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2 05:51최종 업데이트 23.12.22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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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박정훈 대령 군사재판에 제출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188페이지 진술서 분석①  https://omn.kr/26pmx
 

지난 7월 22일 고 채 상병의 안장식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는 가운데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추모하고 있다. 채 상병은 7월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 연합뉴스


"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전은 작전 수행 과정에서 수반되는 제반 안전활동, 즉 위험 예지 및 위험성 평가를 통한 실시간 대책강구 활동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 원칙적으로 특정 작전 임무와 과업을 부여할 권한을 갖고 있는 작전통제부대장인 육군 50사단장과 현장부대장에게 안전에 대한 책임이 부여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1월 21일,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 대한 항명죄 군사재판에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제출한 진술서에 담긴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실종자 수색 작전과 관련한 안전 책임은 자신이 아닌 육군 제50사단장에게 있기 때문에 채 상병 사망 사건이 안전사고라면 사고 발생의 책임 역시 50사단장에게 있다는 뜻이다.


임성근 전 사단장의 이러한 주장에는 배경이 있다. 진술서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와 육군 제2작전사령부는 사고 2일 전인 7월 17일 오전 10시 부로 예하 부대인 육군 제50사단에 예천 지역 호우 피해 복구 작전을 맡기며 해병대 제2신속기동부대를 지휘 통솔하라는 작전통제권 전환 명령을 내렸다. 해병대 제2신속기동부대는 원래 해병대 1사단의 지휘 통제를 받지만, 명령에 따라 수해 현장을 관할하는 육군 50사단의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단편명령에 따르면 7월 17일 오전 10시 이후부터는 해병대 제2신속기동부대에 호우 피해 복구 작전과 관련한 명령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사람은 임성근 전 사단장이 아니라 육군 50사단장이 맞다. 임 전 사단장은 진술서에 "작전통제부대장(육군 50사단장)은 제2신속기동부대장 이하 현장지휘관에게 안정성평가를 통해 안전 확보 하 작전을 수행하도록 권한과 책임을 이행해야 합니다"라고 쓰고 밑줄을 그어 강조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임 전 사단장은 "(본인이) 해병대원이 무릎 높이 수위로 물속에 들어간 사실을 공보정훈실장이 전달한 신문 스크랩 사진기사를 통해서 식별했다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작전의 변경을 명령할 수는 없었다"며 수중수색을 미리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에 대해서도 항변했다.

자신에게는 작전통제권이 없기 때문에 수중수색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고 당일 아침에 수중 수색 사진을 확인하고 육군 50사단장에게 작전 변경을 건의했어도 지휘체계 상 변경된 작전이 채 상병에게 도달하는 데는 1~2시간이 걸렸을 것이라 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식의 진술도 펼쳤다.

정상적인 지휘체계 벗어난 임성근 전 사단장

얼핏 보면 임성근 전 사단장의 주장은 원론적이며 타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려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원소속 부대 지휘관인 임 전 사단장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 않고, 육군 50사단장이 오롯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제 성립을 판단하려면 임 전 사단장의 행적을 살피면 된다. 우선 임 전 사단장은 작전통제권을 육군 50사단장에게 이양하고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에 잔류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7월 18일부터 예천 수색 현장 일대를 시찰하고 다녔다.

원래대로라면 육군 50사단에 병력을 빌려준 임 전 사단장은 예천에 가서 작전 현장을 시찰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작전통제도 할 수 없는 예하 부대의 작전 현장을 시찰하고 다닌 것이다.

임 전 사단장은 이러한 시찰을 두고 '군수 지원' 등 작전통제권 바깥의 원부대 지휘관의 소임을 다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하지만 궁색해 보인다. 그가 한 지휘는 군수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이 작전의 목표가 재난 피해 복구가 아니라 전투 작전이었다고 가정하면 일련의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육군 50사단장이었던 문병삼 소장에게 물어보면 지휘 체계가 혼란했던 당시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책임 전가하는 지휘관

결국 임 전 사단장은 지휘통제권이 없는 부대를 대상으로 시찰을 다니고 작전 진행 상황을 보고 받으며 '실질적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사평정권을 쥐고 있는 원부대 지휘관 지위를 앞세워 현장 지휘관들로 하여금 따를 필요 없는 명령을 따르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직권남용이 명백하다. 직권을 남용해서 무리한 수중 수색을 진행하다 사고가 발생하니 자기 때문에 '실질적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던 육군 50사단장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임 전 사단장은 진술서에 이런 말을 남겼다.

"군대에서의 작전은 준엄한 명령(군령태산軍令太山: 군에서의 명령은 태산과 같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산다)과 명확한 지휘체계에 의해서 이루어져야만 복잡하고 변화하는 우발상황에 대처하여 작전성공으로 견인할 수 있으며, 작전성패는 오로지 지휘관에게 달려있기에 그 지휘권을 철저히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사고 당시에는 아는대로 실천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연일 임성근 전 사단장 부하들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임 전 사단장을 무리한 수중 수색을 압박한 당사자로 지목하고 있다. 태산 같은 군령을 어지럽히고, 부하를 불필요한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책임은 남에게 전가하는 지휘관이 우리 군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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