스러우니 알아봐야겠다 싶어 내 시골생활 선생님이신 고모님과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으나 아니 계신 것이다.

"그럼 누구에게 전화를 거나?"

내가 마땅히 물어볼 만해 경험자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휴대폰를 꺼내 입력된 이름 목록을 하나씩 넘겨보니 맑은 햇살 한 자락의 오지랍 넓은 전업 주부 오즈님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 이 아주머니는 경험이 있을 거다 싶어 전화를 넣었다.

"아, 여보세요 저 두칠이인데요. 저녁을 잡수셨나요?"
"아니, 어디세요. 아직 저녁은... "

혹시 집 근처에 와서 전화를 하는가 싶었나 보다.

"아닙니다. 여기 산막입니다. 냉잇국 아시지요?"

냉이 이야기를 꺼내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그렇게 바로 끊는 물에 넣어서 끓이는 것이 맞다 하였다. 좀 쓴 것이 원래 냉이 맛이라는 것이다. 아이 대학 입학 이야기를 하다가 먹다 남은 밥 생각이 나서 전화를 끊고는 남은 밥을 마저 먹었다.

처음에 좀 쓰긴 해도 입에 익숙해지니 그런 대로 먹을 만하였다. 무엇보다도 입에 쓴 것이 약이라는 생각에, 소음인 체질에 좋다는 이야기에 국에 든 뿌리를 남김없이 먹었다. 내 혼자 생각이지만 금번 겨울에는 냉이로 보신을 해 볼 참이다.

제초제며 농약 하나 치지 않는 내 텃밭에 지천으로 늘려있는 저 많은 냉이를 차를 끓여 마시고, 국도 끓이고, 겨울철 산막에 오시는 분께 냉이 캐는 소일거리도 드리고, 캔 냉이도 나누어 드릴 참이다. 저 밭 자락에 묻혀 얼지 않고 겨울을 사는 냉이의 온기를 나누어 드릴 참이다.

"냉이 캐러 오셔요! 찬바람, 언 땅속에 사는 따뜻한 기운의 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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